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서정우, 57세 — 자동차부품 공장 생산관리 반장, 퇴직을 앞두고 역할과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

by 마음 탐구소 2026. 8. 18.

“나는 평생 책임지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가 책임졌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 정보


이름 서정우
나이 57세
성별 남성
거주지 전북 군산
직업 중소 자동차부품 공장 생산관리 반장
학력 공업고등학교 졸업
월 실수령 약 330만 원
자산 24평 아파트 1채, 예금 약 2,800만 원
부채 주택담보대출 약 4,200만 원
가족 아내와 거주, 성인 자녀 2명은 독립
건강 고혈압 약 복용, 허리 통증
가장 큰 걱정 퇴직 이후의 삶

정우는 스스로를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냥 남들 사는 만큼 살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남들만큼’에는 꽤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정우는 1969년 전북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고 겨울에는 공사판 일을 했다. 어머니는 농사와 집안일을 맡았다.

가난했지만 굶지는 않았다.

다만 집에는 항상 돈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 달 비료값.”

“큰형 등록금.”

“막내 교복값.”

정우는 어린 시절부터 돈이 부족하면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교사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권했다.

성적이 꽤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부모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공부하고 싶으면 해라.”

그런데 그 말 뒤에 긴 침묵이 있었다.

정우는 그 침묵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취업이 빠른 길을 선택했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삶에 중요한 규칙 하나를 만들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먼저 한다.

 

20대 — 처음으로 얻은 안정

19세에 졸업한 정우는 인천의 자동차부품 공장에 취직했다.

처음 받은 월급을 거의 전부 어머니에게 보냈다.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주말에는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당시 그의 목표는 단순했다.

정규직이 되는 것.

정규직이 되면 인생에서 상당한 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4세에 정규직이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사회에서 자리를 얻었다고 느꼈다.

그 무렵 지금의 아내인 미영을 만났다.

미영은 공장 근처 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둘은 3년 연애 후 결혼했다.

정우는 결혼할 때 미영에게 말했다.

“적어도 돈 때문에 고생시키지는 않을게.”

그에게는 사랑 고백에 가까운 말이었다.

가족을 만드는 과정

29세에 첫째 딸이 태어났고 32세에 아들이 태어났다.

이때부터 정우의 삶은 매우 규칙적으로 변했다.

오전 6시 20분 기상.

7시 출근.

잔업.

퇴근.

주말 가족 외식.

가끔 낚시.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정우가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는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학원비를 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딸이 노트북을 필요로 하면 사줬다.

아들이 재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비용을 댔다.

반면 아이들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참아.”

“사회 나가면 더 힘들어.”

정우에게 이것은 격려였다.

아이들에게는 때때로 대화를 끝내는 말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

46세 때 회사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동료 17명이 회사를 떠났다.

그중에는 정우와 20년 가까이 일한 친구도 있었다.

친구는 치킨집을 열었다.

3년 뒤 폐업했다.

정우는 그 일을 보면서 강한 공포를 느꼈다.

그 이후 그는 회사에서 이전보다 훨씬 보수적인 사람이 되었다.

후배가 새로운 생산방식을 제안하면 먼저 위험부터 생각한다.

“괜히 건드렸다가 문제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건데?”

젊은 직원들은 그를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우에게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변화 뒤에는 실직 → 사업 실패 → 빚이라는 구체적인 얼굴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의 태도가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몇 차례는 그의 반대로 효율적인 개선이 늦어졌다.

그의 불안을 이해하는 것과 그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지금의 가족관계

아내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대화는 많이 줄었다.

두 사람의 하루 대화는 이런 식이다.

“밥 먹었어?”

“응.”

“내일 몇 시 출근이야?”

“평소랑 똑같지.”

정우는 이것을 특별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딸의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아내가 말했다.

“당신하고 나는 애들 키우는 팀이었던 것 같아.”

정우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니 두 사람 사이에서 공동 프로젝트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자녀들이 바라보는 아버지

딸은 아버지를 존경한다.

동시에 조금 불편해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정치·직장·결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정우는 자녀들과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은 아버지를 “필요할 때 반드시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으로는 잘 떠올리지 않는다.

이 차이를 정우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경제적 현실

정우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집이 있고 직장이 있고 빚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 계산을 해보면 불안해진다.

국민연금 예상액과 퇴직금을 여러 번 계산한다.

아내는 작은 카페에서 주 3일 일하지만 소득은 많지 않다.

정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 그 자체보다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에게 돈을 버는 능력은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현재 가장 큰 문제

회사에서는 앞으로 2~4년 사이 인력 감축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돈다.

정우는 아직 공식적으로 들은 것이 없지만 퇴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회사를 안 가면 나는 뭘 하지?”

낚시를 좋아하지만 매일 낚시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친한 친구들도 대부분 직장 사람들이다.

특별한 취미도 없다.

그동안 인생의 대부분을 가족과 회사라는 두 조직 안에서 살아왔다.

이제 두 조직 모두에서 자신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이상한 행동 하나

최근 정우는 새벽에 중고차 사이트를 자주 본다.

특히 오래된 SUV를 본다.

실제로 살 생각은 없다.

아내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SUV에 낚싯대와 침낭을 싣고 아무 목적지 없이 며칠 동안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곧 생각한다.

“쓸데없이 돈 쓰는 짓이지.”

사이트를 닫는다.

며칠 뒤 다시 들어간다.

성격의 모순

정우는 안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자유를 동경한다.

가족에게 헌신했지만 가족과 감정을 나누는 방법은 잘 모른다.

젊은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강조하면서도 자신 역시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돈을 아끼는 사람이지만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비싼 물건을 사고 싶어진다.

자녀가 독립하기를 바랐지만 실제로 독립하고 나니 섭섭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모순이 있다.

정우는 평생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가족을 위해 살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가족 때문에 포기한 걸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보는 것이 두려웠던 걸까?”

이 질문에는 아직 답하지 못한다.

정우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정우에게 세상은 기본적으로 책임을 다하면 어느 정도의 자리를 허락해주는 곳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월급을 받는다.

가족을 부양하면 아버지로 인정받는다.

오래 근무하면 회사에서 자리를 얻는다.

그런데 최근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자동화 설비가 들어오고 젊은 직원들은 회사를 쉽게 옮긴다.

자녀들은 부모와 다른 방식으로 산다.

회사는 장기근속 자체를 특별히 보상하지 않는다.

정우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던 규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황스러워한다.

그래서 지금 그의 문제는 단순히 퇴직이 두려운 50대 남성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 자신을 설명해주었던 문장,

“나는 가족을 책임지는 직장인이다.”

에서

직장인책임져야 할 가족이라는 두 단어가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

57세의 서정우는 처음으로 이런 질문 앞에 서 있다.

아무도 나에게 역할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 변화를 고민하는 자동차부품 공장 생산관리 반장 서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