가족관계18 이채원, 14세, 여성, 중학교 2학년 이채원은 경남 남해의 한 면 지역에 산다. 전교생이 120명 남짓한 중학교 2학년이다. 아버지는 멸치 가공업체에서 냉동·출하 일을 하고, 어머니는 관광철에는 펜션 객실 청소를 하며 비수기에는 지역 농산물 포장 일을 한다.채원에게는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집은 부모가 10여 년 전 대출을 끼고 산 오래된 단독주택이고, 가정형편은 빠듯하지만 심각하게 궁핍하지는 않다.채원은 어른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채원이는 진짜 손이 안 가.”채원도 대체로 그 말을 칭찬이라고 생각한다.다만 가끔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왜 그런지는 자신도 정확히 모른다.1. 현재의 하루오전 6시 21분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뜬다.부엌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어머니가 이미 일어난 것 같다.채원은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2026. 9. 1. 양극성장애가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조증 이후 관계 회복과 대화 방법 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왜 사과를 하지 않을까? 아마 가족이나 연인, 가까운 친구를 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조증 상태에서 심한 말을 하고, 돈을 함부로 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준 뒤에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걸까?''아니면 알면서도 미안하지 않은 걸까?'조증이 끝난 뒤에도,약물 치료를 받고 감정이 안정된 뒤에도,왜 우리가 기대하는 형태의 사과나 미안함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질까? 정답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정신의학에서는 '죄책감을 느끼는 능력'과 '그 죄책감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과.. 2026. 8. 17. 경계성 성격장애(BPD)의 치료와 회복, 가족은 어떻게 도와야 할까? 경계성 성격장애(BPD)의 특징, 원인, 치료법을 최신 DSM-5-TR 기준과 2021년 이후 연구를 바탕으로 쉽게 설명합니다. DBT, 감정조절, 애착, 최신 뇌과학 연구와 가족이 도울 수 있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아보세요. 과거에는 경계성 성격장애(BPD)를 두고 "치료가 어렵다"거나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의 연구와 임상 경험은 이러한 생각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DSM-5-TR(2022)와 NICE(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 APA, WHO 등 주요 가이드라인은 BPD를 치료 가능한 정신건강 질환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심리치료를 중심으로 한 꾸준한 개입이 증상 개선과 삶의 질 향상에 효과적이라고 권고합니다.다만 치료는 단기간에 끝나는 경.. 2026. 8. 17. 권명자, 76세, 경북 봉화에서 혼자 살며 작은 밭을 일구는 사별 여성 현재의 하루오전 5시 18분명자는 창문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 눈을 뜬다.알람은 없다.오래된 단독주택.남편이 살아 있을 때부터 40년 넘게 살던 집이다.명자는 이불을 개고 부엌으로 간다.전기밥솥을 연다.어제 한 밥이 한 공기 정도 남았다.물을 조금 부어 누룽지처럼 끓인다.식탁에는 반찬 세 가지가 놓여 있다.마늘장아찌.깻잎.멸치볶음.명자는 라디오를 켠다.지역 날씨가 나온다.오후에 소나기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창밖을 본다.“비 올 얼굴이 아닌데.”기상예보보다 자기 눈을 조금 더 믿는다.하지만 나갈 때 우산은 챙길 것이다.오전 6시 07분고무장화를 신고 밭으로 나간다.집 뒤 200평 남짓한 작은 밭이다.고추와 상추, 들깨를 심었다.돈을 벌기 위한 농사는 아니다.명자는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는다.옆집 김씨 할머니.. 2026. 8. 15. 배수진, 34세, 인천 대학병원 미화원, 이혼 후 초등학생 아들을 공동양육 중 현재의 하루오전 4시 52분수진은 휴대전화 진동이 두 번 울리기 전에 눈을 뜬다.원룸보다 조금 큰 12평짜리 빌라.방 하나는 수진이 쓰고 작은 방에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 윤재의 침대가 있다.오늘 윤재는 없다.이번 주 평일은 전남편 집에서 지낸다.수진은 빈 방문을 한번 보고 욕실로 간다.세수를 하고 작업복 안에 입을 검은 티셔츠를 꺼낸다.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다가 눈썹이 한쪽만 흐린 것을 발견한다.잠깐 고민하다 다시 그린다.병원에서 마스크를 쓰면 얼굴 대부분이 가려진다.그래도 눈썹은 그린다.내가 보려고 하는 거지.전자레인지에 어제 남은 밥을 데운다.김에 밥을 싸 먹으면서 휴대전화로 통장 잔액을 확인한다.월급날까지 8일.잔액 38만6천 원.교통비와 보험료가 빠져나가도 큰 문제는 없다.윤재 생일 선물로 사주.. 2026. 8. 15. 임선영, 49세, 대전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재혼 여성 현재의 하루오전 5시 49분선영은 알람을 끄고 바로 일어난다.침대 옆 남편 동수는 코를 골며 잔다.선영은 욕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가까이 본다.왼쪽 눈 아래가 조금 부었다.“어제 짜게 먹었나.”냉장고에서 차가운 숟가락을 꺼내 눈 밑에 댄다.오늘 오전에는 고객 두 명을 만나고 점심에는 예전 직장 동료 모임이 있다.화장을 평소보다 조금 오래 한다.선영은 외모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다만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니 단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어제 온라인으로 본 18만 원짜리 재킷이 떠오른다.살까 말까 고민하다 구매하지 않았다.옷은 이미 많다.그런데 오늘 같은 날에는그거 하나 있었으면 딱인데.라는 생각이 든다.오전 6시 31분남편이 일어나 주방으로 나온다.“오늘 어디 가?”“둔산동 두 군데. 점심 약속.”“저녁.. 2026. 8. 14. 박준호, 37세, 세종시에서 세 아이를 돌보는 전업 아버지 현재의 하루오전 6시 07분준호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뜬다.옆자리에서 아내 지현은 아직 자고 있다.침대 발치에는 막내가 어젯밤 벗어놓은 양말 한 짝이 떨어져 있다.준호는 양말을 집어 빨래바구니에 넣고 주방으로 간다.냉장고를 연다.계란 네 개.우유 반 통.어제 해둔 미역국.첫째는 계란찜을 좋아하고 둘째는 계란찜에 파가 들어가면 먹지 않는다.막내는 아침에 기분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준호는 계란을 세 개 꺼낸다.파는 따로 볶는다.물이 끓는 동안 학교 알림 앱을 확인한다.2학년 현장체험학습 준비물: 물통, 모자, 개인 돗자리돗자리.준호는 잠깐 멈춘다.집에 작은 돗자리가 있었던 것 같다.베란다 수납장을 머릿속으로 뒤진다.어디 넣었더라.지현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자신이 찾기로 한다.이런 질문을 하면 .. 2026. 8. 14. 문정희, 68세, 광주에서 혼자 살며 94세 어머니를 돌보는 은퇴 간호사 현재의 하루오전 6시 03분정희는 일어나자마자 커튼부터 연다.햇빛이 거실 바닥에 길게 들어온다.아파트는 조용하다.그녀는 혼자 산다.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냉장고에 붙어 있는 작은 메모를 확인한다.화: 엄마 피부과목: 요양보호사 휴무금: 수영오늘은 월요일이다.특별한 일정은 없어 보이지만 오전 10시에 어머니 집에 갈 예정이다.정희는 커피를 내리며 휴대전화를 확인한다.언니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엄마 어젯밤 또 잠 설쳤다더라. 오늘 가면 한번 봐줘.정희는 답한다.응.딱 한 글자다.메시지를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언니도 가서 보면 되잖아.바로 이어서 생각한다.무릎 수술한 사람한테 뭘 바라냐.화를 냈다가 자신이 직접 취소한다.누구와도 말하지 않은 갈등이다.오전 7시 18분아파트 단지 근처 수영장에 간다.정희는 8년.. 2026. 8. 13. 서예림, 22세,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대학생 현재의 하루오전 7시 12분예림은 휴대전화 진동에 눈을 뜬다.대학교 기숙사 2인실.옆 침대의 룸메이트는 아직 자고 있다.알람을 끄려다 화면 위에 떠 있는 가족 단체방 메시지를 본다.어머니가 오전 6시 21분에 올렸다.오늘도 말씀 붙잡고 승리하자♡엄마가 새벽기도 때 예림이 기도했어.아버지는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달았다.남동생은 아무 반응이 없다.예림은 잠깐 고민하다 하트를 하나 누른다.답장을 쓰지는 않는다.그녀는 어머니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싫지 않다.오히려 때때로 위로가 된다.그런데 요즘에는 저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아주 작은 숙제를 받은 기분도 든다.나는 오늘 뭘 승리해야 하는 거지.휴대전화를 뒤집어놓는다.5분만 더 누우려고 했는데 12분이 지나 있다.오전 8시 03분기숙사 식당에서 토스트와 삶.. 2026. 8. 13.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안경희 안경희의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살았으면’이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거나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이 책은 정신건강학 의사이자 조울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가 조울병을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병원에서 수련하던 중 조울병을 경험했고, 자신의 병을 인식하고 치료받은 뒤 그 경험을 글로 풀어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의학적 설명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병을 겪는 사람의 내부 세계’가 담겨 있다. 정신질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울병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우울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고, 잠도 거의 자지 않으며, 충동적.. 2026. 8. 1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