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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정다희, 34세, 여성, 제주 외국인 전용 카지노 딜러

by 마음 탐구소 2026. 9. 6.

정다희는 제주시에 있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9년째 딜러로 일한다. 블랙잭과 바카라 테이블을 주로 맡고, 중국어는 업무에 필요한 표현 정도를 할 수 있다.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출근시간은 매주 달라진다. 기본급과 수당을 합친 세후 월수입은 약 360만~420만 원. 제주 외곽의 20평대 오피스텔을 전세로 얻어 혼자 산다.
결혼하지 않았고 현재 연애도 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경남 창원에 살며 두 살 많은 오빠는 결혼해 아이 하나를 키운다.
다희는 매일 눈앞에서 수백만 원, 때로는 수천만 원이 몇 분 만에 움직이는 장면을 본다.
그런데 자신은 편의점에서 2,900원짜리 커피와 4,500원짜리 커피 사이에서도 잠깐 고민한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운 같은 거 안 믿어.”
하지만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면 평소보다 특정 귀걸이를 자주 착용한다.

1. 현재의 하루

오전 9시 38분

다희가 눈을 뜬다.
오늘 출근은 오후 2시다.
보통 사람에게는 늦잠처럼 보이겠지만 어젯밤 1시가 넘어 퇴근했다.
휴대전화 화면을 켠다.
9시 38분.
알람은 9시 45분이었다.
다희는 이상하게 알람 직전에 자주 깬다.
'몸이 적응했나.'
메신저를 확인한다.
회사 단체방에는 야간조가 올린 인수인계 메시지가 있다.

VIP 12번 테이블 재방문 가능성 있음
민원 있었으니 응대 주의

다희는 메시지를 읽고 단체방을 닫는다.
개인 메시지는 세 개다.
어머니.
친구 수빈.
은행 광고.
어머니 메시지부터 연다.

이번주 비 많이 온다는데 괜찮냐

다희는 답한다.

제주도 원래 비옴 ㅋㅋ 괜찮음

창밖을 본다.
햇빛이 꽤 밝다.
날씨 앱은 보지 않는다.

오전 9시 57분

침대에서 일어난다.
부엌으로 가면서 체중계 위에 올라간다.
52.8kg.
어제는 52.5였다.
0.3kg 차이는 사실상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화면을 한 번 더 본다.
'어제 라면 괜히 먹었네.'
곧바로 생각한다.
'물 무게지.'
다희는 자기 몸무게 같은 작은 숫자는 꽤 세심하게 본다.
반면 회사에서는 손님이 한 판에 500만 원을 걸어도 표정이 변하지 않는다.
숫자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오전 10시 16분

냉장고를 연다.
계란.
그릭요거트.
남은 샐러드.
맥주 두 캔.
다희는 계란 두 개를 굽는다.
식탁에 앉아 유튜브 영상을 켠다.
한 경제 채널에서
“10년 동안 미국 지수에 투자했을 때의 결과”
를 설명하고 있다.
다희는 영상을 보면서 계란을 먹는다.
진행자가 말한다.
“시장을 맞히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다희가 혼잣말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월급의 일정 부분을 ETF와 적금에 넣는다.
개별 주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코인도 하지 않는다.
카지노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그러면 주식도 잘하겠네요?”
다희에게는 이상한 질문이다.
카드를 나눠준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전 10시 43분

친구 수빈에게서 전화가 온다.
“일어났어?”
“응.”
“너 오늘 오후 출근?”
“응.”
수빈은 잠시 잡담을 하다가 말한다.
“나 그 주식 결국 팔았어.”
“어떤 거?”
“지난번 말한 거.”
“마이너스 얼마?”
“37퍼.”
다희는 잠시 조용하다.
수빈이 말한다.
“욕해도 돼.”
다희가 대답한다.
“이미 팔았는데 뭐.”
“너는 내가 살 때부터 사지 말랬잖아.”
“내가 맞았다는 것도 결과 나오고 나니까 하는 말이지.”
“아니, 네가 분명 위험하다고 했어.”
다희는 계란 접시를 싱크대에 놓는다.
“위험한 거랑 떨어진다는 건 다른 말이야.”
수빈이 웃는다.
“카지노 직원답다.”
다희가 바로 말한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약간 짜증이 난다.
자신의 모든 판단을 직업으로 설명하는 말을 싫어한다.

오전 11시 17분

샤워를 한다.
옷장 앞에서 검은 셔츠 두 장 가운데 하나를 골라 꺼낸다.
귀걸이를 고른다.
작은 은색 링.
그리고 작은 파란 돌이 박힌 귀걸이.
손이 파란 귀걸이로 간다.
오늘 VIP 테이블 배정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희는 멈춘다.
'뭐 하냐.'
은색 링을 집는다.
5초 뒤 다시 내려놓고 파란 귀걸이를 착용한다.
파란 귀걸이를 하고 큰 실수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논리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다희도 안다.
그런데 굳이 오늘 다른 것을 착용할 이유도 없다.
“운이 좋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그냥 익숙해서.”
자신에게 그렇게 설명한다.

오전 11시 52분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 여성을 만난다.
몇 번 인사한 사이다.
“출근하세요?”
“네.”
“오늘도 늦게까지 하시겠네요.”
“오늘은 열 시 반 정도요.”
“무슨 일 하신다고 했죠?”
다희는 잠깐 멈춘다.
“서비스 쪽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카지노라고 바로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카지노 딜러라고 하면 거의 정해진 질문들이 따라온다.
돈 많이 벌어요?
도박하는 사람 많이 봐요?
연예인 와요?
조작도 해요?
그리고 꼭 하나.
“본인은 도박 안 해요?”
설명하기 귀찮다.

오후 12시 16분

출근 전 자주 가는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키오스크 화면에
아메리카노 3,300원.
콜드브루 4,900원.
다희는 콜드브루를 잠깐 본다.
오늘은 약간 마시고 싶다.
아메리카노를 누른다.
1,600원을 절약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커피가 커피지.'
라고 생각한다.
결제를 하고 기다린다.
옆의 관광객 커플이 서로 이야기한다.
“오늘 카지노 한번 가볼까?”
남자가 말한다.
“나는 딱 10만 원만.”
여자가 웃는다.
“그 말 하는 사람이 제일 위험한 거 아니야?”
다희는 아무 표정 없이 휴대전화를 본다.
속으로는 조금 웃는다.
카지노에서는 ‘딱 얼마만’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오후 12시 49분

직원 휴게실.
동료 민규가 컵라면을 먹고 있다.
“오늘 12번 들어갈 수도 있대.”
다희가 가방을 내려놓는다.
“나?”
“너랑 차오 씨 얘기 나오던데.”
“왜?”
“지난번에 네 테이블에서 컴플레인 없었잖아.”
다희가 로커 문을 연다.
기분이 좋다.
VIP 테이블을 맡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뢰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말한다.
“그냥 사람 없나 보지.”
민규가 웃는다.
“칭찬 좀 받아라.”
“뭘.”
“너는 잘했다 그러면 맨날 운 좋았다 그래.”
다희가 잠시 멈춘다.
“카드는 운이지.”
“딜러 얘기잖아.”
다희는 대답하지 않고 립스틱을 다시 바른다.

오후 1시 17분

브리핑.
매니저가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어제 한 손님이 딜러 교체를 요구했다.
연속으로 게임을 잃은 뒤
“딜러가 흐름을 끊는다.”
고 주장했다고 한다.
직원 몇 명이 작게 웃는다.
매니저가 말한다.
“웃을 일 아닌 거 알죠? 고객이 그렇게 느끼면 설명은 해드리되 논쟁하지 마세요.”
다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게임 결과와 딜러는 관계가 없다.
손님들도 대부분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돈을 잃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의자를 바꾸고,
누군가는 신발을 바꾸고,
누군가는 딜러를 바꾼다.
다희는 그런 행동을 쉽게 비웃지 않는다.
자신도 오늘 파란 귀걸이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거랑 몇천만 원 거는 거랑 같나.'
라고 생각한다.

오후 2시 03분

첫 테이블.
바카라.
중년 남성 두 명과 젊은 여성 한 명이 앉는다.
칩이 놓인다.
다희가 카드를 나눈다.
동작은 거의 자동화되어 있다.
“플레이어.”
“뱅커.”
결과를 안내한다.
한 남자가 첫 판부터 200만 원 정도를 잃는다.
표정 변화가 없다.
다음 판에는 300만 원.
다시 잃는다.
세 번째 판에는 500만 원을 건다.
다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이런 장면에서 속으로 생각했다.
'왜 금액을 올리지?'
지금은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딜러의 일은 조언하는 것이 아니다.

오후 2시 24분

남자가 이번 판에는 이긴다.
500만 원이 1,000만 원이 된다.
남자가 옆 친구에게 말한다.
“봤지? 흐름 왔다.”
다희는 칩을 정리한다.
속으로 생각한다.
'방금 세 번 잃은 건 흐름 아닌가.'
말하지 않는다.
다음 판.
남자는 700만 원을 건다.
패배.
표정이 굳는다.
다희는 여전히 같은 목소리로 결과를 안내한다.
감정의 진폭은 손님의 것이고,
딜러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오후 3시 08분

테이블 교대.
휴게실에 들어온다.
민규가 묻는다.
“어때?”
“그냥.”
“돈 많이 들어가?”
“좀.”
“나 오늘 4번 테이블에서 20분 만에 어떤 사람 3천 잃음.”
다희가 물을 마신다.
“그걸 왜 네가 잃은 것처럼 말해.”
민규가 웃는다.
“맨날 보면 숫자 감각 이상해지지 않냐?”
다희는 잠시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인 것 같은데.”
“왜?”
“내 돈 아니잖아.”
회사에서는 1,000만 원도 칩의 형태다.
자기 계좌에서 100만 원이 빠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오후 3시 39분

다희의 휴대전화에 어머니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다.

아빠 치과 임플란트 두개 해야된다는데
생각보다 비싸다

다희가 바로 묻는다.

얼마?

400 조금 넘는대

다희의 표정이 굳는다.
몇 분 전 테이블에서는 누군가 한 판에 그 정도 돈을 걸었다.
그런데 아버지 치과비 400만 원은 크게 느껴진다.
그 차이가 이상하다.

보험 안됨?

어머니:

일부만 된대

다희:

오빠랑 얘기해보고 내가 좀 보탤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계산한다.
100만 원 정도는 낼 수 있다.
이번 달 적금액을 줄이면 된다.
생각만으로도 조금 아깝다.
곧바로 그런 자신이 싫어진다.
'아빠 이빨인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쓰면서도 아까울 수 있다.
다희는 그 사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후 4시 16분

다시 테이블.
이번 손님은 비교적 작은 금액을 건다.
20만 원.
30만 원.
다희는 오히려 긴장이 덜하다.
한 여성이 연속으로 세 번 맞히고 웃는다.
“오늘 나 촉 좋아.”
친구가 말한다.
“언니 어제 꿈 좋았다며.”
여자가 다희에게 묻는다.
“딜러님도 꿈 믿어요?”
다희가 웃는다.
“저는 잘 안 믿습니다.”
“로또도 안 사요?”
“가끔요.”
여자가 웃는다.
“안 믿는다면서요.”
다희는 대답한다.
“사는 재미는 있잖아요.”
실제로 두세 달에 한 번 로또를 산다.
5천 원.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
추첨일까지 자신이 당첨되는 상상을 조금 한다.
그 5천 원을 일종의 상상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5시 02분

식사시간.
직원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는다.
동료 차오 씨가 중국인 손님 이야기를 한다.
“어제 어떤 손님 계속 자기 자리 다른 사람 못 앉게 했어요.”
다희가 웃는다.
“명당이라 그래?”
“응. 오전에 거기서 이겼대.”
민규가 말한다.
“사람들은 왜 자기가 이기면 실력이고 지면 운이라고 하냐.”
다희가 바로 말한다.
“반대도 많지.”
“뭐가?”
“이기면 운 좋았다고 하고 실패하면 자기가 못했다고 하는 사람.”
민규가 쳐다본다.
“너.”
다희가 웃는다.
“내가 왜.”
“아까 칭찬하니까 운 좋았다며.”
다희는 제육을 먹는다.
“그거랑 이건 다르지.”
어떻게 다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오후 5시 47분

오빠에게 전화한다.
“아빠 이빨 얘기 들었어?”
“응.”
“얼마 낼 거야?”
오빠가 웃는다.
“너는 바로 돈 얘기냐.”
“그럼 뭐부터 얘기해.”
“나는 200 정도 생각하는데.”
다희가 잠깐 멈춘다.
자신은 100만 원 정도 생각했다.
오빠는 결혼했고 아이도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니다.
다희가 말한다.
“그러면 나도 200 할게.”
오빠가 바로 말한다.
“야, 굳이 똑같이 할 필요 없어.”
그 문장이 기분 나쁘다.
“왜?”
“넌 제주 생활비도 있고.”
“오빠도 애 있잖아.”
“그냥 내가 조금 더 한다고.”
다희는 그 말을 배려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동시에 자신이 덜 책임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니, 반씩 해.”
목소리가 조금 단호해진다.
오빠가 웃는다.
“알았어. 그럼 엄마랑 얘기해보자.”
전화를 끊는다.
다희는 생각한다.
'굳이 200까지 할 필요 있나.'
이미 자신이 주장했다.
취소할 생각은 없다.

오후 6시 24분

VIP 테이블 배정이 나온다.
어제 민원을 제기했던 손님은 아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남성과 일행 두 명.
다희는 자세를 조금 더 바로 한다.
게임이 시작된다.
금액은 크다.
한 판에 1천만 원 안팎.
처음 두 판은 손님이 이긴다.
세 번째도 이긴다.
남자가 웃으며 다희에게 중국어로 말한다.
“오늘 당신이 행운을 주네.”
다희가 정중하게 웃는다.
“축하드립니다.”
속으로는 생각한다.
'제가 준 게 아닙니다.'
그러나 굳이 정정하지 않는다.

오후 6시 51분

남자는 연승한다.
누적 수익이 커진다.
일행의 분위기가 밝아진다.
남자가 다희에게 말한다.
“당신 교대하지 마.”
다희가 웃는다.
“근무 일정에 따라 교대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계속 해.”
다희는 매니저 쪽을 한번 본다.
매니저가 상황을 확인한다.
몇 판 정도 더 진행하는 것으로 조정된다.
다희는 속으로 조금 불편하다.
사람이 자신에게
“당신이 있어서 내가 이긴다.”
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틀렸다.
그런데 아주 작게 기분도 좋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오후 7시 16분

남자가 큰 판에서 패배한다.
분위기가 바뀐다.
한 번 더.
다시 패배.
남자의 웃음이 사라진다.
세 번째 패배.
남자가 갑자기 다희를 본다.
“카드 왜 바꿨어?”
다희가 침착하게 설명한다.
규정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남자가 중국어로 빠르게 무언가 말한다.
정확히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불만이라는 것은 안다.
몇 분 전에는 행운을 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의심의 대상이다.
다희는 이상하게 상처받지 않는다.
너무 많이 본 변화다.

오후 7시 39분

교대 후 휴게실.
다희는 의자에 앉자마자 한숨을 쉰다.
민규가 묻는다.
“왜?”
“아까 나보고 행운이라더니 세 판 지니까 카드 왜 바꿨냐고.”
민규가 웃는다.
“그러니까 네가 카드를 잘 줬어야지.”
다희가 웃는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로또 번호나 뽑지.”
둘이 웃는다.
짜증은 빠르게 사라진다.
그런데 자신이 아까 칭찬받을 때 기분이 좋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비합리적인 비난은 싫으면서 비합리적인 칭찬은 어느 정도 즐겼다.

오후 8시 14분

짧은 휴식.
수빈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

근데 나 남은 돈으로 다른 종목 들어갈까 고민중

다희는 화면을 보고 한숨을 쉰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마

수빈:

왜?

다희:

지금 손실 만회하려고 들어가는 거잖아

수빈:

그럼 언제 들어가

다희는 답장을 쓰다 지운다.
자신도 투자 전문가가 아니다.

며칠 있다 생각해봐

라고 보낸다.
수빈:

ㅇㅋ

다희는 별로 믿지 않는다.
카지노에서도 돈을 잃은 직후 판돈을 높이는 사람이 많다.
손실을 없애고 싶은 마음은 손실 자체보다 강하게 행동을 밀어붙일 때가 있다.

오후 8시 57분

마지막 테이블.
한 젊은 남성이 계속 소액으로 게임한다.
처음에는 10만 원.
잃는다.
다음에도 10만 원.
또 잃는다.
남자는 웃는다.
“오늘 진짜 안 되네.”
친구가 말한다.
“그만해.”
“한 번만.”
다희는 카드를 나눈다.
다시 패배.
남자가 잠깐 웃다가 표정이 사라진다.
“진짜 마지막.”
다희는 이 문장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녀가 할 일은 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가끔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상대가 좋지 않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의 역할은 그 선택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카지노에는 책임도박 관련 규정과 절차가 있다.
그러나 모든 잘못된 선택이 개입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가 성인의 자유이고 어디부터가 자기파괴인가.
다희는 그 경계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편할 때도 있고 불편할 때도 있다.

오후 9시 42분

근무 종료.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파란 귀걸이를 뺀다.
거울을 본다.
'오늘 별일 없었네.'
그리고 순간 귀걸이를 본다.
'그러니까 이거 괜찮다니까.'
스스로 웃는다.
몇 초 뒤 정신을 차린다.
'아니지.'
귀걸이를 작은 케이스에 넣는다.
다음 중요한 근무 날에도 아마 착용할 가능성이 높다.

오후 10시 08분

퇴근길 편의점.
맥주를 사려고 들어간다.
4캔 12,000원 행사.
다희는 냉장고 앞에서 고민한다.
집에 두 캔이 있다.
안 산다.
대신 2,900원짜리 탄산수를 산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조금 만족스럽다.
'쓸데없는 소비 안 했다.'
오늘 회사에서 한 판에 수천만 원이 움직이는 것을 봤지만 자신의 12,000원은 여전히 12,000원이다.

오후 10시 34분

집에 도착한다.
신발을 벗고 소파에 앉는다.
어머니가 전화한다.
“일 끝났어?”
“응.”
“오빠랑 얘기했다며.”
“응.”
“너 200까지 안 해도 돼.”
다희가 바로 말한다.
“됐어.”
“엄마 아빠 돈 있어.”
“그럼 그냥 쓰면 되잖아.”
“그래도 자식들이 준다니까…”
다희가 말한다.
“그냥 하자.”
어머니가 잠시 조용하다.
“고맙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200만 원이 덜 아깝게 느껴진다.
5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월급과 저축계획을 생각했다.
상대의 감사 한마디가 돈의 심리적 가치를 바꾼다.

오후 11시 02분

샤워 후 침대에 눕는다.
ETF 계좌를 확인한다.
오늘 0.7% 올랐다.
금액으로 약 18만 원 정도다.
기분이 좋다.
곧바로 생각한다.
'팔 것도 아닌데.'
어제 0.5% 떨어졌을 때는 앱을 두 번 확인했다.
장기투자자라고 말하면서 매일 가격을 본다.
다희도 그 모순을 대충 알고 있다.

오후 11시 24분

경제 영상을 조금 보다 수빈과의 대화를 다시 본다.
37% 손실.
수빈이 왜 그렇게 버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에 있는 한 항목이 떠오른다.
3년 전 48만 원에 산 코트.
지금은 거의 입지 않는다.
비싸게 샀다는 이유로 버리지도 못한다.
'그거랑 주식이 같냐.'
생각한다.
원리는 조금 비슷할 수도 있다.
이미 들어간 돈 때문에 결정을 바꾸기 어려운 것.
자신에게 적용하면 예외처럼 느껴진다.

오후 11시 52분

불을 끈다.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지 생각한다.
그러다가 오늘 VIP 손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이 행운을 주네.”
틀린 말이다.
당연히 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희는 운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운이 실제 사건을 통제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 좋은 의미를 주는 작은 미신까지 굳이 버리고 싶지도 않다.
파란 귀걸이처럼.
사람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완전히 확률만으로 세상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다희도 그렇다.
자정 12시 06분.
잠이 든다.

2.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

다희는 1992년 경남 창원에서 두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동차 부품회사 생산직으로 오래 일했고 어머니는 보험회사 사무보조와 마트 계산원 일을 오갔다.
집안은 전형적인 중산층에 가까웠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생활이 불안정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돈 관리에 꼼꼼했다.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이번 달 많이 나왔네.”
라고 했고,
마트에 가면 100g당 가격을 비교했다.
다희는 자연스럽게 돈을 숫자로 보는 습관을 익혔다.
돈 때문에 심각하게 싸우는 가족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낄 수 있는 돈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
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오빠와의 관계

두 살 많은 오빠는 활동적이었다.
친구가 많았고 공부는 평범했다.
다희는 비교적 차분했고 성적은 오빠보다 조금 좋았다.
부모가 대놓고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친척들은 말했다.
“다희가 공부는 더 잘하네.”
다희는 그 말을 좋아했다.
오빠가 운동이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면에서 칭찬받으면 자신은
“나는 그런 거 관심 없어.”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친구가 많은 오빠가 부럽지 않았다고 하면 완전히 사실은 아니다.
다희는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일찍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 운이 좋았던 시험

초등학교 5학년 때 수학 경시대회 비슷한 교내 시험을 봤다.
모르는 객관식 문제 두 개를 찍었다.
둘 다 맞았다.
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교사는 칭찬했다.
집에서도 부모가 좋아했다.
다희는 오히려 불편했다.
“찍어서 맞은 거야.”
라고 여러 번 말했다.
어머니는
“찍어서 맞는 것도 실력이지.”
라며 웃었다.
다희는 그 말이 싫었다.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에도 성공했을 때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평가받는 것을 조금 경계했다.
다만 실패할 때는 운보다 자신을 먼저 탓하는 경향도 생겼다.

중고등학교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특히 수학과 영어를 잘했다.
완벽하게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도 했고 공부 대신 인터넷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가 좋으면
“이번 시험 쉬웠어.”
라고 말했다.
결과가 나쁘면
“내가 공부 안 했잖아.”
라고 했다.
겸손해 보이는 방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재미있는 비대칭이 있었다.
성공은 외부 원인으로 돌리고,
실패는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희는 그것을 성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과 관광업

부산의 4년제 대학에서 관광경영을 전공했다.
뚜렷한 꿈이 있어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영어 성적이 괜찮았고 호텔이나 항공 쪽 취업을 생각했다.
대학에서 처음으로 경제적 격차를 꽤 구체적으로 경험했다.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친구.
부모 카드로 생활하는 친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마다 일하는 친구.
다희 집은 그 중간쯤이었다.
부모에게 월세 일부를 지원받았고 자신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다.
다희는 형편이 어려운 친구 앞에서는 돈 이야기를 피했고 부유한 친구 앞에서는 소비에 무관심한 척할 때가 있었다.
자신은 돈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돈이 사람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는 순간을 불편해하는 편이었다.

카지노 딜러라는 직업을 알다

대학 4학년 때 채용 설명회를 통해 카지노 딜러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약간 꺼렸다.
부모 반응도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도박장 아니냐.”
다희는 말했다.
“저 도박하는 거 아니거든.”
호텔 카지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서비스업이면서 기술직에 가까운 부분이 있었다.
게임 규칙을 정확히 이해해야 했고,
칩을 빠르게 계산해야 했으며,
외국어와 고객응대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괜찮았다.
다희는 지원했다.

첫 교육

카드와 칩을 다루는 연습을 수없이 했다.
손동작이 느리면 다시 했다.
게임 규칙을 외웠다.
실수를 최소화해야 했다.
다희에게 잘 맞았다.
규칙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카드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어도 자신의 업무에는 정답이 존재했다.
정확하게 배분하고,
정확하게 계산하고,
정확하게 지급한다.
감정이 들어갈 여지가 적어 보였다.
실제 현장에서는 생각보다 사람 감정을 훨씬 많이 다뤄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첫 근무 — 300만 원의 충격

처음 실제 테이블에 들어간 날 한 손님이 한 판에 300만 원을 걸었다.
다희는 손이 약간 떨렸다.
당시 자신의 한 달 생활비보다 훨씬 큰 돈이었다.
손님은 졌다.
다음 판에 다시 300만 원을 걸었다.
다희는 속으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몇 달 지나자 300만 원에는 별 반응을 하지 않게 됐다.
1천만 원,
2천만 원,
그보다 큰 금액도 봤다.
처음에는 자신이 돈 감각을 잃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개인 생활에서는 오히려 절약 습관이 유지됐다.
회사 안의 돈과 자신의 돈이 전혀 다른 범주로 분리되어 갔다.

손님의 미신을 보며

다희는 수많은 의식을 봤다.
특정 자리에만 앉는 사람.
칩을 일정한 방식으로 쌓는 사람.
카드를 만지기 전에 손을 비비는 사람.
연속으로 지면 딜러를 바꾸는 사람.
어떤 사람은 같은 숫자에 반복해서 돈을 걸었다.
처음에는 우습다고 생각했다.
“확률은 똑같은데.”
그러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행동이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차렸다.
시험 기간에 특정 펜을 사용했고,
면접 때 입었던 속옷을 중요한 날 다시 입었다.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동은 실제 결과를 바꾼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안정시키기 위해 하는 행동
이라고 생각했다.
그 구분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다만 인간은 자기 미신과 타인의 미신을 평가할 때 관대함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20대 후반 — 연애

27세 때 호텔 직원인 남성과 약 3년간 연애했다.
남자친구는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주식과 코인 이야기를 좋아했다.
다희는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2020~2021년 자산가격이 크게 오르던 시기, 남자친구는 상당한 수익을 냈다.
다희에게도 투자하라고 했다.
다희는 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남자친구의 계좌가 계속 올라갔다.
다희는 조금 흔들렸다.
'내가 너무 겁이 많은가.'
결국 소액을 투자했다.
처음에는 수익이 났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처음 투자하지 않았던 판단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락

몇 달 뒤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다희는 손실이 작은 단계에서 대부분 정리했다.
남자친구는 계속 들고 있었다.
“다시 올라.”
라고 했다.
실제로 일부는 다시 올랐고 일부는 더 떨어졌다.
두 사람은 투자관 때문에 크게 싸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희는 남자친구가 손실 이야기를 할 때 점점 짜증이 났다.
“왜 안 팔았어?”
라고 물었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결과 알고 하는 말은 쉽지.”
그 문장은 다희에게 꽤 오래 남았다.
나중의 결과를 알고 과거의 판단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 쉽다.
카지노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긴 사람은 자신이 흐름을 읽었다고 말했다.
진 사람은
“아까 멈췄어야 했는데.”
라고 말했다.
결과가 나오면 과거가 뻔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별

두 사람은 30세 무렵 헤어졌다.
원인은 투자 문제 하나가 아니었다.
남자친구는 서울로 옮기고 싶어 했고 다희는 제주 생활을 유지하고 싶었다.
결혼 이야기도 나왔지만 서로 확신하지 못했다.
다희는 이별 후 친구들에게 말했다.
“애초에 안 맞았어.”
그 말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그런데 가끔은
'서울로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선택하지 않은 결과는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이별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도 실제로 증명할 수 없다.
다희는 이 점이 답답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30대 — 돈을 대하는 방식

현재 다희는 위험을 크게 지지 않는다.
예금,
적금,
ETF,
소액의 채권 상품.
카지노에서 위험이 어떻게 확대되는지를 매일 보면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지나치게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해외여행을 가고,
직장을 위해 제주로 이주했고,
주변에서 익숙하지 않은 직업도 선택했다.
경제적 위험과 삶의 다른 위험을 똑같이 평가하지 않는다.
사람이 ‘위험을 좋아한다’거나 ‘안정을 좋아한다’는 말 하나로 모든 선택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부모와 돈

부모는 이제 60대 중후반이다.
아버지는 퇴직했고 어머니도 일을 거의 그만뒀다.
다희는 부모에게 정기적으로 생활비를 보내지는 않는다.
부모도 필요 없다고 한다.
대신 병원비나 큰 지출이 생기면 오빠와 나눠 부담한다.
오빠가 더 많이 부담하겠다고 하면 고맙기보다 묘하게 불편하다.
자신이 미혼이고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싫지만,
반대로 가족 책임을 덜 지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도 싫다.
돈을 어떻게 나누는가에는 순수한 경제 계산뿐 아니라 가족 안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의미가 붙는다.

현재의 다희

다희는 카지노 일을 평생 할 생각인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교대근무가 점점 피곤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관리직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현장에서 카드와 칩을 다루는 것보다 사람을 관리하는 업무가 더 많아진다.
그것도 썩 끌리지는 않는다.
제주를 떠날 생각을 하면 아쉽고,
계속 살 생각을 하면 조금 답답하다.
하지만 당장 변화할 이유도 크지 않다.
현재 수입은 안정적이고,
저축도 하고 있으며,
생활도 나쁘지 않다.
다희는 이런 상태를
“나쁘지 않다.”
고 표현한다.
그것이 만족한다는 뜻인지,
변화할 만큼 불만이 크지 않다는 뜻인지는 본인도 정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3.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왜 다희는 도박하는 손님의 미신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파란 귀걸이를 착용할까?

다희는 두 행동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손님은 자신의 의식이 카드 결과를 바꾼다고 믿지만,
자신은 귀걸이가 결과를 바꾼다고 믿지 않는다.
단지 익숙하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착용한다.
실제로 중요한 차이다.
그러나 둘 모두에게 공통된 부분도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은 통제감을 만드는 행동이라는 점이다.
다희가 중요한 근무 때 특정 귀걸이를 착용하면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은 확률적 세계를 완전히 확률처럼 느끼며 살아가기 어렵다.
작은 의식이 심리적 안정성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왜 카지노에서는 1천만 원을 보고도 무덤덤하면서 아버지 치과비 400만 원은 크게 느껴질까?

경제학적인 숫자는 같아도 심리적인 돈은 같지 않다.
카지노의 1천만 원은 고객의 칩이고,
다희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반면 부모 병원비 200만 원은 자신의 통장에서 실제로 빠져나간다.
그 돈으로는 여행을 갈 수도 있고,
투자를 할 수도 있고,
몇 달치 저축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개인적인 기회비용이 붙는다.
또 부모 병원비에는 다른 감정도 들어 있다.
사랑.
책임.
노화에 대한 불안.
아까움.
죄책감.
그래서 200만 원이 아깝다고 느낀 직후
‘아빠 이빨인데 내가 왜 아깝다고 하지?’
라고 자신을 평가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돈이라고 해서 비용의 감각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아까움도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왜 오빠가 더 부담하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기분이 상했을까?

다희에게 이 문제는 돈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빠가 200만 원, 자신이 100만 원을 내더라도 부모는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오빠 역시 배려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희에게는 순간 이런 의미가 붙었다.
“오빠가 부모 책임을 더 많이 지는 사람이고 나는 덜 지는 사람인가?”
다희는 가족에게 공평하게 책임지는 자녀이고 싶다.
그래서 원래 생각했던 금액보다 스스로 부담을 높였다.
합리적인 경제 계산만 놓고 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람의 지출은 종종 자신의 정체성을 구매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왜 성공하면 운이었다고 말하면서 실패하면 자신을 탓할까?

다희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우연히 찍은 문제를 맞히고 크게 칭찬받았던 경험도 이런 태도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
성공하면
“운이 좋았어.”
“쉬웠어.”
라고 낮춘다.
겸손해 보인다.
하지만 반대 방향에는 비용이 있다.
실패했을 때는
“내가 못했다.”
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에는 자신의 기여를 작게 보고 나쁜 결과에는 자신의 책임을 크게 볼 수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자기평가가 한 방향으로 기울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왜 VIP 손님의 비합리적인 비난은 우습게 여기면서 비합리적인 칭찬은 기분 좋았을까?

남자는 연승할 때 말했다.
“당신이 행운을 준다.”
다희는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연패하자
“왜 카드를 바꿨느냐.”
고 했다.
이번에는 말도 안 된다고 느꼈다.
논리적으로 두 말은 같은 구조를 가진다.
게임 결과의 원인을 딜러에게 돌린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좋은 귀인은 받아들이기 쉽고 나쁜 귀인은 거부하기 쉽다.
다희도 이 점에서 특별히 예외적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비합리성을 항상 똑같은 엄격함으로 검사하지 않는다.

왜 친구의 주식 손실에는 냉정하게 조언할 수 있는데 자신의 비싼 코트는 버리지 못할까?

친구의 주식은 숫자로 보인다.
현재 가격,
매수가격,
향후 가치.
다희 입장에서는
“이미 잃은 돈은 판단에서 제외해야지.”
라고 말하기 쉽다.
자신의 코트에는 다른 것이 붙어 있다.
그것을 사던 날,
지불한 48만 원,
잘 샀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자신.
버리는 순간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비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고 인정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은 동일한 심리적 원리를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보다 자신에게 적용할 때 훨씬 많은 예외를 만든다.

왜 다희는 손실을 만회하려는 행동에 특히 민감할까?

카지노에서 가장 자주 보는 행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00만 원을 잃은 사람이
“100만 원만 찾고 간다.”
며 200만 원을 걸고,
그것마저 잃으면 500만 원을 건다.
처음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목표가
‘잃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
으로 바뀐다.
손실회피가 행동을 밀어붙이는 장면이다.
다희는 이것을 직장에서 반복적으로 봐왔기 때문에 친구에게도 빠르게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자신이 모든 영역에서 같은 오류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편향을 알고 있다는 것과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다르다.

왜 다희는 자신의 카지노 직업을 타인이 모든 행동의 설명으로 사용하는 것을 싫어할까?

친구가
“카지노 직원답다.”
라고 하면 다희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카지노에서 9년간 일한 경험은 분명 그녀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확률,
위험,
손실,
통제에 대해 일반인보다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다희의 절약습관은 어린 시절 가족 경험에서도 왔고,
위험에 대한 태도는 자신의 기질과 투자 경험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타인이
“카지노에서 일하니까 그렇구나.”
라고 하면 자신의 복잡한 인생이 직업 하나로 설명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때 특징 하나를 발견하면 그것을 설명의 중심으로 놓기 쉽다.
당사자에게는 자신이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왜 다희는 위험을 싫어하면서 제주로 혼자 이주하고 카지노라는 낯선 직업을 선택했을까?

다희가 모든 종류의 위험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잃을 확률이 높은 선택은 싫어한다.
그러나 새로운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
낯선 직업에 지원하는 것,
혼자 여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즐긴다.
즉 위험회피적이다 / 위험선호적이다 같은 하나의 특성으로 사람 전체를 설명하기 어렵다.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는 위험에는 적극적이고,
결과가 순수한 확률에 크게 좌우되는 위험에는 보수적일 수 있다.
다희에게 제주 이주는
“내가 노력하면 적응할 수 있는 위험”이었다.
투기는
“내 노력으로 결과를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으로 느껴진다.

다희의 가장 중요한 자기모순

다희는 확률을 믿는다.
정확히 말하면 확률밖에 없는 곳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습관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자신 역시 의미를 만든다.
파란 귀걸이.
매일 확인하는 투자계좌.
가끔 사는 로또.
돈을 똑같이 부담해야 좋은 딸이라고 느끼는 마음.
모두 순수한 숫자 계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희는 카지노에서 사람들이 확률에 감정과 이야기를 붙이는 것을 매일 본다.
연승하면
“오늘은 내 날이다.”
연패하면
“기운이 안 좋다.”
다희는 그런 말을 들으며 속으로 확률을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의 삶에서는
‘나는 원래 돈에 신중한 사람’
‘이 귀걸이를 하면 마음이 편하다’
‘가족에게는 똑같이 부담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반드시 비합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숫자만으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희가 9년 동안 카지노에서 본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사람들이 확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확률만으로는 자신의 선택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계속 의미를 붙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희 자신도 아직 그 세계 밖에 있지는 않다.

4.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당신은 운이나 미신을 믿는 사람을 쉽게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중요한 날 특정 옷을 입거나, 좋은 결과가 있었던 물건을 다시 사용하거나, 시험 전에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것도 결과를 실제로 바꾼다고 믿어서라기보다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습관과 미신의 경계는 정확히 어디에 있을까?
2. 당신도 다른 사람의 잘못된 판단은 쉽게 발견하면서 자신의 비슷한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친구가 손실 난 주식을 못 팔면 매몰비용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신이 비싸게 산 물건은 아까워 버리지 못할 수 있다.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심리학적 원리를 자신에게도 같은 엄격함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3. 당신의 중요한 선택 가운데 실제로는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좋은 판단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좋은 선택도 나쁜 결과를 만들 수 있고, 잘못된 선택도 운이 좋으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현재의 당신이 과거의 자신을 평가할 때, 판단의 질과 결과의 운을 정말 구분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제주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근무하는 34세 딜러 정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