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재의 삶
유리는 현재 중앙유럽의 한 대학병원 법의학센터에서 일한다.
그의 업무는 일반적인 부검만이 아니다.
대형 항공사고, 지진, 화재, 홍수, 전쟁 이후처럼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현장에 국제팀과 함께 파견된다.
그가 직접 참여한 재난만 20건이 넘는다.
어떤 현장에서는 수백 명의 희생자를 식별해야 했다.
그의 역할은 시신이나 유해에서 신원 정보를 확보하고, DNA·치과 기록·신체 특징 등을 비교해 가족에게 정확한 신원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많이 본 사람”이라고 표현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이름을 갖게 되는 과정이다.
평상시 그의 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집에는 불필요한 물건이 거의 없다.
여행을 매우 많이 하지만 개인적인 관광은 거의 하지 않는다.
휴가 때는 산책하거나 집에서 요리한다.
사람들은 그가 죽음에 익숙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리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리하는 것에 가깝다.”
2.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
유리는 의사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
아버지는 철도 기관사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어린 시절 그는 매우 조용하고 세밀한 아이였다.
생물학을 좋아했고 손으로 무언가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을 즐겼다.
의대에 진학했지만 임상의가 되겠다는 강한 목표는 없었다.
법의학 실습에서 처음 흥미를 느꼈다.
살아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학과 달리 법의학에서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최대한 정확하게 재구성해야 했다.
그는 이 작업이 자신의 성향과 맞았다.
32세 때 처음 대형 사고 현장에 파견됐다.
그 전까지 죽음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과 수백 명의 죽음은 단순히 숫자의 차이가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신체가 개인이 아니라 “사례 번호”가 되기 쉽다.
그는 처음 며칠 동안 그것이 오히려 업무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사례번호 117.
치과기록 확인.
DNA 채취.
개인물품 정리.
그러다 어느 날 피해자의 지갑에서 가족사진이 나왔다.
그 순간 사례번호가 다시 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 경험 이후 유리는 한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업무 중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처리하되, 최종 확인 단계에서는 반드시 피해자의 이름을 직접 읽는다.
그에게 이것은 일종의 인간성 유지 장치다.
이후 여러 재난에 참여하면서 그는 죽음뿐 아니라 유족의 반응을 반복해서 보게 됐다.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누군가는 신원확인 결과를 믿지 않았다.
누군가는 오히려 안도했다.
그는 인간의 슬픔에는 표준적인 모습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3.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세계 인식
죽음
유리에게 죽음은 철학적 개념이기 전에 행정적·신체적 현실이다.
사망진단서가 필요하고 신원확인이 필요하며 가족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렇다고 죽음에 무감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추상적인 공포로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 자체보다 죽은 뒤 남겨지는 사람들의 혼란을 더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유언장과 보험서류, 계좌정보를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해두었다.
위험
그는 사람들이 위험을 매우 감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한다.
비행기 사고는 두려워하면서 일상적인 교통위험이나 건강위험은 무시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재난 현장을 오래 경험하면서 위험을 “무서운 것”보다 확률과 결과의 조합으로 본다.
가족
유리에게 가족에게 가장 잔인한 상황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확실하지 않은 죽음이다.
사망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 모르는 상태.
그래서 그는 신원확인을 단순한 과학적 절차로 보지 않는다.
가족이 애도를 시작할 수 있도록 현실을 확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돈
그는 물질을 상당히 가볍게 본다.
재난 현장에서 비싼 시계, 결혼반지, 지갑, 신용카드가 개인물품 봉투에 들어가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그러나 돈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돈이 살아 있는 동안 선택권과 안전을 제공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단지 그것을 개인의 가치와 연결하지 않는다.
사람
유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감정표현을 거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울지 않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고, 많이 우는 사람도 반드시 더 깊이 사랑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감정의 외형보다 이후의 행동을 본다.
성공
그에게 성공은 유명해지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정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재난 현장에서 한 번의 오류는 다른 가족에게 잘못된 시신을 전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맞았다”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미래
유리는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미래는 계획해야 하지만 보장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4. 밖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행동 1 — 가족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가족에게 무관심하다고 오해할 때가 있다.
실제로는 반대다.
재난 현장에서 수많은 가족사진을 유품으로 다뤄온 경험 때문에 사진이 그에게 매우 강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사진을 가볍게 소비하지 못한다.
행동 2 — 장거리 여행 전에 가족에게 비밀번호와 중요서류 위치를 알려준다
주변에서는 지나치게 불길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유리에게 이것은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비슷하다.
죽음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죽음을 불러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 3 — 장례식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그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반드시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더 정확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행동 4 — 중요한 물건을 거의 소유하지 않는다
자신이 죽었을 때 가족이 물건 하나하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이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건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유리에게는 오히려 가족에 대한 배려에 가깝다.
5.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 당신이 수백 번 죽음 이후의 가족을 직접 봤다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불길한 행동처럼 느껴질까?
- 한 사람의 이름을 가족에게 돌려주는 일이 당신의 직업이라면 “정확성”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얼마나 달라질까?
- 인간이 마지막에 남기는 수많은 물건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면,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중요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