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이 싫어서 이혼한 게 아니다. 그런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본 정보
| 이름 | 최은채 |
| 나이 | 44세 |
| 성별 | 여성 |
| 거주지 | 충북 청주시 |
| 출신 | 경기도 성남 |
| 직업 | 종합병원 임상병리사 |
| 학력 | 4년제 대학 임상병리학과 졸업 |
| 월 실수령 | 약 320만 원 |
| 주거 | 전세 아파트 |
| 자산 | 예금·퇴직연금 등 약 8,500만 원 |
| 부채 | 전세대출 약 6,000만 원 |
| 가족 | 이혼,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거주 |
| 전남편 | 46세, 중학교 교사 |
| 가장 큰 고민 | 아들이 대학에 간 뒤 자신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
은채는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아들의 교복을 세탁한다.
냉장고를 확인하고 일주일치 반찬도 준비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제육볶음은 항상 조금 많이 만든다.
월요일 아침에는 6시 10분에 일어난다.
아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인 뒤 자신도 병원으로 출근한다.
겉으로 보면 매우 평범한 맞벌이 가정의 아침처럼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집에는 남편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채는 이 생활이 이전보다 힘든데도 이전보다 편하다고 느낀다.
1. 어린 시절 — 싸우지 않는 가족
은채는 1982년 성남에서 두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내버스 기사였고 어머니는 보험설계사와 식당 일을 번갈아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은채가 자신의 가족을 설명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거의 안 싸웠어요.”
사실이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가 아니라 며칠씩 그랬다.
어머니는 그 기간 동안 평소처럼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갈등했는지는 아이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사과하는 모습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은채는 그것을 부부가 싸우지 않는 방법이라고 이해했다.
불편한 문제는 크게 만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이 규칙은 훗날 자신의 결혼생활에도 그대로 들어왔다.
2. 상당히 현실적인 진로 선택
은채는 고등학생 때 생물을 좋아했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과 집안 형편을 계산했다.
재수할 여유가 없었고 취업이 잘되는 전공을 원했다.
담임교사가 임상병리학과를 추천했다.
은채는 지원했고 합격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종합병원에 취직했다.
큰 야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직업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검사 결과를 정확하게 처리하고 문제가 있는 수치를 발견하는 일은 자신의 성격과 잘 맞았다.
은채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한 상황에서 상당히 유능한 사람이다.
3. 남편을 만나다
27세 때 친구의 소개로 준호를 만났다.
중학교 과학교사였다.
두 사람은 2년 동안 연애했다.
준호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고 직업도 안정적이었다.
말투도 부드러웠다.
은채의 어머니는 매우 만족했다.
은채 역시 결혼생활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1세에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이 태어났다.
초기 결혼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바로 그 점이 나중에는 문제를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4. 싸우지 않는 부부
준호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외도를 하지도 않았다.
도박이나 심각한 음주 문제도 없었다.
육아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은채는 오랫동안 자신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다만 작은 일들이 반복됐다.
아이가 아프면 은채가 휴가를 냈다.
예방접종 날짜를 기억하는 것도 은채였다.
양가 부모 생일과 가족행사를 챙기는 것도 은채였다.
집에 휴지가 떨어졌다는 것을 먼저 발견하는 것도 은채였다.
준호에게 부탁하면 대부분 해주었다.
문제는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은채가 말했다.
“나도 일하는데 왜 집안일은 내가 지시해야 해?”
준호는 대답했다.
“그럼 그냥 말해. 말하면 하잖아.”
둘 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논리가 있었다.
그리고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은채가 말을 줄였기 때문이다.
5. 관계가 무너진 방식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특징이었다.
은채는 점점 남편에게 기대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혼자 결정했다.
혼자 처리했다.
준호는 아내가 자신에게 불만이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생활 자체가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큰 싸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11년 차 어느 날 은채가 말했다.
“우리 이혼했으면 좋겠어.”
준호는 정말 놀랐다.
“우리가 이혼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어?”
은채에게 그 질문은 충격이었다.
준호에게도 은채의 이혼 요구가 충격이었다.
같은 집에서 11년을 살면서 두 사람이 경험한 결혼은 상당히 달랐다.
6. 이혼
상담도 받아봤다.
준호는 상당히 노력했다.
설거지를 먼저 하고 주말에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은채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면 떠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준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은채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 2년 전 협의이혼했다.
아들은 은채와 살고 있으며 준호와도 정기적으로 만난다.
양육비 역시 정상적으로 지급된다.
두 사람은 지금 오히려 결혼생활 말기보다 대화를 잘한다.
7. 은채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
이혼 후 은채는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편해진 부분도 많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외로움보다 죄책감이었다.
준호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친척 중 한 명은 말했다.
“요즘 여자들은 참을 줄을 몰라.”
은채는 화가 났다.
그런데 동시에 자신의 마음 한쪽에도 같은 질문이 존재한다.
“내가 조금 더 노력했어야 했나?”
이 질문 때문에 은채는 이혼 이유를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자신의 결정을 법정에서 변론하는 것처럼 말한다.
8. 아들과의 관계
16세 아들 민재와의 관계는 좋은 편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하나 생기고 있다.
은채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관리한다.
학원시간.
성적.
식사.
수면시간.
친구관계.
민재가 밤늦게 들어오면 여러 번 연락한다.
민재가 최근 말했다.
“엄마는 나한테 너무 신경 써.”
은채는 섭섭했다.
자신은 혼자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요소도 있다.
이혼 후 은채의 생활에서 아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졌다.
남편과 공유하던 시간도 상당 부분 아들에게 이동했다.
그녀의 관심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랑에서 시작된 행동이라고 해서 모든 통제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민재에게는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경험할 권리도 있다.
9. 경제적인 현실
은채는 현재 생활이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다.
병원에서 계속 근무한다면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은채가 최근 처음으로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야간·주말 근무에 지쳤다.
최근 대학원에 진학해 보건행정이나 의료데이터 분야를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등록금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녀는 계산한다.
아들 대학등록금.
전세대출.
노후자금.
대학원 비용.
계산을 끝내면 항상 같은 결론이 나온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굳이?”
이 문장은 은채가 자신의 삶에서 여러 번 사용했던 문장이기도 하다.
10. 새로운 사람
몇 달 전 병원 동료들과 등산을 갔다가 47세의 이혼남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가끔 커피를 마신다.
아직 연인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은채는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그런데 상대방이 주말에 만나자고 하면 은채는 종종 핑계를 댄다.
처음에는 아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다시 상대에게 맞추면서 살게 될까 봐 두렵다.
동시에 혼자 늙는 것도 두렵다.
11. 성격의 모순
은채는 갈등을 싫어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갈등을 오래 기억한다.
독립적인 사람이지만 누군가 자신이 말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이혼을 선택할 정도로 결단력이 있으면서 작은 생활의 변화에는 매우 보수적이다.
아들의 독립을 원하면서도 아들이 자신을 덜 필요로 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는 항상 현실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채는 자신의 욕구를 존중하기 위해 결혼을 끝냈지만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우선하는 행위에는 죄책감을 느낀다.
12. 이해와 정당화의 경계
은채가 갈등을 피하는 방식은 어린 시절 부모의 관계와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
남편에게 반복해서 부탁하는 데 지쳤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불만을 오랫동안 표현하지 않은 뒤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았다고 비난한다면 은채에게도 관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혼 이후 아들에게 강하게 집착하는 이유 역시 이해할 수 있다.
가족구조가 바뀌면서 아들이 그녀에게 더 중요한 정서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외로움이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아들의 행동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이유가 곧 행동의 면책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13. 최근 발견한 오래된 물건
얼마 전 본가를 정리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용하던 노트를 발견했다.
맨 뒤에 이런 글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
수의사
혼자 해외여행
큰 개 키우기
서울에서 살아보기
은채는 한동안 그 페이지를 바라봤다.
수의사는 이제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44년 동안 자신에게는 언제나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학.
취업.
결혼.
육아.
주택.
이혼.
아들의 입시.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미루는 데에는 항상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은채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은채에게 좋은 인생은 오랫동안 큰 문제를 만들지 않는 인생이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다.
가족을 유지한다.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불필요하게 싸우지 않는다.
상당히 합리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이혼을 겪으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다.
큰 문제가 없다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최근 은채는 대학원 모집요강을 출력했다.
아직 지원하지 않았다.
서랍 안에는 여권 재발급 신청서도 있다.
그리고 휴대전화에는 자신이 키우고 싶어 하는 대형견 사진이 여러 장 저장되어 있다.
아마 세 가지를 모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변화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44세의 은채는 이제 어떤 선택을 앞두고 예전처럼
“이걸 해도 되는 이유가 충분한가?”
라고만 묻지 않는다.
조금씩 새로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정말 있는가?”

'심리학 자료실 > 인간 심리 관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미숙, 72세 —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살며 처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발견하는 여성 (0) | 2026.08.23 |
|---|---|
| 박재민, 39세 —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제주에서 살며 자유와 회피 사이를 고민 (1) | 2026.08.22 |
| 마테오 알바레스, 33세 (1) | 2026.08.20 |
| 윤하린, 26세 — 불안정한 소득과 자유 사이에서 고민하는 프리랜서 영상 촬영자 (1) | 2026.08.19 |
| 서정우, 57세 — 자동차부품 공장 생산관리 반장, 퇴직을 앞두고 역할과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 (1) | 2026.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