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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책 추천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안경희

by 마음 탐구소 2026. 8. 13.

파스텔톤 표지의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책 이미지

안경희의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살았으면’이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거나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정신건강학 의사이자 조울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가 조울병을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병원에서 수련하던 중 조울병을 경험했고, 자신의 병을 인식하고 치료받은 뒤 그 경험을 글로 풀어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의학적 설명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병을 겪는 사람의 내부 세계’가 담겨 있다. 

정신질환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울병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우울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고, 잠도 거의 자지 않으며,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거나 모종의 이유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런 행동을 한 뒤 다시 깊은 우울에 빠지는 사람을 보면 곁에 있는 사람조차 그 진폭에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마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겼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 것과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 것은 같은 것일까?

나는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정신질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조울병을 앓는 사람이 조증 상태에서 충동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평소 가치관이나 성격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질병 때문에 발생한 행동이라고 해서 그 행동의 모든 결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행동을 무조건 용서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부터가 질병의 영향인지 이해하려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정신질환을 단순히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비교적 쉽게 휴식을 허락한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냥 걸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을 긍정적으로 해라”,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 “다들 힘들게 산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 쉽다.

물론 정신질환에도 환경, 관계, 스트레스, 개인의 경험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단순한 의지나 도덕성의 문제로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을 읽으며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곧 모든 행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가 병 때문에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이 받은 상처까지 부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환자는 치료받고 보호받아야 하지만, 가족이나 연인처럼 곁에서 그 상황을 함께 겪는 사람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정신질환을 바라볼 때 단순히 한 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이해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병이니까 어쩔 수 없다”와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다”라는 두 극단 사이에 훨씬 복잡한 현실이 존재한다.

바로 그 복잡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시작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의 삶을 ‘병’ 하나로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환자가 되기 이전부터 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자녀이고 친구이며 연인이고 동료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며 자신만의 기억과 관계와 삶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정신질환이 발생하면 그 사람을 설명하는 수많은 요소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조울증 환자’, ‘우울증 환자’라는 하나의 이름만 남기도 한다.

진단명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지만 때로는 사람 자체를 진단명 속에 가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제목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이 말은 “당신의 병이 나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다.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병보다 먼저 사람을 보고 있는 문장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정신질환을 이해한다는 것이 단순히 증상을 공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증의 증상이 무엇인지, 우울 삽화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병을 가진 사람이 하루를 어떻게 견디는지, 자신의 행동을 나중에 어떻게 바라보는지,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조울병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빨리 그 사람을 판단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행동 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사정을 얼마나 쉽게 놓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서 제목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조언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삶을 대신 해결해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다.
그 사람의 고통을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로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과 같이 병에 상관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이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