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은 강원도 평창의 한 조계종 계열 사찰에서 생활한다. 출가한 지 7년째다. 법명은 도현이고 가족과 오래된 친구들은 여전히 민석이라고 부른다.
사찰에는 상주 승려가 네 명 있다. 도현은 새벽예불, 공양 준비와 정리, 신도 응대, 종무소 행정, 사찰 홈페이지 관리, 법회 준비 같은 일을 한다. 개인적인 월급을 받는 직업과는 다르지만 사찰에서 생활비와 의료비 등 기본적인 생활을 지원받고, 소액의 개인 용돈을 받는다.
부모는 경기도 부천에 살며 여동생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도현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속적인 욕망이 모두 사라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도 그런 기대를 꽤 의식한다.
누군가 그에게 말한다.
“스님들은 화도 안 나시죠?”
도현은 웃으면서 대답한다.
“납니다.”
그 다음 말은 하지 않는다.
때로는 화가 난다는 사실보다,
‘스님인 내가 이런 일에 화가 난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날 때도 있다.
1. 현재의 하루
오전 3시 43분
어둠 속에서 작은 진동 알람이 울린다.
도현은 바로 눈을 뜬다.
10초 정도 천장을 바라본다.
몸이 무겁다.
전날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신도회 행사 안내문을 수정했다.
'오늘만 좀 더 자면 안 되나.'
생각한다.
곧바로 다음 생각이 따라온다.
'매일 오늘만이라고 하지.'
이불을 걷는다.
방은 작다.
낮은 책상과 옷장, 얇은 요, 책 몇 권, 충전 중인 휴대전화.
속세를 떠났다는 표현을 사람들이 쓰지만 방 한쪽에는 멀티탭에 휴대전화, 무선이어폰, 노트북 충전기가 꽂혀 있다.
도현은 세수를 하러 나간다.
오전 4시 08분
법당.
새벽예불이 시작된다.
목탁 소리.
낮은 독송.
산 아래는 아직 완전히 어둡다.
도현은 절을 올린다.
몇 년 동안 수없이 반복한 동작이다.
어떤 날에는 집중이 잘 된다.
어떤 날에는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돌아다닌다.
오늘은 후자다.
절을 하면서 생각한다.
'행사 현수막 문구 수정해야 하고.'
다시 절한다.
'여동생한테 답장도 안 했네.'
독송하다가 앞에 있는 혜원 스님의 염불 속도가 평소보다 빠르다고 느낀다.
'왜 오늘 저렇게 빨라.'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스스로 웃음이 날 것 같다.
법당에서 수행 중인데 다른 사람 염불 속도에 짜증을 내고 있다.
'정신 차려.'
호흡으로 다시 돌아온다.
30초쯤 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오전 5시 13분
예불이 끝난다.
공양간으로 향한다.
오늘 아침은 죽과 김치, 두부조림이다.
60대 보살 한 명이 공양 준비를 돕고 있다.
“스님, 두부 좀 여기 옮겨주세요.”
“네.”
도현은 냄비를 든다.
보살이 말한다.
“스님이 젊으니까 이런 거 시키기도 편해.”
도현이 웃는다.
“그래서 제가 여기 있나 봅니다.”
“나이 드신 스님들한테 무거운 거 시키겠어요?”
도현은 대답하지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찰에서 가장 젊은 승려라는 이유로 컴퓨터 문제부터 무거운 짐까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오는 일이 많다.
그걸 수행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런데 어떤 날에는 그냥
'막내니까 시키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두 설명 모두 사실일 수 있다.
오전 5시 51분
아침 공양.
승려들과 직원들이 말없이 식사한다.
도현은 죽을 한 숟가락 먹는다.
휴대전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난다.
방으로 돌아가면 여동생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해야 한다.
'밥 먹을 때 밥만 먹자.'
스스로 생각한다.
두 숟가락 뒤 다시 여동생 메시지가 궁금하다.
수행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거창한 욕망이 아니라 이런 작은 충동일 때가 많다고 느낀다.
오전 6시 26분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여동생 민지가 어젯밤 보낸 메시지가 있다.
오빠 11월 7일 비워둘 수 있어?
식장 거의 잡을 거 같아
도현은 화면을 본다.
여동생의 결혼식.
당연히 가고 싶다.
그런데 그날 사찰에서 큰 법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떠오른다.
답장을 쓰다가 멈춘다.
그날 절 일정 한번 확인해볼게
보낸다.
민지가 바로 답하지 않는다.
도현은 어쩐지 미안하다.
보통 형제라면
“당연히 가지.”
라고 답했을 것 같다.
자신에게는 날짜 하나도 공동체 일정과 맞춰야 한다.
출가할 때 이미 알고 선택한 생활이다.
그런데 알고 선택했다고 모든 아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전 7시 04분
경내를 청소한다.
빗자루로 마당의 낙엽을 모은다.
아직 8월이지만 바람에 떨어진 잎이 조금 있다.
한 노스님이 지나가며 말한다.
“도현아.”
“네, 스님.”
“오늘 홈페이지 공지 올렸나?”
“오전 중에 올리겠습니다.”
“어제 한다고 하지 않았나?”
도현의 손이 잠시 멈춘다.
“행사 안내문 수정 때문에 늦었습니다.”
“미루지 말고 해.”
“네.”
노스님은 그대로 걸어간다.
도현은 빗자루질을 계속한다.
속에서 작은 반발심이 올라온다.
'어제 밤까지 그 안내문 수정한 것도 누가 시켜서 한 건데.'
그리고 바로 생각한다.
'핑계 대지 말자.'
그러나 마음은 금방 가라앉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화를 알아차리라고 배운다.
도현은 화가 올라오는 것을 꽤 정확히 알아차린다.
문제는 알아차렸다고 즉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전 7시 48분
종무소.
노트북을 켠다.
법회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올린다.
사진 크기가 맞지 않는다.
이미지를 다시 줄인다.
옆자리 직원이 말한다.
“스님, 이것도 좀 봐주세요.”
프린터 오류다.
도현이 일어나 확인한다.
“용지 걸렸네요.”
“나는 이런 거만 보면 머리가 아파.”
도현이 웃는다.
“저도 모르는 거 많아요.”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잘하잖아요.”
도현은 프린터 덮개를 연다.
종이가 깊숙이 끼어 있다.
5분 정도 씨름한다.
마지막 종이를 빼내자 직원이 말한다.
“역시 젊은 스님 있어야 돼.”
칭찬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반갑지 않다.
'나 수행하러 왔는데 전산 담당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민망해진다.
프린터 고쳐주는 일은 수행이 아닌가.
자신도 답을 모른다.
오전 9시 17분
사찰에 관광객이 들어온다.
50대 부부와 대학생 정도의 딸이다.
딸이 사찰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버지가 도현을 발견한다.
“스님.”
“네.”
“여기 사진 찍어도 되죠?”
“법당 내부만 예배 중에는 삼가주시면 되고 바깥은 괜찮습니다.”
남자가 웃으며 묻는다.
“스님도 사진 찍으세요?”
“네?”
“휴대폰으로요.”
도현이 웃는다.
“찍죠.”
남자가 농담한다.
“아, 스님도 인스타 하세요?”
도현이 대답한다.
“개인 계정은 없습니다.”
사실 출가 전 사용하던 계정은 탈퇴하지 않았다.
가끔 웹브라우저로 친구들 계정을 찾아본다.
로그인하지 않고.
자신은 그것을 SNS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가 말한다.
“세상과 완전히 끊고 사는 줄 알았어요.”
도현은 웃는다.
“그렇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상대는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도현에게는 꽤 진지한 말이다.
오전 10시 02분
신도 한 명이 종무소로 찾아온다.
60대 여성이다.
“스님, 잠깐 상담 좀 해도 돼요?”
도현은 순간 시간을 본다.
할 일이 밀려 있다.
하지만 말한다.
“네, 앉으세요.”
여성은 아들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흔 가까운 아들이 취업을 자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낸다는 내용이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도현이 말한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성이 한숨을 쉰다.
“스님은 자식이 없으니까 모르죠.”
도현은 대답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약간 찔린다.
상담을 하면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삶에 대해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상대는 답을 기다리고 있다.
“보살님이 아드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으니까요. 도와주실 것과 아드님이 감당해야 할 것을 조금 나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성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내버려둬요?”
도현은 잠시 생각한다.
“내버려두는 것과 맡기는 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말하고 나서 스스로도 문장이 너무 그럴듯하다고 느낀다.
'내가 정말 저걸 알고 하는 말인가.'
오전 10시 41분
상담은 30분 넘게 이어진다.
여성이 돌아가며 말한다.
“스님하고 얘기하니까 마음이 좀 낫네요.”
도현이 합장한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여성이 나간다.
도현은 혼자 앉아 있다.
조금 전까지 귀찮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그 사실도 마음에 걸린다.
'내가 인정받으려고 상담하나.'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좋으면 좋은 거지. 그것까지 죄처럼 생각하지 말자.'
수행을 오래할수록 감정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검사하는 일이 늘어나는 느낌도 든다.
오전 11시 32분
점심 공양 준비를 돕는다.
주방에서 당근을 썬다.
혜원 스님이 옆에서 말한다.
“오늘 신도 상담 길던데.”
“네.”
“뭐라고 해줬어?”
도현이 대충 설명한다.
혜원 스님이 웃는다.
“네가 언제부터 인생 전문가였냐.”
농담이다.
도현도 웃는다.
“그러니까요.”
“우리는 답 주는 사람 아니다. 같이 보는 거지.”
도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 싫다.
자신이 방금 잘못 상담했다는 지적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웃은 뒤에도 몇 분간 생각한다.
혜원 스님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도현도 안다.
그래도 기분은 논리보다 느리게 따라온다.
오후 12시 18분
점심 공양.
나물과 된장국, 감자조림.
한 젊은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스님, 고기 안 먹으면 안 힘드세요?”
도현이 웃는다.
“익숙해집니다.”
“치킨 안 먹고 싶어요?”
테이블 몇 사람이 웃는다.
도현도 웃는다.
“가끔 냄새 좋다는 생각은 합니다.”
사람들이 더 웃는다.
참가자가 놀란다.
“진짜요?”
“사람인데요.”
도현은 가볍게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출가한 첫해에는 치킨이 꽤 먹고 싶었다.
특히 부모 집 근처에 있던 단골 치킨집.
요즘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커피나 디저트에 욕심이 생겼다.
욕망이라는 것이 없어지기보다는 모양을 바꾸는 것 같다고 느낀다.
오후 1시 07분
점심 후 잠깐 쉴 시간.
도현은 방으로 들어간다.
바닥에 눕는다.
휴대전화를 연다.
여동생에게 답이 와 있다.
가능하면 꼭 와줘
아빠가 오빠 스님 된 뒤에 가족행사마다 눈치 보는 거 좀 싫대
도현은 문장을 두 번 읽는다.
특히
‘아빠가’
에서 손이 멈춘다.
아버지는 출가를 끝까지 반대했다.
지금은 겉으로 받아들이지만 완전히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현은 여동생에게 답한다.
나도 가고 싶어. 일정 조정해볼게.
메시지를 보내고 천장을 본다.
갑자기 출가 당시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또 내가 가족보다 절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겠지.'
곧바로 반발심도 생긴다.
'내가 놀러 온 것도 아니잖아.'
죄책감과 억울함이 동시에 있다.
오후 1시 42분
15분 정도 낮잠을 자려고 했는데 30분 가까이 잠든다.
눈을 뜨자 순간 시간이 헷갈린다.
급하게 일어난다.
종무소에 도착하니 혜원 스님이 먼저 있다.
도현이 말한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혜원 스님은 시계도 보지 않고 말한다.
“좀 쉬었어?”
“네.”
“잘했네.”
도현은 오히려 어색하다.
혼날 준비를 하고 왔는데 아무 일도 없다.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았는데 혼자 미리 변명할 준비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오후 2시 28분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사찰 안내를 한다.
한 참가자가 묻는다.
“출가하면 가족이 안 보고 싶어요?”
도현이 잠시 생각한다.
여러 번 받은 질문이다.
보통 이렇게 대답한다.
“보고 싶죠.”
오늘도 그렇게 말한다.
참가자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왜 출가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도현을 본다.
도현은 웃는다.
“가족이 싫어서 출가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 뭐가 좋아서요?”
도현은 잠시 말을 고른다.
“좋아서만 한 것도 아닙니다. 한번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대답하고 나서 마음에 든다.
거창하지 않아서다.
출가 이유를 물을 때마다 사람들은 큰 깨달음이나 비극적인 사연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도현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오후 3시 17분
사찰 창고 정리를 한다.
작은 상자에 기념품과 불교용품을 분류한다.
혜원 스님이 오래된 염주 세트를 버리려고 한다.
도현이 말한다.
“이거 아직 쓸 수 있지 않습니까?”
“끈 다 삭았어.”
“수리하면 되죠.”
“언제?”
도현이 잠시 멈춘다.
실제로 수리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버리는 것이 아깝다.
혜원 스님이 웃는다.
“너는 출가하고도 물건을 못 버린다.”
“아깝잖아요.”
“그게 집착이지.”
농담처럼 말한다.
도현도 웃는다.
“그럼 스님 옷도 낡으면 바로 버리세요.”
“말대꾸 늘었네.”
둘이 웃는다.
결국 염주는 버린다.
도현은 별것 아닌데 조금 아깝다.
오후 4시 06분
부모에게 전화한다.
어머니가 받는다.
“민석아.”
도현은 가족에게서 법명이 아니라 본명으로 불릴 때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응, 엄마.”
“민지한테 들었어?”
“응.”
“그날 올 수 있어?”
“일정 봐야 돼.”
어머니가 한숨을 쉰다.
“네 아빠는 또 말은 안 하는데 신경 쓰는 것 같더라.”
도현의 목소리가 조금 굳는다.
“나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야.”
“엄마가 뭐라 했니?”
“아니, 그냥 그렇다고.”
“오면 좋고 못 오면 할 수 없지.”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더 미안해진다.
차라리 화를 내면 반박할 수 있다.
이해해주면 반박할 곳이 없다.
오후 4시 37분
잠시 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다.
드문 일이다.
“예.”
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결혼식 날짜 들었지?”
“네.”
“절에 일 있으면 못 오는 거냐?”
“조정해보려고요.”
아버지가 잠시 말이 없다.
“네 동생 하나뿐이다.”
도현의 가슴이 조금 답답해진다.
“저도 알아요.”
말투가 날카로워진다.
아버지가 말한다.
“알면 됐다.”
전화가 끝난다.
도현은 휴대전화를 보고 서 있다.
'왜 말을 저렇게 하지.'
그러다가 생각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또 다르겠지.'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해하려는 노력이 지금은 짜증을 더 만든다.
'나도 좀 그냥 화내면 안 되나.'
오후 5시 19분
저녁 공양.
도현은 평소보다 말이 없다.
혜원 스님이 묻는다.
“집에 무슨 일 있어?”
“동생이 결혼합니다.”
“잘됐네.”
“근데 법회 날이랑 겹칠 수도 있어서요.”
혜원 스님은 별 고민 없이 말한다.
“그럼 가야지.”
도현이 놀라서 본다.
“법회 있는데요.”
“너 하나 빠진다고 절 안 무너져.”
도현은 잠시 대답하지 못한다.
이상하게 기분이 상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족행사 때문에 빠질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너 하나 없어도 된다’
는 말을 듣자 또 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그래도 제가 맡은 일이 있어서…”
혜원 스님이 웃는다.
“알아서 해. 그냥 네가 꼭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거야.”
도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말은 맞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
오후 6시 03분
저녁예불 전 20분 정도 혼자 산책한다.
사찰 뒤 작은 길.
풀벌레 소리가 난다.
도현은 조금 전 말을 생각한다.
'너 하나 빠진다고 절 안 무너져.'
자신은 수행 때문에 출가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찰에서 필요로 되는 것이 좋았던 순간도 많다.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젊은 신도 상담을 맡고,
행사를 준비하고,
컴퓨터를 고친다.
사람들이
“도현 스님이 있어야 돼.”
라고 하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세속적 인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출가했는데,
사찰 안에서도 다른 종류의 인정에 반응한다.
도현은 그 사실이 조금 우습다.
오후 6시 31분
저녁예불.
이번에는 오전보다 집중이 잘 된다.
호흡과 목탁 소리에 집중한다.
아버지 생각이 한번 떠오른다.
놓아둔다.
다시 여동생 결혼식 생각이 떠오른다.
놓아둔다.
잠깐 조용해진다.
그 몇 초가 좋다.
'이래서 여기 있나.'
생각하는 순간 다시 생각이 시작됐다.
도현은 속으로 아주 작게 웃는다.
오후 7시 26분
예불을 마친 뒤 한 노스님이 도현에게 말한다.
“내일 법당 마이크 좀 봐라.”
“네.”
“요즘 자꾸 잡음 난다.”
“네.”
또 전자기기다.
도현은 웃으며 말한다.
“제가 출가를 잘못한 것 같습니다. 전기기사로 왔나 봅니다.”
노스님도 웃는다.
“그것도 수행이지.”
도현이 장난스럽게 묻는다.
“아무거나 다 수행입니까?”
노스님은 잠시 도현을 본다.
“수행 아니게 하는 건 네가 하지.”
도현은 웃다가 조용해진다.
꽤 그럴듯한 말이다.
동시에
'스님들은 말을 참 잘한다.'
는 생각도 든다.
오후 8시 11분
개인 공부 시간.
도현은 불교 철학 관련 책을 읽는다.
세 페이지쯤 읽다가 집중이 흐트러진다.
휴대전화로 여동생 결혼식 날짜를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사찰 행사 일정표를 연다.
법회는 11월 8일이다.
결혼식은 7일.
생각보다 가능할 수도 있다.
전날 내려갔다가 당일 밤에 돌아오면 된다.
도현의 마음이 갑자기 가벼워진다.
'애초에 제대로 확인도 안 했네.'
자신이 혼자 갈등을 크게 만들어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에게 바로 전화할까 생각하다가 하지 않는다.
조금 전 말투가 아직 마음에 걸린다.
여동생에게만 보낸다.
날짜 보니까 갈 수 있을 것 같다
민지:
진짜??? 오빠 꼭 와야 됨
곧이어
근데 삭발한 채로 가족사진 찍는 거지? ㅋㅋㅋ
도현이 웃는다.
가발 씀
민지:
미친ㅋㅋㅋㅋㅋㅋ
둘이 한동안 농담한다.
오후 8시 53분
여동생이 웨딩사진 후보 세 장을 보내온다.
뭐가 제일 나아?
도현은 사진을 확대해서 본다.
1번이 가장 좋다.
1
민지:
엄마도 1이래
아빠만 3이래
도현:
아빠 감각 원래 없음
민지:
이거 아빠한테 캡처함
도현:
야
잠시 자신이 스님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평범한 오빠처럼 웃는다.
그 순간이 편하다.
오후 9시 24분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온다.
옷을 갈아입고 앉는다.
잠깐 명상을 하려 한다.
눈을 감는다.
호흡.
배가 움직인다.
잠시 뒤 오늘 있었던 상담이 떠오른다.
“스님은 자식이 없으니까 모르죠.”
맞는 말.
그런데 왜 계속 생각날까.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현은 속으로 생각한다.
'모르면 모르는 거지.'
조금 지나자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그래도 상담은 잘했는데.'
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도현은 다시 웃음이 날 것 같다.
오후 10시 07분
침대에 눕기 전에 메시지를 확인한다.
출가 전 친구 단체방은 알림을 꺼둔 상태다.
수십 개 메시지가 쌓여 있다.
오랜 친구 하나가 아이 돌잔치 사진을 올렸다.
친구들이 축하한다.
도현도 잠시 고민하다 쓴다.
축하한다. 건강하게 잘 키워라
친구:
스님 등장ㅋㅋ
다음에 서울 오면 얼굴 좀 보여라 민석아
또 다른 친구:
이제 술은 못 먹고 커피라도 ㅋㅋ
도현은 웃는다.
자신이 그 그룹에 아직 존재한다는 느낌이 좋다.
동시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자신의 삶과 비교하게 된다.
결혼.
아이.
회사.
아파트.
자신에게 없는 것들.
그것들이 모두 갖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저 삶을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한다.
오후 10시 36분
불을 끈다.
오늘 하루를 잠깐 떠올린다.
새벽에는 예불을 하면서 잡생각을 했다.
노스님의 말에 짜증이 났다.
신도에게 상담을 하면서 인정받고 싶었다.
가족의 결혼식 때문에 죄책감과 억울함을 느꼈다.
자신이 사찰에서 없어도 된다는 말을 듣자 서운했다.
친구의 돌잔치 사진을 보며 다른 삶을 상상했다.
도현은 생각한다.
'출가 전이랑 별로 다른 게 없네.'
그런데 곧 한 가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화가 나면 상대가 잘못했다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적어도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라는 질문이 따라올 때가 많다.
그 질문 때문에 삶이 더 편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때로는 오히려 더 피곤하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지금 얻은 것 중 하나라면 그 정도일 것이다.
오후 10시 48분.
눈을 감는다.
내일도 3시 43분에 알람이 울린다.
2.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 평범한 수도권 가정의 장남
도현의 속명은 최민석이다.
1997년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산업용 펌프를 판매하는 중소기업에서 영업직으로 오래 일했고 어머니는 어린이집 교사였다.
세 살 아래 여동생 민지가 있다.
가정형편은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전세에서 시작해 민석이 중학생일 때 작은 아파트를 구입했다.
부모가 종교적으로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끔 절에 갔고 아버지는 종교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민석도 어린 시절에는 불교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어린 민석
조용하지만 순종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어머니가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라고 하면
“왜요?”
라고 물었다.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어머니는 이런 민석을
“말대꾸가 많다.”
고 했다.
학교에서는 발표를 아주 좋아하지 않았지만 토론에서는 자기 의견을 꽤 강하게 말했다.
친구도 몇 명 있었다.
게임을 좋아했고 PC방에도 다녔다.
운동은 잘하지 못했다.
특별히 종교적이거나 내향적인 아이로 자란 것은 아니다.
중학생 시절
민석은 성적이 중상위권이었다.
역사와 사회를 좋아했다.
특히 철학적 질문을 재미있어했다.
“왜 사람은 죽는 게 무서울까.”
“사람이 착하게 살 이유가 있나.”
같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친구는 보통 말했다.
“게임이나 해.”
민석도 웃고 게임을 했다.
이 시기의 관심이 나중의 출가를 결정했다고 단순히 볼 수는 없다.
사춘기 학생들이 흔히 갖는 호기심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 경쟁을 처음 강하게 의식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성적 경쟁이 심해졌다.
민석은 자신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를 많이 만났다.
중학교에서는 꽤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평범했다.
처음으로 자신이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감각을 경험했다.
열심히 공부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성적이 생각만큼 빠르게 오르지 않았다.
친구가 모의고사 성적을 자랑하면 축하하면서도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 자신이 싫었다.
당시에는
'나는 원래 경쟁적인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극단적으로 경쟁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쟁을 싫어하는 것과 경쟁 결과에 무관심한 것은 다른 문제였다.
대학
서울의 한 중위권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는 취업을 걱정했다.
아버지는 경영학과 복수전공을 권했다.
민석은 반발했다.
“취업하려고 대학 다니는 건 아니잖아요.”
아버지가 말했다.
“취업 안 할 거냐?”
민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철학 공부 자체는 재미있었다.
그러나 대학생활이 이상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험을 봤고,
학점을 비교했고,
스펙을 고민했다.
철학 수업에서 인간의 자유를 배우면서 취업카페에서는 토익 점수와 자격증을 확인하는 생활이 조금 우스웠다.
그렇다고 자신만 그 경쟁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다.
영어학원도 다녔고 대외활동도 신청했다.
처음 사찰에 오래 머문 경험
스무 살 여름, 친구의 권유로 템플스테이에 갔다.
처음에는 큰 감동이 없었다.
새벽에 깨우는 것이 싫었고 절을 반복하는 것도 힘들었다.
휴대전화를 제출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런데 둘째 날 오후 혼자 산길을 걷다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순간을 경험했다.
큰 깨달음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다.
대학으로 돌아온 뒤 그 느낌을 가끔 떠올렸다.
군 생활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군 생활을 특별히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조직생활에는 꽤 잘 적응했다.
다만 사람의 가치가 계급에 따라 갑자기 달라지는 분위기를 이상하게 느꼈다.
자신도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자 후임에게 명령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에는 싫어했던 행동을 자신이 별 생각 없이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경험은 훗날 민석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 조금 영향을 주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생각보다 쉽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문장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그냥
'나도 똑같네.'
라고 생각했다.
복학과 진로 고민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민석도 토익을 보고 인턴을 알아봤다.
그러나 특별히 하고 싶은 직업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을 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어느 회사에 지원해도 자기소개서에는
‘왜 이 회사인가’
를 써야 했다.
민석은 그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
솔직하게는
'취업해야 하니까.'
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자신을 문제라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라고 했다.
민석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맞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22세 — 휴학
마지막 학년을 앞두고 한 학기 휴학했다.
부모에게는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공부도 조금 했다.
그러나 또 사찰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스님들과 생활하면서 출가라는 선택을 처음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그곳의 삶도 이상적이지 않았다.
승려들끼리 의견 충돌이 있었다.
누군가는 돈 문제에 예민했고,
누군가는 인정받고 싶어 했다.
행정업무도 많았다.
민석은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성인이 되면 모든 욕망에서 초월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를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비슷한 인간들이 다른 규칙 속에서 사는 공동체였다.
그럼에도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다.
출가 결정
부모에게 말했을 때 어머니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화를 냈다.
“네가 세상을 얼마나 살아봤다고 세상을 버려?”
민석이 말했다.
“세상 버리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는 더 화가 났다.
“그럼 뭐가 다른데?”
민석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취업이 힘드니까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석은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그 말이 완전히 근거 없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취업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출가 결정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단순한 회피만으로 7년 동안 이 생활을 계속하기도 어렵다.
여러 동기가 겹쳐 있었다.
출가 초기
처음에는 힘들었다.
새벽 기상.
공동생활.
스마트폰 사용 제한.
개인시간 부족.
위계적인 문화.
민석은 오히려 사찰도 상당히 조직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자신은 세속적 경쟁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도 경력과 역할, 선후배가 있었다.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았고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빴다.
첫해에는 그것이 실망스러웠다.
'여기 와도 똑같네.'
그러다 한 선배 스님이 말했다.
“네가 장소만 바꾼다고 네가 없어지냐?”
민석은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법명 ‘도현’
수계를 받으면서 도현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처음 몇 달은 누군가
“도현 스님.”
이라고 부르면 자신 아닌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그러나 가족이
“민석아.”
라고 부르면 또 다른 자신이 돌아오는 느낌이 있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인지 고민했다.
요즘은 두 이름 모두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하나의 정체성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조금 줄었다.
친구들과의 거리
출가 이후 친구 관계는 자연스럽게 줄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신기해했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고,
농담으로
“득도했냐?”
라고 물었다.
몇 년이 지나자 연락 빈도가 줄었다.
누군가 결혼했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았고,
누군가는 승진했다.
도현은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구들 단체방에서 자신이 모르는 추억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조금 소외감을 느낀다.
그럴 때도
“원래 다른 삶을 선택했으니까.”
라고 생각한다.
설명은 맞지만 감정이 즉시 없어지지는 않는다.
20대 후반 — 사찰에서 역할이 생기다
젊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는 이유로 다양한 실무를 맡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SNS용 사진.
문서 작성.
행사 안내.
젊은 템플스테이 참가자 상담.
처음에는 귀찮았다.
자신은 경전을 공부하고 수행하려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좋았다.
이곳에서 자기가 쓸모 있다는 느낌이 생겼다.
문제는 점점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수행할 시간이 없다.”
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선배 스님이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수행만 수행이면 평생 시간 없다.”
도현은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가끔 정말로 단순히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29세.
도현은 출가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매 순간 확신하는 것도 아니다.
친구가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면 다른 인생을 잠시 생각한다.
좋은 옷을 입고 여행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누군가 자신의 직업적 성공을 이야기하면
'나도 회사에 갔으면 어느 정도 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동시에 도시의 출근길을 보면 다시 사찰로 돌아오고 싶다고 느낀다.
이것은 출가가 실패했다는 증거라기보다 하나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은 모든 삶에 대한 호기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가깝다.
3.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왜 도현은 노스님의 지적에 화가 난 뒤 자신의 화에 또 불편함을 느꼈을까?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내가 다른 일 때문에 늦었는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지?”
라고 생각하고 끝날 수 있다.
도현에게는 하나가 더 붙는다.
“나는 수행자인데 왜 이런 일에 화를 내지?”
즉 첫 번째 감정 위에 자기평가가 한 층 더 생긴다.
수행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높여줬지만, 때로는 그 알아차림이 자기검열로 바뀐다.
화가 나는 것 자체를 실패라고 판단하면 오히려 감정을 더 오래 붙잡게 될 수도 있다.
도현은 최근 조금씩
화가 난다는 사실과 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왜 ‘막내라서 시키는 일’을 수행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불만을 느낄까?
두 해석 모두 실제다.
공동체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수행의 일부라고 믿는다.
동시에 젊다는 이유로 전산과 힘든 일을 몰아서 맡는 구조도 실제로 존재한다.
도현은 불만이 생기면
“이것도 수행이지.”
라고 생각해서 감정을 다스린다.
좋은 기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경우에 따라 정당한 불만까지 스스로 억누르게 만들 수 있다.
종교적 가치가 항상 개인을 자유롭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참고 버텨야 할 이유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왜 신도 상담이 귀찮았는데 “도움이 됐다”는 말에는 기분이 좋았을까?
도현도 인정받고 싶다.
출가했다고 인정 욕구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정받고 싶은 대상과 방식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성적이나 사회적 능력을 인정받았다면,
지금은
“말씀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라는 말을 통해 좋은 승려이고 싶다는 욕구가 충족된다.
도현은 이것을 경계한다.
'내가 사람들의 존경을 즐기기 시작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인정받아 기쁜 감정 자체가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부정할수록 자신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왜 “스님은 자식이 없으니까 모르죠”라는 말이 오래 남았을까?
사실이기 때문이다.
도현에게는 자녀가 없다.
부부관계도 경험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담 과정에서는 결혼과 자녀, 돈과 직장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경험적 한계를 느낀다.
동시에
‘그래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도 가지고 있다.
상대의 한마디는 그 능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잠시 느껴졌다.
그래서 불편했다.
자신이 승려라는 이유로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영역이 많다는 사실과, 그래도 상담자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 것이다.
왜 가족행사 때문에 죄책감과 억울함을 동시에 느낄까?
도현은 자신이 출가를 선택했다는 것을 안다.
가족행사보다 공동체 일정이 우선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네가 선택했잖아.”
라는 이유로 모든 양보를 자신이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억울하다.
가족에게는 도현이 사찰을 선택한 사람이다.
도현에게는 가족도 여전히 자신의 삶의 중요한 일부다.
어느 한쪽이 가짜가 아니다.
한 공동체를 선택했다고 기존 관계의 욕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 “너 하나 빠진다고 절 안 무너진다”는 말에 서운했을까?
도현은 업무가 많아서 불평한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너무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네가 없어도 된다.”
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한다.
인간에게 흔한 모순이다.
부담에서는 벗어나고 싶지만 중요성까지 잃고 싶지는 않다.
도현 역시
필요로 되는 것과 자유로운 것 사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자신이 세속적인 성공과 직업적 지위를 포기한 뒤 사찰 안에서 얻는 역할은 자존감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그래서
“도현 스님이 해야 한다.”
는 말은 피곤하면서도 만족스럽다.
왜 친구들의 결혼과 육아를 보며 다른 삶을 상상할까?
그 삶을 원하는 것과 그 삶을 상상하는 것은 다르다.
도현은 현재 출가생활을 원한다.
그러면서도
회사원 최민석,
결혼한 최민석,
아이를 키우는 최민석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사람은 중요한 선택을 한 뒤에도 선택하지 않은 삶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삭제하지 않는다.
특히 20대 후반처럼 또래들의 인생경로가 크게 갈라지는 시기에는 비교할 기준도 생긴다.
도현의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하다.
자신이 부러워한다는 사실 자체를
‘수행이 부족한 증거’로 해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냥 부러울 수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왜 출가 전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면서도 반드시 편해진 것은 아닐까?
도현이 수행을 통해 얻은 변화 중 하나는 자신의 첫 번째 생각을 곧바로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습관이다.
“저 사람이 잘못했다.”
뒤에
“내가 왜 이렇게 반응했지?”
가 따라온다.
“나는 가족에게 피해를 준다.”
뒤에
“정말 모든 책임이 나한테 있나?”
가 따라온다.
“나는 인정받고 싶어 한다.”
뒤에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가?”
가 따라온다.
이 과정은 사람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평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생각할 것이 늘어나기도 한다.
자기성찰 역시 지나치면 또 다른 자기집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도현은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도현의 가장 큰 자기모순
도현은 세속적인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출가했다.
그런데 사찰 안에서도 좋은 승려가 되고 싶다.
선배에게 인정받고 싶고,
신도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며,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욕망을 버리려고 시작한 삶 안에서 새로운 욕망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위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람이 욕구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도 있기 때문이다.
도현은 요즘 수행을 예전과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욕심이 없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 생각했다.
지금은
욕심이 생겼을 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되지 말자
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것 역시 언젠가 바뀔 수 있다.
29세의 도현은 완성된 수행자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도 이제는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크게 믿지 않는다.
4.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종교적 수행을 오래 한 사람이 질투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화를 낸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수행이 실패했다고 생각할까?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능력일 수 있다. 우리는 ‘성숙한 사람’에게 인간적인 감정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2. 당신이 도현의 아버지라면 아들이 가족보다 종교 공동체를 우선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것을 존중할 수 있을까?
도현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지만 부모에게는 아들이 가족으로부터 멀어진 사건일 수도 있다.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 가족에게 실제 상실감을 줄 때, 어느 쪽의 감정을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3. 당신도 버리고 싶었던 가치가 다른 형태로 다시 돌아온 경험이 있지 않을까?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명성을 원하고, 경쟁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경쟁하며, 타인의 인정을 포기하려 했지만 ‘인정에 초연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욕망이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금 더 정확히 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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