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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강미숙, 72세 —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살며 처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발견하는 여성

by 마음 탐구소 2026. 8. 23.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해. 그런데 며칠 동안 아무도 전화하지 않으면 내가 세상에서 조금씩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본 정보

이름 강미숙
나이 72세
성별 여성
거주지 부산 영도구의 오래된 다세대주택
출신 경남 합천
현재 상태 8년째 혼자 거주
과거 직업 봉제공장 미싱사 → 세탁소 공동운영 → 식당 주방보조
학력 중학교 중퇴
월소득 국민연금·기초연금 등 약 90만 원
자산 현재 거주 중인 소형 주택, 예금 약 1,900만 원
부채 없음
가족 남편 사별, 딸 1명·아들 1명
가장 큰 고민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언제까지 혼자 살 수 있을지

미숙의 집 냉장고에는 반찬통이 많다.

멸치볶음, 깻잎, 장조림, 김치.

혼자 먹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이다.

딸이 올 때마다 말한다.

“엄마, 이제 조금씩 해.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해?”

미숙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음식을 조금만 만드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50년 가까이 누군가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1. 어린 시절 — 공부보다 사람이 먼저 필요했던 집

미숙은 1954년 경남 합천에서 5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작농이었고 어머니도 함께 농사를 지었다.

집에는 늘 일이 있었다.

물을 길어오고, 동생을 보고, 밥을 하고, 밭일을 도왔다.

미숙은 공부를 좋아했다.

특히 국어 성적이 좋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교사는 부모에게 고등학교 진학을 권했다.

하지만 그 무렵 어머니가 막내를 낳은 뒤 몸이 좋지 않았다.

미숙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부모가 강제로 자퇴시킨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미안해했다.

그런데 당시 미숙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15세의 미숙은 그렇게 생각했다.

“집이 먼저지.”

이 문장은 이후 그녀의 인생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2. 열여덟 살, 부산

친척의 소개로 부산의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기숙사에서 다른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하루 종일 미싱을 돌렸다.

처음 월급을 받은 날 미숙은 대부분을 고향으로 보냈다.

자신에게 남긴 돈으로는 빨간색 머리핀 하나를 샀다.

별것 아닌 물건이었지만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

처음으로 가족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샀기 때문이다.

공장생활은 힘들었지만 미숙에게는 동시에 해방이었다.

돈을 벌었다.

친구가 생겼다.

영화관에도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가족 안에서의 역할과 무관한 ‘강미숙’이라는 사람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3. 결혼

25세 때 세탁소에서 일하던 네 살 연상의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말수가 적고 성실했다.

미숙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작은 세탁소를 열었다.

남편이 세탁과 배달을 하고 미숙이 다림질과 손님 응대를 맡았다.

30년 가까이 함께 일했다.

두 사람에게는 딸과 아들이 태어났다.

미숙은 자녀들에게 한 가지를 반복해서 말했다.

“너희는 공부해라.”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원비를 아끼지 않았다.

딸은 대학을 졸업해 간호사가 되었고 아들은 전문대를 졸업한 뒤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미숙에게 그것은 상당한 성공이었다.

4. 그런데 아이들은 어머니를 조금 다르게 기억한다

미숙은 자신이 자녀에게 헌신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딸에게 어린 시절의 어머니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도 기억된다.

시험점수가 떨어지면 미숙은 말했다.

“엄마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데.”

딸이 대학 시절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는 허리 휘게 돈 버는데 여행 갈 생각이 나냐?”

미숙은 당시 이것을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딸에게는 사랑과 죄책감이 섞여 전달됐다.

여기에는 미숙 자신의 삶이 영향을 미쳤다.

그녀에게 사랑은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희생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상대방 역시 사랑한다면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배경은 미숙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녀에게 죄책감을 주었던 행동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5. 남편의 죽음

64세 때 남편이 폐암 진단을 받았다.

발견 당시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미숙은 약 1년 반 동안 남편을 간병했다.

병원비, 항암치료, 식사, 약 복용 시간을 모두 관리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장례를 치렀다.

친척들이 돌아갔다.

아이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미숙은 처음으로 혼자 집에 남았다.

그날 밤 그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주 약한 안도감이 있었다.

다음 날 몇 시에 일어나도 되었다.

약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죄책감을 느꼈다.

“남편이 죽었는데 내가 편하다고 느껴도 되는 건가?”

그 감정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6. 혼자 사는 생활

현재 미숙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아침 6시쯤 일어난다.

TV 뉴스를 켠다.

아침을 먹는다.

근처 시장에 간다.

일주일에 두 번 주민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친구들과 목욕탕에도 간다.

저녁에는 드라마를 본다.

겉으로 보면 비교적 안정적인 노년생활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작은 습관이 하나 있다.

밤이 되면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부재중 전화가 있는지 본다.

카카오톡도 확인한다.

아무것도 없으면 다시 TV를 본다.

30분 정도 지나면 또 확인한다.

7. 자녀와의 관계

딸은 부산에서 차로 약 40분 떨어진 곳에 산다.

한 달에 두세 번 찾아온다.

아들은 수도권에서 살며 명절이나 휴가 때 내려온다.

두 자녀 모두 어머니를 신경 쓴다.

하지만 미숙은 가끔 섭섭하다.

특히 아들이 며칠 동안 전화하지 않으면 그렇다.

그런데 아들이 전화하면 미숙은 이렇게 말한다.

“뭐 하러 전화했노. 바쁜데.”

아들이 말한다.

“엄마가 전화 좀 하라며.”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

미숙에게는 먼저 연락해서 관심을 요구하는 것이 어색하다.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것이 진짜 관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8. 돈

미숙은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옷도 잘 사지 않는다.

외식도 드물다.

자녀들은 말한다.

“엄마 돈은 엄마가 써.”

하지만 미숙은 예금을 계속 모은다.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미숙에게 돈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간병인을 써야 할 수도 있다.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다.

요양원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통장잔액은 그녀에게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독립해서 살 수 있는 시간의 양에 가깝다.

9. 최근 생긴 문제

몇 달 전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큰 부상은 아니었다.

무릎에 멍이 들었고 손목을 조금 삐었다.

그런데 바닥에 앉아 있는 몇 분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못 일어나면 누가 알지?”

그 사건 이후 딸은 자신의 집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오라고 권하고 있다.

미숙은 거절했다.

“나는 여기서 살 거다.”

겉으로는 익숙한 동네를 떠나기 싫어서라고 말한다.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다.

딸 가까이 살면 언젠가 자신이 돌봐야 하는 사람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평생 누군가를 돌보던 사람이 이제 돌봄을 받는 위치가 되는 것이다.

미숙에게 그것은 단순한 노화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10. 미숙이 가진 모순

미숙은 외롭지만 혼자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자녀의 관심을 원하지만 자신에게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싫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가족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

돈이 충분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것에는 죄책감을 느낀다.

자녀에게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면서도 자녀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면 섭섭해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모순이 있다.

미숙은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가족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했다.”

그런데 가족에게 더 이상 많은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지금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른다.

11. 뜻밖의 욕망

주민센터 프로그램에서 미숙은 우연히 한글 수필 쓰기 수업에 들어갔다.

첫 과제는 ‘내가 가장 기억하는 어린 시절’이었다.

미숙은 학교를 그만두던 날 이야기를 썼다.

선생님이 글을 읽고 말했다.

“글을 재미있게 쓰시네요.”

미숙은 집에 돌아와 그 말을 여러 번 생각했다.

며칠 뒤 문구점에서 3,500원짜리 공책을 샀다.

그리고 가끔 자신의 기억을 적기 시작했다.

봉제공장에서 처음 월급을 받은 날.

남편과 처음 만난 날.

딸을 낳던 날.

남편이 죽은 다음 날 아침.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미숙이 72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가족에게 필요하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도 되지 않는다.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이 재미있어서 한다.

미숙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미숙에게 좋은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를 돕는다.

자녀를 키운다.

배우자를 돌본다.

돈을 아낀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 규칙으로 70년 가까이 살아왔다.

그리고 그 규칙은 실제로 그녀와 가족을 상당 부분 지탱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생겼다.

해야 할 일이 줄어들었다.

돌봐야 할 사람이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미숙은 평생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딸.

누나.

아내.

엄마.

할머니.

이제 처음으로 다른 질문을 배우고 있다.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가?”

어젯밤 미숙은 공책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페이지 더 썼다.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은 아직 없다.

그런데 쓰는 동안 한 번도 휴대전화를 확인하지 않았다.

부산 영도의 오래된 집에서 혼자 생활하며 수필 쓰기로 자신만의 삶을 발견하는 72세 강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