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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윤상철, 63세, 남성,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다시 배우는 은퇴 일용직 노동자

by 마음 탐구소 2026. 9. 5.

윤상철은 전남 순천 외곽의 오래된 임대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산다. 젊을 때부터 건설현장, 양계장, 농산물 상하차, 철거현장을 오가며 몸으로 하는 일을 해왔다. 지난해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사실상 일을 그만뒀다.
아내는 60세로 작은 반찬공장에서 주 4일 일한다. 두 자녀는 모두 결혼해 다른 지역에 산다. 부부의 월소득은 국민연금과 아내의 근로소득을 합쳐 약 180만 원 정도다. 예금은 2천만 원이 조금 안 되고 별다른 부채는 없다.
상철에게는 가족 대부분이 아주 늦게까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는 일상적인 한글을 어느 정도 읽지만 긴 문장과 낯선 단어를 정확하게 읽고 쓰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결과다.
그동안 그는 이것을 거의 모든 사람에게 숨겼다.
지난해부터 지역 복지관의 성인문해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늙어서 심심하니까 공부 좀 하는 거지.”
하지만 수업이 있는 날이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1. 현재의 하루

오전 5시 58분

상철은 눈을 뜬다.
알람은 6시 20분에 맞춰져 있다.
옆에서 아내 미자가 자고 있다.
상철은 천장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휴대전화를 가져온다.
오늘은 문해교실 수업이 있는 날이다.
카카오톡에 복지관에서 온 메시지가 있다.

오늘 수업 준비물
교재 3권, 받아쓰기 공책, 필기도구
오전 10시에 뵙겠습니다.

상철은 메시지를 천천히 읽는다.
준비물. 교재. 필기도구.
이 정도 단어는 아무 문제 없다.
그런데 마지막
‘뵙겠습니다’
에서 잠시 멈춘다.
읽을 수 있다.
뜻도 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한 번 음절을 나눠본다.
뵙-겠-습-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아내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전 6시 17분

주방에서 물을 마신다.
냉장고 문에 병원 예약 안내문이 자석으로 붙어 있다.
상철은 무심한 척 한번 읽어본다.

정형외과 진료 예약
2026년 8월 25일 화요일 오전 11시 20분

날짜와 시간은 쉽다.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있다.

내원 시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 주십시오.

상철은 지참에서 잠깐 멈춘다.
무슨 뜻인지는 문맥으로 짐작한다.
신분증 가져오라는 말이다.
'그냥 가져오라 하면 되지 뭘 지참이야.'
속으로 생각한다.
이런 순간마다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이 괜히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사실 그 짜증의 일부는 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자신에게 향해 있다.

오전 6시 43분

아내가 일어난다.
“당신 오늘 공부 가는 날이지?”
“응.”
미자가 밥솥을 연다.
“숙제는 했어?”
상철이 바로 대답한다.
“다 했지.”
거짓말은 아니다.
거의 다 했다.
받아쓰기 한 페이지 중 두 문장은 아직 빈칸이다.
미자가 웃는다.
“학생이네, 학생.”
상철이 얼굴을 찡그린다.
“뭔 학생이야.”
“학교 가면서.”
“복지관이지.”
아내가 웃는다.
상철도 웃지만 ‘학생’이라는 말이 조금 부끄럽다.
동시에 조금 좋다.

오전 7시 12분

아침을 먹는다.
미자가 오늘 공장에 가져갈 반찬통을 챙긴다.
“나 오늘 좀 늦어.”
“왜?”
“주문 많대.”
상철이 말한다.
“힘들면 그만둬.”
미자가 바로 대답한다.
“그럼 당신이 벌어.”
상철이 웃는다.
“내가 벌어놓은 거 많잖아.”
“뭐가 많아.”
둘 다 웃는다.
그러나 상철은 아주 조금 마음이 걸린다.
과거에는 자신의 수입이 집안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아내가 일하러 나가고 자신은 복지관에 공부하러 간다.
아내가 그 점을 문제 삼은 적은 없다.
그런데도 가끔 역할이 뒤집힌 것처럼 느껴진다.

오전 7시 51분

아내가 출근한다.
상철은 설거지를 한다.
혼자 집에 남자 바로 책상에 앉지는 않는다.
TV를 켠다.
아침 뉴스.
10분.
채널을 돌린다.
홈쇼핑.
다시 뉴스.
시계를 본다.
8시 14분.
'아직 시간 많네.'
하지만 마음은 숙제에 가 있다.
결국 TV를 끈다.

오전 8시 23분

식탁 위에 공책을 펼친다.
어제 숙제는 짧은 문장을 따라 쓰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들판이 황금빛으로 변합니다.

상철은 천천히 써 내려간다.
황금빛.
'황'을 쓰다가 멈춘다.
공책 뒤쪽을 뒤적인다.
지난번에 쓴 글자를 찾는다.
없다.
휴대전화 검색창을 열어 음성입력을 누른다.
“황금빛.”
검색 결과가 뜬다.
상철은 화면에 나타난 글자를 보고 공책에 옮긴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바로 끈다.
누가 본 것도 아닌데 약간 부끄럽다.
'검색해서 쓰면 공부가 되나.'
그러면서도 다시 틀리게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오전 8시 56분

아들이 전화한다.
“아버지.”
“왜.”
“다음 주 병원 혼자 가실 수 있죠?”
상철의 표정이 굳는다.
“내가 애냐?”
“아니, 저번에 접수하는 거 어렵다고 하셔서.”
“뭐가 어려워. 기계가 이상하게 돼 있더만.”
아들이 웃는다.
“요즘 다 키오스크예요.”
상철은 그 단어를 안다.
키오스크.
병원, 식당, 기차역에서 여러 번 봤다.
“가면 하지.”
“안 되면 직원한테 물어보세요.”
상철이 바로 말한다.
“그걸 내가 왜 못 해.”
아들이 대답한다.
“못 한다는 게 아니라.”
상철은 말을 끊는다.
“바빠서 전화했냐?”
“그냥 병원 생각나서.”
잠시 손녀 이야기로 넘어간다.
통화를 끝내고 나서 상철은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아들은 걱정해서 전화했다.
안다.
그런데 도움을 전제로 이야기하면 자신을 늙고 무능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오전 9시 21분

외출 준비를 한다.
셔츠를 갈아입는다.
평소 동네 마트에 갈 때보다 조금 깔끔하게 입는다.
거울을 본다.
머리를 손으로 정리한다.
문해교실에 가는 데 옷을 왜 신경 쓰는지 자신도 모른다.
가방에 교재를 넣는다.
공책.
볼펜 두 자루.
연필.
지우개.
숙제 공책을 넣다가 빈칸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고민한다.
결국 그대로 넣는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방을 닫는다.

오전 9시 42분

복지관으로 가는 버스.
상철은 창가에 앉는다.
버스 안 광고판에 문장이 하나 적혀 있다.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개인정보 보호수칙

상철은 무심한 척 읽어본다.
금융사기.
예방.
개인정보.
보호수칙.
마지막 단어를 읽은 뒤 작은 만족감이 생긴다.
예전 같으면 긴 글씨는 아예 보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간판이나 광고를 보면 자꾸 읽어본다.
그러면서 자신은 공부에 별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

오전 10시 02분

문해교실.
학생은 모두 여덟 명이다.
50대 후반부터 80대 초반까지 있다.
교사 박은정이 들어온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람들이 대답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상철은 목소리를 작게 낸다.
은정이 말한다.
“오늘 숙제부터 볼게요.”
상철의 손이 공책 위로 간다.
평소 현장에서 작업반장이 검사하러 올 때보다 더 긴장된다.
이상하다.
틀린다고 월급이 깎이는 것도 아니다.
혼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빨간 펜 하나가 신경 쓰인다.

오전 10시 19분

은정이 상철의 공책을 본다.
“아주 잘 쓰셨어요.”
상철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뭐 그냥 따라 쓴 거죠.”
은정이 빈칸을 본다.
“이건 어려우셨어요?”
상철은 바로 말한다.
“시간이 없어서.”
대답하고 곧 후회한다.
시간은 있었다.
그냥 몰랐다.
은정은 별말 없이 말한다.
“같이 해볼까요?”
상철은 순간
“내가 해볼게요.”
라고 한다.
연필을 든다.
단어는 ‘쾌적한’이다.
'쾌.'
알 것 같으면서 확실하지 않다.
상철은 10초 정도 연필을 들고 있다.
옆에 앉은 72세 순자가 말한다.
“나도 그거 못 썼어.”
상철이 순자를 본다.
순자는 웃고 있다.
그 순간 이상하게 긴장이 조금 풀린다.

오전 10시 36분

받아쓰기.
은정이 말한다.
“첫 번째 문장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매우 쾌적합니다.

상철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는다.
하필 그 단어다.
교사가 천천히 다시 읽는다.
상철은 써본다.
쾌적합니다.
이번에는 맞는 것 같다.
다음 문장.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상철은 존중을 정확히 쓴다.
그 단어는 전에 배웠다.
세 번째 문장은

건강을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합니다.

이번에는 규칙적에서 막힌다.
상철은 옆을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몰라도 옆 사람 공책을 슬쩍 봤을 것이다.
요즘은 일부러 자신이 생각해서 쓴다.
틀리는 것이 덜 창피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완전히 창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전 11시 03분

채점을 한다.
10문제 중 7개를 맞았다.
상철은 숫자를 본다.
지난달에는 보통 5~6개였다.
마음이 좋다.
은정이 말한다.
“윤상철 선생님 많이 늘었어요.”
사람들이 상철을 본다.
상철은 바로 손을 휘젓는다.
“아이고, 뭐가 늘어.”
순자가 말한다.
“지난번보다 잘했네.”
상철이 웃는다.
“운 좋게 아는 것만 나왔지.”
누군가 칭찬하면 자동으로 낮춘다.
하지만 공책을 덮지는 않는다.
빨간 동그라미 일곱 개를 한번 더 본다.

오전 11시 31분

쉬는 시간.
복지관 직원이 새로운 프로그램 안내서를 나눠준다.
스마트폰 활용 교육이다.
상철은 종이를 받는다.
옆의 순자가 말한다.
“상철 씨 이거 같이 하자.”
“뭘.”
“사진 보내고 인터넷 하는 거 가르쳐준대.”
상철이 말한다.
“나는 그런 거 다 해.”
실제로 카카오톡, 유튜브, 전화 정도는 잘한다.
은행 앱이나 온라인 예약은 어렵다.
순자가 말한다.
“나는 하나도 몰라.”
“그럼 하든가.”
“같이 하면 안 무섭잖아.”
상철은
“생각해보고.”
라고 한다.
사실 같이 신청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혼자 스마트폰 교실에 들어가는 것은 좀 창피하다.

오후 12시 08분

수업이 끝난다.
몇 명이 복지관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다.
오늘 메뉴는 콩나물국과 고등어조림이다.
순자가 묻는다.
“상철 씨는 학교 어디까지 다녔어?”
상철의 숟가락이 잠깐 멈춘다.
이 질문은 싫다.
“그냥 뭐… 옛날 사람이지.”
순자가 말한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옆의 78세 노인이 말한다.
“나는 학교 문턱도 못 갔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다.
상철은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제대로 다니고 이후에는 출석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교실에서도 자신의 정확한 이야기를 말하고 싶지 않다.
모두 비슷한 이유로 온 곳인데도 그렇다.

오후 12시 47분

버스정류장.
순자와 같이 기다린다.
순자가 안내문을 꺼낸다.
“스마트폰 하는 거 나 신청한다.”
“해.”
“당신도 해.”
“내가 그런 걸 왜 해.”
“은행 같은 거 휴대폰으로 하면 편하다잖아.”
상철은 버스 오는 방향을 본다.
“은행 가면 직원이 해주는데.”
순자가 웃는다.
“직원 귀찮게 하지 말고 배워.”
상철이 웃는다.
“은행 직원 월급이 그런 거 하라고 주는 거야.”
말하면서도 신청서를 다시 한번 본다.

오후 1시 26분

집 근처 마트에 들른다.
아내가 두부와 대파를 사오라고 했다.
무인계산대 두 대와 직원 계산대 하나가 있다.
직원 계산대에는 세 사람이 줄을 서 있다.
무인계산대는 비어 있다.
상철은 잠시 고민한다.
무인계산대로 간다.
두부 바코드를 찍는다.
삑.
대파에는 바코드가 없다.
화면에 여러 메뉴가 뜬다.
농산물 직접 선택.
누른다.
채소 사진이 여러 개 나온다.
대파를 찾지 못한다.
뒤에 젊은 여자가 서기 시작한다.
상철은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첫 화면으로 돌아간다.
다시 누른다.
잘못 누른다.
직원이 멀리서 말한다.
“도와드릴까요?”
상철은 바로 대답한다.
“아뇨, 됩니다.”
젊은 여자가 다른 계산대로 이동한다.
그제야 상철의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오후 1시 32분

결국 직원을 부른다.
“이게 대파가 없네.”
직원이 화면을 두 번 누른다.
“여기 채소에서 가나다순으로 찾으시면 됩니다.”
“아, 내가 여기까지 했는데.”
상철은 마치 거의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한다.
직원이 웃으며
“네.”
라고 한다.
결제를 끝낸다.
밖으로 나와 생각한다.
'아까 처음부터 물어봤으면 1분이면 끝났네.'
하지만 다음에도 바로 물어볼지는 자신도 모른다.

오후 2시 03분

집.
상철은 냉장고에 장을 넣는다.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두부 대파 사놨다

아내:

학생 오늘 공부 잘했어? ㅋㅋ

상철은 답한다.

100점

실제로는 70점이다.
미자가

거짓말 ㅋㅋ

이라고 보낸다.
상철이 웃는다.

70

미자:

많이 했네

상철은 그 문장을 보고 잠깐 멈춘다.
아내가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 같다.
괜히 눈앞이 조금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어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칠십 점 가지고 뭘.'

오후 2시 37분

TV를 켠다.
졸음이 온다.
소파에서 40분 정도 잔다.

오후 3시 28분

전화벨에 깬다.
모르는 번호다.
“여보세요.”
“윤상철 고객님 맞으시죠? ○○카드인데요.”
상철의 몸이 약간 긴장한다.
금융기관 전화는 싫다.
“무슨 일이요?”
상대가 빠르게 설명한다.
상철은 절반 정도 놓친다.
“잠깐만. 천천히 말해봐요.”
상대가 다시 설명한다.
카드 유효기간이 끝나 재발급을 안내한다는 내용이다.
“문자로 보내줘요.”
“네, 안내 문자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는다.
문자가 온다.
긴 문장과 링크.
상철은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다.
아들에게 보내려고 공유 버튼을 누른다.
그러다 멈춘다.
'이것까지 물어보면 또…'
문자를 닫는다.
카드가 당장 정지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카드사에 직접 전화하기로 한다.

오후 4시 06분

아파트 앞 벤치에서 동네 친구 재만을 만난다.
재만은 상철보다 두 살 많다.
“어디 갔다 왔냐?”
상철이 대답한다.
“복지관.”
“거기서 뭐 하는데?”
상철은 잠깐 망설인다.
“그냥 프로그램.”
재만은 모른다.
문해교실에 다니는 사실을 동네에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노래 배우냐?”
상철이 웃는다.
“내가 노래는 무슨.”
재만이 담배를 피우며 말한다.
“나는 복지관 그런 데 아직 갈 나이 아니다.”
농담이다.
상철도 웃는다.
그런데 바로
“나도 놀러 가는 거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 않는다.

오후 4시 39분

재만과 헤어진다.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생각한다.
'뭐가 창피하다고 말을 못 하지.'
공부하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일 수 있다.
그런데
“글을 잘 몰라서 배우러 다닌다.”
라는 설명을 붙이는 순간 자신이 평생 숨겨온 것이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다.

오후 5시 11분

상철은 빨래를 걷는다.
아내의 작업복도 함께 갠다.
미자의 티셔츠 하나가 뒤집혀 있다.
다시 뒤집어 접는다.
자신은 집안일을 꽤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친구들 앞에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친구가
“마누라가 밥 안 해줘?”
라고 물으면
“하지.”
라고 답한다.
실제로는 상철이 저녁을 준비하는 날도 많다.
그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오래된 기준은 글 문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후 5시 48분

아내가 돌아온다.
“다녀왔어.”
“응.”
“오늘 많이 힘들었어?”
“그냥.”
미자가 냉장고를 열며 말한다.
“두부 샀네.”
“응.”
“대파도?”
“샀어.”
“잘했네.”
상철이 웃는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잘했대.”
미자가 가방을 내려놓는다.
“오늘 받아쓰기 몇 개 맞았어?”
“일곱.”
“많이 맞았네.”
상철은 대답한다.
“쉬운 것만 나왔어.”
미자가 갑자기 말한다.
“당신 처음 갈 때는 두 개 맞았다며.”
상철이 쳐다본다.
“누가 그래?”
“당신이 말했잖아.”
상철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
미자가 웃는다.
“창피한 것도 많다.”
상철이 냉장고 문을 닫으며 말한다.
“창피한 게 아니라.”
말을 이어가려다가 그만둔다.

오후 6시 23분

저녁을 준비한다.
아내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상철은 두부를 썬다.
미자가 묻는다.
“스마트폰 교실도 있다며?”
상철이 본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
“복지관에서 문자 왔던데.”
상철은 자신이 아내 번호도 보호자 연락처로 적어놓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거 애들 하는 거야.”
“당신이 더 배워야지.”
“나 다 할 줄 알아.”
미자가 웃는다.
“지난번 기차표도 나한테 끊어달라 했잖아.”
상철이 바로 말한다.
“그건 앱이 이상한 거지.”
“세상 앱이 다 당신한테만 이상하냐?”
둘이 웃는다.
상철도 웃다가 말한다.
“순자 아줌마가 같이 하자더라.”
미자가 바로 말한다.
“해.”
“생각해본다니까.”
이미 마음은 거의 신청하는 쪽이다.

오후 7시 07분

저녁 식사.
TV에서 퀴즈 프로그램이 나온다.
화면에 사자성어 문제가 나온다.
상철은 답을 모른다.
미자가 맞힌다.
“오, 당신 이런 걸 알아?”
“당신보다 학교 오래 다녔잖아.”
농담이다.
상철도 웃는다.
예전이었다면 조금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오늘은 괜찮다.
문해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한 뒤 이상하게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주 조금 쉬워졌다.
그렇다고 많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오후 7시 54분

딸에게 영상통화가 온다.
손주가 화면에 얼굴을 들이민다.
“할아버지!”
상철이 웃는다.
“왜.”
“나 오늘 받아쓰기 백점!”
상철이 크게 웃는다.
“할아버지도 오늘 받아쓰기 했다.”
딸이 놀란다.
“진짜?”
상철은 순간 말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손주가 묻는다.
“몇 점?”
상철이 대답한다.
“칠십 점.”
손주가 웃는다.
“내가 이겼다.”
상철도 웃는다.
“다음엔 할아버지가 이긴다.”
딸이 아무 말 없이 웃고 있다.

오후 8시 03분

영상통화가 끝나려는데 딸이 말한다.
“아빠 공부 다녀?”
“응.”
“엄마한테 들었어.”
상철은 순간 방어적으로 대답한다.
“그냥 심심해서 하는 거야.”
딸은 별말 없이
“잘했네.”
라고 한다.
“뭘 잘해.”
“그냥. 아빠가 그런 거 하는 거 좋다고.”
상철은 화면에서 눈을 조금 피한다.
“됐어. 애나 잘 키워.”
통화를 끝낸다.
몇 초 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본다.
딸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들킨 기분과,
딸이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있다.

오후 8시 41분

상철은 다시 공책을 펼친다.
손주에게
“다음에 이긴다.”
고 한 말 때문이다.
미자가 TV를 보다가 말한다.
“진짜 공부하네.”
“시끄러워.”
오늘 틀린 단어를 다섯 번씩 쓴다.
규칙적.
쾌적하다.
의견.
지참.
마지막은 병원 안내문에서 본 단어다.
교재에 나온 것도 아닌데 한번 써본다.
지참.
그리고 옆에 작은 글씨로 적는다.
가지고 감.
뜻까지 적으니 조금 뿌듯하다.

오후 9시 26분

스마트폰 활용교육 신청서를 다시 본다.
QR코드가 있다.
상철은 QR코드 자체는 안다.
카메라를 켜고 가져다 댄다.
링크가 나타난다.
누른다.
신청 페이지.
이름.
전화번호.
생년월일.
여기까지 입력한다.
다음 항목.

참여 동기

상철은 멈춘다.
무엇을 써야 할지보다 문장으로 직접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한참 생각한다.
결국 입력한다.

휴대폰을 잘 배우고 싶어서

짧다.
맞춤법이 맞는지 두 번 확인한다.
신청 버튼을 누른다.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상철은 화면을 본다.
아내에게 말하지 않는다.
내일 이야기할 생각이다.

오후 10시 02분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가 묻는다.
“불 끌까?”
“응.”
불이 꺼진다.
잠시 조용하다.
미자가 말한다.
“당신 공부하는 거 애들이 좋아하더라.”
“뭘 좋아해.”
“당신은 꼭 누가 좋아한다고 하면 싫다고 해.”
상철은 대답하지 않는다.
몇 초 뒤 말한다.
“내가 옛날에 학교만 좀 다녔으면…”
말이 거기에서 멈춘다.
미자가 묻는다.
“뭐?”
“아니다.”
“학교 다녔으면 뭐.”
상철은 어둠을 보며 말한다.
“그냥 좀 편했겠지.”
미자가 잠시 말이 없다.
“그래도 지금 배우면 되지.”
상철은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쉽기 때문이다.
60년 가까이 불편하게 살아온 것을
‘지금 배우면 된다’는 말 하나로 정리할 수는 없다.
그런데 틀린 말도 아니다.
그래서 대답한다.
“그러니까 다니잖아.”

오후 10시 34분

아내가 잠든다.
상철은 눈을 뜨고 있다.
오늘 무인계산대에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일이 떠오른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직원 계산대로 갔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손주가
“내가 이겼다.”
고 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는 누군가 자신보다 글을 잘 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상황 자체가 싫었다.
손주 앞에서는 이상하게 괜찮았다.
자신이 늙어서 그런 것인지,
공부를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손주라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눈을 감기 전에 생각한다.
'다음번에는 여덟 개는 맞아야지.'
곧바로
'뭘 점수 가지고.'
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덟 개를 맞고 싶다.
오후 10시 47분.
잠이 든다.

2.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 학교보다 일이 먼저였던 집

윤상철은 1963년 전남 구례의 농촌마을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작과 품팔이를 했고 어머니도 농사일을 했다.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상철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도 집에서는 아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즐거웠다.
새 공책 냄새를 좋아했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글자를 따라 쓰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석이 잦았다.
농번기에는 집안일을 도왔고,
동생을 돌보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에는 논 일을 거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에는 학교보다 일을 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누군가 공식적으로
“학교 그만둬.”
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씩 가지 않게 됐다.

열 살 무렵

상철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특히 책가방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하지만 친구 앞에서는
“학교 재미없잖아.”
라고 했다.
어린아이에게도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필요 없다고 만드는 방식은 가능했다.
친구가 숙제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나는 숙제 없어서 좋다.”
고 말했다.
그 말도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아침부터 학교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은 편했다.
그러면서 교과서는 갖고 싶었다.
두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10대 — 일을 배우다

열세 살 정도부터 농사일 외에 시장에서 짐을 나르고 품삯을 받기 시작했다.
몸이 작은 편이었지만 악착같이 일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상철이는 눈치가 빨라.”
해야 할 일을 말하기 전에 알아차리는 능력은 현장에서 매우 유용했다.
읽고 쓰는 능력보다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순서로 물건을 옮겨야 하는지,
어떤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상철은 이 세계에서 무능하지 않았다.
오히려 꽤 유능했다.
이 경험은 이후 평생 중요한 것이 된다.
글을 잘 모른다는 사실과 자신이 일을 못한다는 것은 전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상철은 그 둘이 같은 것으로 취급되는 순간을 싫어했다.

17세 — 처음 글 때문에 크게 창피했던 일

다른 지역 농산물 창고에서 일할 때였다.
작업반장이 종이에 적힌 주소를 주며 말했다.
“이거 저 창고에 갖다줘.”
상철은 주소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근처 지명 일부만 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동료가 말했다.
“너 이것도 못 읽어?”
크게 비웃은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 몇 명이 들었다.
상철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글씨가 개판이라 그렇지.”
라고 했다.
그 뒤로는 모르는 글을 만나면
글씨가 이상하다,
눈이 나쁘다,
설명이 복잡하다,
종이가 젖었다
같은 이유를 먼저 찾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거짓말하려고 만든 습관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자동적인 반응이 됐다.

20대 — 세상에서 글을 피하는 법을 배우다

건설현장에 들어갔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일 자체에는 자신이 있었다.
측량 보조,
자재 운반,
콘크리트 작업,
철거.
작업지시는 주로 말로 전달됐다.
상철은 일을 빨리 배웠다.
동료들은 그를 믿었다.
그러나 문서가 나오면 다른 사람이 먼저 보도록 했다.
“그거 네가 좀 봐.”
라고 자연스럽게 넘겼다.
서명할 일이 있으면 자신의 이름 석 자는 정확하게 썼다.
그 세 글자는 수없이 연습했다.
사람들은 그가 문해능력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눈치채지 못했다.

군대

군대에서는 어려움이 조금 더 컸다.
기록 작성과 안내문을 읽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철은 다른 병사들에게 자주 물었다.
다만
“글을 못 읽어서.”
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뜻이냐?”
라고 물었다.
질문을 내용에 대한 질문처럼 바꾸는 방법을 배웠다.
상철은 군 생활을 무난하게 마쳤다.
자신이 충분히 영리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글 문제에 대한 수치심은 더 커졌다.
자신이 바보가 아닌데 사람들이 바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미자를 만나다

스물여섯 살 때 식품공장에서 일하던 미자를 소개받았다.
미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처음 연애할 때 상철은 글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식당 메뉴판에서 모르는 음식이 있으면
“너 뭐 먹을래?”
라고 물었고 미자가 고르면
“나도 그거.”
라고 했다.
영화관에서는 미자가 표를 샀다.
은행 서류는 직원에게 물어보며 작성했다.
연애 초반 미자는 단순히 상철이 귀찮은 일을 남에게 맡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 들키다

결혼한 지 약 1년 뒤였다.
관공서에서 온 안내문을 미자가 상철에게 보여줬다.
“이거 무슨 말이야?”
상철은 대충 읽다가 엉뚱하게 설명했다.
미자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몇 번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결국 물었다.
“당신 글 잘 못 읽어?”
상철은 화를 냈다.
“누가 못 읽어.”
미자는 놀랐다.
“못 읽는 게 뭐라고 화를 내.”
그 말이 상철에게는
‘정말 못 읽는구나’
라는 확인처럼 들렸다.
두 사람은 크게 싸웠다.
며칠 뒤 상철이 먼저 말했다.
“학교를 거의 못 다녔다.”
그것이 결혼 후 처음으로 제대로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미자는 이후 별일처럼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한 문서는 함께 읽어줬다.
그런 태도가 고마우면서도 상철은 때때로 짜증을 냈다.
도움을 받는 순간마다 자신의 약점을 다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

딸과 아들이 태어났다.
상철에게 한 가지 강한 생각이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빠지면 안 된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어.”
라고 하면 유난히 화를 냈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무단결석을 한 적이 있었다.
상철은 평소보다 크게 화냈다.
“학교를 왜 안 가!”
아들이 말했다.
“하루 안 간다고 뭐가 달라져.”
상철이 소리쳤다.
“너는 학교 갈 수 있잖아!”
아들은 그 말의 의미를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상철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길게 설명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녀의 숙제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특히 어려웠다.
“아빠, 이것 좀 봐줘.”
라고 숙제를 가져오면 상철은 긴장했다.
쉬운 산수는 도와줄 수 있었다.
국어나 영어는 거의 아내에게 넘겼다.
“엄마한테 물어봐. 아빠 피곤해.”
라고 했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아버지가 정말 피곤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상철도 그 편이 편했다.
하지만 아이가 숙제를 들고 어머니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조금 서운했다.
자신이 피한 상황인데도 자신이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30~40대 — 가장 자신 있었던 시기

건설경기가 좋을 때는 일도 많았다.
현장에서는 상철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경험이 쌓이면서 신규 작업자들에게 일을 가르쳤다.
도면 전체를 정확하게 읽지는 못해도 실제 현장을 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젊은 작업자에게 말했다.
“책으로만 배워서 되는 게 아니야.”
그 말에는 실제 경험에서 나온 자부심이 있었다.
동시에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자신의 약점을 상대적으로 낮춰보려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상철은 후자의 동기를 의식하지 않았다.

디지털화

50대가 되면서 세상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예전에는 은행 창구에서 말하면 됐다.
기차역에서 직원에게 목적지를 말하면 표를 줬다.
병원에서도 이름을 말하면 접수됐다.
점점 화면이 생겼다.
ATM.
인터넷뱅킹.
모바일 앱.
키오스크.
상철에게 이것들은 단순히 신기술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사람에게 말로 물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숨길 수 있었던 문해능력의 약점이 화면 앞에서는 바로 드러났다.
그래서 키오스크 자체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사람 놔두고 왜 기계를 시켜.”
그 주장에는 실제 불편함에 대한 타당한 비판도 있다.
동시에 개인적인 수치심도 숨어 있다.

일을 그만두다

60대에 들어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일감도 예전 같지 않았다.
지난해 현장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늦게 일어나고,
친구를 만나고,
TV를 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가 길어졌다.
아내는 일을 나갔다.
자녀에게 전화해도 모두 바빴다.
상철은 자신이 쓸모없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집안일도 했고 손주도 가끔 봤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느끼던
‘나는 이것을 잘한다’
라는 감각이 크게 줄었다.

문해교실과의 첫 만남

복지관에서 건강 프로그램을 듣다가 문해교실 안내문을 봤다.
처음에는 지나쳤다.
몇 주 뒤 복지사가 직접 말했다.
“선생님, 이런 프로그램도 있는데 한번 해보실래요?”
상철은 바로 말했다.
“나는 글 알아.”
복지사가 웃었다.
“아시는 분들도 많이 오세요. 글씨도 쓰고 책도 읽고요.”
상철은 거절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미자가 말했다.
“가봐.”
“내가 거길 왜 가.”
“공짜라며.”
“공짜면 다 해야 돼?”
한 달 뒤 상철이 먼저 복지관에 전화했다.

첫 수업

첫날 교실 문 앞에서 돌아갈 뻔했다.
안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 받아쓰기는 10개 가운데 2개를 맞았다.
상철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는 5개 맞았다고 말했다.
며칠 뒤 실제 점수를 말했다.
미자는 웃지 않았다.
“두 개 알았으면 다음에 세 개 알면 되지.”
상철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겉으로는
“뭘 이런 걸 가지고.”
라고 했다.

1년 뒤의 현재

이제는 짧은 신문기사도 천천히 읽는다.
모르는 단어는 여전히 많다.
받아쓰기도 자주 틀린다.
그러나 예전과 중요한 차이가 하나 생겼다.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무조건 피하지 않고 한번 읽어보려는 행동이 생겼다.
간판을 읽는다.
병원 안내문을 읽는다.
버스 광고를 읽는다.
손주에게 오는 문자도 직접 읽는다.
상철은 이것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늦게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고도 잘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지관 수업이 휴강하면 꽤 섭섭해한다.

3.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왜 상철은 글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보다 핑계를 만드는 것이 편했을까?

상철에게 문해능력의 부족은 단순한 기술 부족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실제 일에서는 상당히 유능했다.
복잡한 현장을 이해했고,
사람을 가르쳤으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런데 글 하나를 읽지 못하는 순간 상대방이 그 모든 능력을 보지 않고
‘무식한 사람’
으로 자신을 판단할지 모른다고 느꼈다.
그래서 문제의 원인을 자신 바깥으로 옮겼다.
“글씨가 이상하다.”
“기계가 어렵다.”
“설명이 복잡하다.”
일종의 자기보호적 합리화가 기능했다.
그 덕분에 수치심을 피할 수 있었다.
반대로 도움을 받을 기회도 줄었다.

왜 무인계산대에서 처음부터 직원을 부르지 못했을까?

실제 비용은 거의 없다.
직원에게
“이거 어떻게 해요?”
라고 물으면 된다.
하지만 상철에게는 질문 하나에 다른 의미가 붙는다.
‘내가 이것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따라서 몇 분간 혼자 씨름하는 편이 심리적으로는 덜 비싸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상철 자신도 남이 도움을 요청하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때 기준이 달라진다.
수치심에서는 이런 비대칭이 자주 생길 수 있다.

왜 아들의 도움은 싫어하면서 아내의 도움은 비교적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내는 상철의 약점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이미 숨길 것이 없다.
두 사람의 관계 안에서는 글을 잘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일상화됐다.
반면 자녀는 다르다.
상철은 오랫동안 가르쳐주고 보호해주는 아버지였다.
이제 아들이
“직원에게 물어보세요.”
라고 말하면 역할이 뒤집히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아들이 아버지를 무능하게 생각한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철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의 실제 의도만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처럼 느껴지는가다.

왜 딸과 손주에게 받아쓰기 점수를 이야기한 것은 중요한 변화일까?

예전의 상철이라면 숨겼을 가능성이 높다.
10개 중 7개를 맞았다는 정보에는 동시에 두 가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곱 개나 맞았다는 성취.
세 개를 틀렸다는 부족함.
과거의 상철은 후자를 더 크게 봤다.
지금은 전자를 조금씩 볼 수 있다.
특히 손주가
“내가 이겼다.”
고 말했는데도 부끄럽지 않았다.
손주와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조금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칭찬을 받으면 항상 낮춰 말할까?

“운 좋았어.”
“쉬운 것만 나왔어.”
“그냥 따라 쓴 거야.”
상철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겸손이라는 문화적 습관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기능이 더 있다.
자신이 먼저 성취를 낮춰놓으면 다음에 실패했을 때 덜 창피하다.
“나 잘하지?”
라고 말한 사람이 다음 시험에서 두 개를 맞으면 체면이 상한다.
처음부터
“별거 아니다.”
라고 하면 안전하다.
따라서 자신감을 낮추는 말은 단순히 자신을 싫어해서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의 수치심을 미리 줄이는 보험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왜 학교교육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책으로 배우는 사람을 낮춰 말한 적도 있을까?

상철은 자녀가 학교에 빠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동시에 현장에서는
“책으로만 배워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두 생각이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상철 안에서는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놓친 기회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현장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실제로 잘하는 영역의 가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즉 상철은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가치 있게 여기면서도, 자신에게 있는 것이 더 낮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은 거부했다.
둘 다 자연스러운 욕구다.

왜 스마트폰 교육을 받으면서도 “나는 다 할 줄 안다”고 말할까?

상철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보내고,
영상도 보고,
QR코드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스마트폰을 못한다.”
는 표현이 실제보다 자신을 지나치게 무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원하는 표현은 오히려 이쪽에 가깝다.
“내가 아는 것도 많은데 모르는 부분이 조금 있다.”
문제는 세상에서는 편의를 위해 사람을 종종 둘로 나눈다는 것이다.
할 줄 아는 사람.
못 하는 사람.
읽는 사람.
못 읽는 사람.
상철의 삶은 이런 구분이 실제 인간을 얼마나 거칠게 잘라내는지를 보여준다.

왜 재만에게 문해교실을 숨겼을까?

친구가 비웃을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잘한다.”
고 말할 수도 있다.
상철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수치심은 실제 타인의 판단이 아니라 예상되는 판단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특히 상철 또래 남성들의 관계에서는 서로 약점을 진지하게 이야기하기보다 농담으로 넘기는 문화가 익숙하다.
재만이
“이 나이에 한글 배우냐?”
라고 농담으로라도 말하면 상철은 크게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정보를 주지 않는다.
자기 모습을 보호할 수 있지만 친한 친구와도 자신의 중요한 변화를 공유하지 못한다.

왜 아내가 일을 하고 자신이 공부를 다니는 현재 상황이 조금 불편할까?

상철은 아내가 일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집안일도 실제로 함께 한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남아 있는 오래된 남성 역할의 기준이 있다.
남자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어야 한다.
젊을 때는 그 역할을 꽤 충실하게 수행했다.
지금은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성적으로는 은퇴를 받아들인다.
감정적으로는 아내가 작업복을 입고 나가고 자신이 가방에 공책을 넣고 나가는 장면이 조금 이상하다.
그런데 동시에 ‘학생’이라는 새로운 역할도 싫지 않다.
한 정체성을 잃는 과정과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상철의 가장 중요한 자기모순

상철은 도움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면서 평생 타인의 도움을 상당히 능숙하게 이용해왔다.
문서를 읽어주는 아내.
표를 끊어주는 직원.
주소를 알려주는 동료.
앱을 대신 사용하는 자녀.
다만 그는 그것을 도움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형태로 바꾸는 데 익숙했다.
“이것 좀 봐.”
“저게 무슨 말이냐?”
“기계가 이상하네.”
자신이 부족해서 받는 도움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최근 달라지는 부분은 도움 자체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것을 아직 모른다.”
라고 말할 가능성이 아주 조금 생겼다는 점이다.
상철은 아직도 쉽게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모른다는 사실이 곧 자기 전체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경험을 조금씩 쌓고 있다.
그가 70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오래 바라보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다.
틀린 세 문제보다,
예전에는 쓰지 못했던 일곱 문제를 이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조금씩 보는 중이다.

4.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키오스크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는 상철을 보았다면, 당신은 단순히 ‘디지털 기기에 약한 노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에게 화면 조작의 어려움 뒤에는 읽기 능력을 들킬지 모른다는 오래된 수치심까지 겹쳐 있다. 우리가 쉽게 답답하다고 평가하는 행동 뒤에는 상대가 설명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경험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2.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을 무조건 고집 센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상철에게 도움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를 얻는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숨겨온 약점을 공개하는 일이기도 했다. 당신이 평생 자신의 존엄과 연결해온 능력을 잃거나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쉽게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3. 당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능력 중 상당 부분도 사실은 좋은 환경에서 배울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상철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수십 년 동안 복잡한 현장에서 일했고 가족을 부양했다. 만약 당신과 상철이 태어날 환경만 서로 바뀌었다면, 당신이 정말 지금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상철보다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다시 배우는 63세 윤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