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18 이경재, 59세, 부산의 구청 행정직 5급 과장, 정년퇴직까지 9개월 현재의 하루오전 5시 56분경재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난다.평일에는 거의 같은 시간이다.아내는 계속 자고 있다.경재는 거실로 나와 물을 한 잔 마시고 혈압을 잰다.128에 82.수치를 휴대전화 건강 앱에 입력한다.그다음 뉴스 앱을 연다.기사는 여러 개 읽지만 댓글은 거의 보지 않는다.“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댓글 숫자가 많은 기사는 눌러본다.오전 6시 42분아내와 아침을 먹는다.아내가 말한다.“다음 주 목요일 병원 가는 거 기억하지?”“응.”“또 회의 있다고 미루지 말고.”“회의 잡히면 어쩔 수 없지.”아내가 젓가락을 내려놓는다.“당신 퇴직하면 구청 문 닫아?”경재가 웃는다.“내가 언제 그렇게 했다고.”아내도 웃지만 대답하지 않는다.경재는 속으로 생각한다.내가 놀고 싶어서 .. 2026. 8. 12. 김란, 44세, 전남 해남에서 남편과 시설채소 농사를 짓는 귀화 한국인 현재의 하루오전 5시 21분란은 남편의 알람 소리에 깬다.남편이 손을 뻗어 알람을 끈다.란은 이미 눈을 뜨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오늘은 출하하는 날이다.5분 정도 더 누워 있다가 먼저 일어난다.주방에 나가 밥솥을 열고 남은 밥을 확인한다.두 사람 먹기에는 조금 부족하다.햇반을 하나 데울까 하다가 국수를 삶는다.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온다.“아침부터 국수야?”“밥 없잖아.”“햇반 있던데.”“그건 지민이 먹으라고 놔둔 거.”남편이 웃는다.“딸은 학교 기숙사에 있는데?”란은 냉장고를 열다 잠깐 멈춘다.“주말에 오잖아.”금요일이다.딸은 내일 온다.햇반 한 개를 굳이 아껴둘 이유는 없다.란도 안다.그래도 그대로 둔다.오전 6시 17분비닐하우스 안은 벌써 덥다.란과 남편은 파프리카를 선별한다.남편이 상자에 담고 .. 2026. 8. 12. 김도현, 17세, 군산의 특성화고 자동차과 2학년 현재의 하루오전 6시 38분도현은 알람이 세 번째 울리고 나서야 눈을 뜬다.침대 옆에는 어제 벗어놓은 교복 바지가 뒤집힌 채 놓여 있다. 방 한쪽에는 자동차 정비기능사 필기 문제집과 게임용 키보드 상자가 나란히 쌓여 있다.휴대전화를 보니 같은 반 단체방에 메시지가 47개 와 있다.누군가 어젯밤 학교 근처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고, 친구들이 새벽까지 농담을 주고받았다.도현은 대화를 위로 올려보지만 답은 하지 않는다.반 친구 승우가 올린 사진이 눈에 걸린다.아버지가 새 차를 샀다는 사진이다.친구들이 댓글을 달았다.미쳤다ㅋㅋ너네 집 돈 많네한 번 태워줘라도현은 사진을 확대했다가 바로 닫는다.차가 뭐 대단하다고.그리고 화장실로 간다.오전 7시 04분어머니가 식탁에 계란프라이와 김을 놓는다.“빨리 먹어. 버스 놓친.. 2026. 8. 12. 강태수, 46세, 평택의 건설현장 콘크리트 펌프카 기사 현재의 하루오전 4시 36분강태수의 알람이 울린다.한 번에 끈다.아내는 옆에서 계속 잔다.태수는 침대에서 내려와 부엌으로 간다.냉장고에서 전날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을 꺼낸다.전자레인지에 돌리면서 날씨 앱을 본다.비 올 확률 60%.“애매하게 오네.”비가 많이 오면 작업이 미뤄질 수 있다.일을 쉬게 되면 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 비가 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펌프카 할부금, 보험료, 유류비를 계산하면 하루 작업이 취소되는 것이 단순한 휴일은 아니다.오전 5시 17분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차에 오른다.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어젯밤 보낸 문자가 생각난다.아빠 나 학원 하나 그만두면 안 돼?태수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아들의 수학학원비는 월 42만 원이다.최근 성적은 오히려 떨어졌다.태수는 학원을 .. 2026. 8. 11. 윤복순, 72세, 충북 제천에서 혼자 사는 은퇴한 세탁소 운영자 오전 5시 48분윤복순은 알람 없이 눈을 뜬다.휴대전화 화면을 켜니 5시 48분이다.다시 잘 수도 있지만 일어나기로 한다.침대 끝에 앉아 발목을 몇 번 돌린다. 오른쪽 무릎이 뻣뻣하다.“오늘은 괜찮네.”혼잣말을 한다.사실 어제보다 조금 아프다.하지만 복순에게 몸이 아프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이 정도 가지고 병원을 가나.주방으로 가서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냉장고를 열어보니 며느리가 지난주에 가져다준 요구르트가 있다.유통기한을 확인한다.오늘까지다.요구르트를 꺼내면서도 잠깐 생각한다.저번에 뭐 사오지 말라고 했는데.며느리가 싫어서가 아니다.오히려 고맙다.하지만 누군가 자기 냉장고 안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판단하는 상황이 조금 싫다.커피믹스 하나를 컵에 뜯어 넣는.. 2026. 8. 11. 가족에게 감정적 경계란? 가족 관계에서 죄책감 없이 선 긋는 방법 가족이 힘들다고 말하면 무조건 들어줘야 할까요? 부모가 화가 났다면 자녀가 기분을 풀어줘야 할까요? 형제자매의 경제 문제나 부부 갈등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책임져야 할까요?가족은 서로 돕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도움과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면 한 사람의 감정과 문제가 다른 가족의 삶 전체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고, 부모가 우울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며, 형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쁜 가족이 된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이때 필요한 개념이 감정적 경계입니다.감정적 경계는 가족을 밀어내기 위한 벽이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내 감정과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상대의 감정과 책임인지 구분하는 기준입니다.감정적 경계란 무엇인가감정적 경계란 자신의 감정, 생각, .. 2026. 7. 1. 착한 아이 증후군이란?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방법 누군가 부탁하면 내 일정이 바빠도 먼저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속으로는 하기 싫지만 상대가 실망할까 봐 거절하지 못합니다. 불쾌한 말을 들어도 분위기가 나빠질까 봐 웃어넘기고, 자신에게 잘못이 없어도 먼저 사과합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을 착하고 배려심이 깊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관계가 편하지 않습니다. 늘 상대의 표정을 살펴야 하고,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해 일정과 감정이 쉽게 소진됩니다. 이처럼 타인의 인정과 관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반복적으로 억누르는 경향을 흔히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최근 사람 맞추기 행동에 관한 연구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갈등을 피하려는 행동이 과도해지면 진솔한 관계, 정서적 균형, 긍정적인 자기 인.. 2026. 7. 1. 부모화란 무엇일까? 어린 시절 ‘어른 역할’이 성인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회복 방법 어릴 때부터 “철이 일찍 들었다”, “너는 정말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책임졌으며, 부모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부모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책임감이 강하고 성숙한 아이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주변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았을 가능성도 큽니다. 하지만 그 책임이 아이의 나이와 능력을 넘어섰고,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아이가 지속적으로 부모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부모화(paren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부모화를 경험한 사람은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신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부탁을 거절하면 죄책감을 느끼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자신이 해.. 2026. 7. 1.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