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 48분
윤복순은 알람 없이 눈을 뜬다.
휴대전화 화면을 켜니 5시 48분이다.
다시 잘 수도 있지만 일어나기로 한다.
침대 끝에 앉아 발목을 몇 번 돌린다. 오른쪽 무릎이 뻣뻣하다.
“오늘은 괜찮네.”
혼잣말을 한다.
사실 어제보다 조금 아프다.
하지만 복순에게 몸이 아프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이 정도 가지고 병원을 가나.
주방으로 가서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며느리가 지난주에 가져다준 요구르트가 있다.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오늘까지다.
요구르트를 꺼내면서도 잠깐 생각한다.
저번에 뭐 사오지 말라고 했는데.
며느리가 싫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고맙다.
하지만 누군가 자기 냉장고 안에 무엇이 부족한지를 판단하는 상황이 조금 싫다.
커피믹스 하나를 컵에 뜯어 넣는다.
딸이 전에 말했다.
“엄마, 믹스커피 좀 줄여. 당 많아.”
그 말을 떠올리며 스틱을 반만 넣으려다가 결국 다 넣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하루에 한 잔밖에 안 먹는데 뭘.
오전 7시 03분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걷는다.
동네 친구인 오정희가 맞은편에서 온다.
“복순아, 오늘 복지관 안 가?”
“오늘은 안 가.”
“왜? 노래교실 있잖아.”
“그거 재미없더라.”
사실 두 번밖에 안 가봤다.
첫날 강사가 말했다.
“우리 어르신들, 박수 크게 한번 쳐볼까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어르신들’이라는 말 속에 자기가 하나의 종류가 된 느낌이 들었다.
노래 자체는 재미있었다.
정희가 묻는다.
“그럼 뭐 할 건데?”
복순은 대답한다.
“할 거 많아.”
특별한 일정은 없다.
두 사람은 약 10분 같이 걷는다.
정희가 다음 달 딸과 일본에 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애가 다 해놨어. 나는 몸만 가면 돼.”
“좋겠다.”
복순은 진심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한다.
나는 몸만 가면 되는 여행은 싫을 것 같은데.
어디를 갈지, 얼마를 쓸지, 어느 식당에 들어갈지 전부 다른 사람이 정한 여행.
편할 것 같으면서도 답답하다.
오전 8시 26분
집에 돌아와 세탁기를 돌린다.
수건 네 장, 속옷 몇 벌, 티셔츠 두 장뿐이다.
세탁기에 넣기 전 옷의 얼룩을 하나씩 확인한다.
30년 넘게 세탁소를 했던 습관이다.
티셔츠 목 부분의 작은 얼룩을 발견한다.
세제를 묻혀 손으로 비빈다.
이럴 때는 손이 빨라진다.
어디까지 문질러야 섬유가 상하지 않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안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조금 허전하다.
예전에는 아침 8시면 이미 옷걸이가 수십 개씩 들어왔다.
“사장님, 이거 내일까지 돼요?”
“이 얼룩 좀 꼭 빼주세요.”
“이거 비싼 옷이에요.”
어떤 손님은 자기가 세탁 전문가인 것처럼 설명했고, 어떤 사람은 옷을 맡기는 순간 모든 책임을 넘겼다.
그때는 귀찮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하루의 구조였다.
복순은 거실에 앉아 TV를 켠다.
5분쯤 뉴스 화면을 보다 끈다.
“맨날 똑같은 소리야.”
휴대전화를 켠다.
아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손녀가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복순은 사진을 확대한다.
‘좋아요’를 누를까 하다가 그냥 나온다.
지난번 아들이 말했다.
“엄마, 카톡 봤으면 답장 좀 해. 맨날 읽고 말아.”
복순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봤으면 본 거지, 무슨 답을 꼭 해야 하나.
오전 10시 41분
시장에 간다.
집에 두부가 있지만 또 두부를 산다.
단골 채소가게 주인이 말한다.
“어머니, 오늘 상추 좋아요.”
“얼마예요?”
“한 봉지 3천 원.”
복순은 봉지를 뒤집어 본다.
아랫부분 잎 몇 개가 눌려 있다.
“이거 다 물렀는데 3천 원을 받아?”
“아이고, 안 물렀어요. 오늘 아침 거예요.”
“2천5백 원 해.”
“그냥 3천 원 주세요.”
복순은 잠깐 상추를 내려놓는다.
가게 주인이 웃으며 말한다.
“알았어요, 알았어. 2천5백 원.”
복순은 상추를 산다.
500원을 아껴서 기쁜 것만은 아니다.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만족스럽다.
몇 걸음 걷다가 작은 반찬가게에서 손녀가 좋아하는 멸치볶음을 본다.
8천 원이다.
가격은 묻지도 않고 산다.
집에 돌아가면 택배로 보내줄 생각이다.
오후 12시 18분
점심은 보리밥에 된장찌개다.
혼자 먹는데 반찬을 네 가지 꺼낸다.
TV는 켜지 않는다.
밥을 먹다가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뭐 해?”
“밥 먹지.”
“오늘 저녁에 우리 갈까?”
복순은 잠깐 멈춘다.
냉장고에 별것이 없다.
집도 청소는 되어 있지만 화장실 거울에 물자국이 조금 있다.
“오늘 말고 다음에 와.”
“왜?”
“내가 오늘 나갈 데가 있어.”
“어디?”
“있어.”
실제로 없다.
아들은 말한다.
“엄마, 우리가 뭐 손님이야? 그냥 가는 거지.”
복순은 웃는다.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
통화를 끊는다.
잠시 뒤 조금 아쉽다.
손녀를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저녁 일정이 결정되는 게 싫었다.
그 두 감정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진짜인지 복순 자신도 정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오후 2시 07분
동네 은행에 간다.
ATM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창구 번호표를 뽑는다.
직원이 묻는다.
“어떤 업무 보실까요?”
“적금 하나 보려고.”
직원이 태블릿을 돌려주며 여러 상품을 설명한다.
복순은 금리를 하나하나 묻는다.
“이건 중간에 깨면 얼마예요?”
“자동이체 안 하면?”
“인터넷으로 해야만 우대된다고?”
직원이 설명을 반복한다.
복순은 이해가 느린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 부분 이미 이해했다.
다만 누군가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순간 질문이 많아진다.
직원이 말한다.
“어머님, 그러면 아드님하고 한번 상의해보시고—”
복순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는다.
“내 돈인데 아들이 왜 나와요?”
직원이 당황한다.
“아, 그런 뜻은 아니고요.”
“내가 물어보고 내가 할게요.”
결국 적금은 가입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며 생각한다.
괜히 예민하게 굴었나.
10초쯤 지나자 생각을 바꾼다.
아니지. 나한테 설명하면 되지 왜 아들이야.
오후 4시 32분
집에서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세탁소 영수증 묶음을 발견한다.
2015년이라고 적혀 있다.
버리려고 쓰레기봉투 옆에 놓는다.
10분 후 다시 꺼낸다.
영수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어떤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버리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세탁소를 정리할 때 간판을 떼던 날에도 비슷했다.
자기는 은퇴를 원했다.
무릎도 아팠고 임대료도 계속 올랐다.
무엇보다 손님에게 맞춰 생활하는 것이 지겨웠다.
그런데 가게가 없어지고 나니 이상했다.
오전 9시에도 아무도 자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지금도 다시 세탁소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간혹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하루를 정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가게가 정해줬구나.
영수증 묶음을 결국 서랍 맨 아래에 다시 넣는다.
오후 6시 15분
저녁을 먹으려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옆집에 사는 40대 여성이 귤 한 봉지를 들고 서 있다.
“어머니, 저희 제주도 갔다 와서요.”
“뭘 이런 걸 줘.”
“별거 아니에요.”
복순은 귤을 받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아까 산 두부 한 모를 꺼낸다.
“이거 가져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두 개 샀어.”
거짓말이다.
두부는 하나 샀다.
옆집 여성이 웃으며 받아간다.
문을 닫은 뒤 복순은 저녁 메뉴에서 두부부침을 뺀다.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먹으려고 산 건데.
그러면서도 그냥 귤만 받은 것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오후 8시 44분
아들이 손녀 사진을 몇 장 보낸다.
할머니 나 오늘 수영 25m 성공했어
이번에는 바로 답한다.
잘했네. 물 먹지 말고 조심해.
손녀가 답한다.
할머니 물 조금 먹어도 안죽어 ㅋㅋ
복순은 웃는다.
문자를 쓰다가 지운다.
다음 주에 할머니가 멸치 보내줄게.
대신 이렇게 보낸다.
공부도 해.
보내고 나서 자신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수영 이야기를 하다가 왜 공부 이야기를 했을까.
손녀에게 공부를 심하게 시키고 싶은 것도 아니다.
아마 칭찬만 하고 끝내는 것이 어색했는지도 모른다.
밤 10시 51분
잠자리에 누운다.
내일 일정은 없다.
그 사실이 예전보다 덜 불안하다.
예전에는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면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복순은 내일 복지관 노래교실에 다시 가볼까 생각한다.
노래만 부르면 되지 뭐.
그러다 이런 생각도 한다.
그 강사가 또 '우리 어르신들' 그러면 그냥 나오지.
휴대전화 알람은 맞추지 않는다.
자기가 몇 시에 일어날지는 자기가 정하고 싶다.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윤복순은 1954년 충북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농사를 지었고 어머니는 농사와 집안일을 함께 했다.
집이 특별히 가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돈을 쓸 때마다 이유가 필요했다.
새 운동화를 사려면 기존 운동화가 정말 못 신게 되었음을 보여줘야 했다.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은
“있는 거부터 써.”
였다.
복순은 어려서부터 자기 몫의 일을 비교적 잘 찾아서 했다.
누가 시키기 전에 빨래를 걷어오면 칭찬받았다.
반대로 뭔가를 부탁했을 때 “왜 나만 해?”라고 하면 어머니는 싫어했다.
하지만 복순은 순종적인 아이만은 아니었다.
동생에게 자기 물건을 허락 없이 쓰지 못하게 했고, 자기 몫의 사과가 작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말했다.
가족 안에서 그는 ‘착한 아이’보다는 자기 몫을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에 가까웠다.
청소년기와 청년기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는 취업을 권했다.
복순은 크게 싸우지는 않았다.
당시 주변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16살에 제천의 봉제공장에 들어갔다.
처음 자기 월급을 받은 날, 부모에게 상당 부분을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돈을 동생 학용품에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동생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돈을 드렸으니 어떻게 사용할지는 부모 마음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자신에게 한번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감각은 이후에도 자주 반복된다.
복순에게 중요한 것은 반드시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일에 자기가 관여할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결혼과 세탁소
25세에 소개로 결혼했다.
남편은 말수가 적은 전기기술자였다.
두 사람은 크게 싸우지 않았지만 서로 세심하게 감정을 확인하는 부부도 아니었다.
생활비, 아이 교육, 부모 병원비처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함께 처리했다.
30대 초반에 작은 세탁소를 열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맞았다.
옷의 상태를 보고 작업 순서를 결정하고, 손님과 가격을 협의하고, 오늘 받은 일을 언제 끝낼지 자기가 정할 수 있었다.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도 컸지만 자기 판단이 곧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좋았다.
점점 단골이 생겼다.
집에서는 남편보다 경제 문제를 더 꼼꼼하게 챙겼다.
아들이 대학에 갈 때도 등록금의 상당 부분을 세탁소 수입으로 냈다.
복순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아들에게 자주 말하지는 않았다.
말하는 순간 생색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50대와 60대
아들이 결혼하고 집을 나갔다.
복순은 며느리와 크게 갈등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며느리 편한 시어머니”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며느리가 집에 와서 부엌 정리를 해주거나 건강식품을 사주면 미묘하게 불편해했다.
도움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과 결정권이 같이 넘어오는 순간을 싫어했다.
65세에 세탁소를 정리했다.
처음에는 만족했다.
늦잠도 자고 여행도 다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직장이 사라진 것보다 하루가 외부의 요구 없이 너무 넓어진 것이 낯설어졌다.
남편과 둘이 지내며 나름의 생활 리듬을 다시 만들었다.
몇 년 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혼자 살고 있다.
상실은 컸지만 복순은 자신의 삶 전체를 사별을 중심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남편이 없는 것이 허전할 때가 있고, 반대로 혼자 결정해도 되는 생활이 편할 때도 있다.
그 두 감정을 동시에 갖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복순을 겉으로 보면 고집 센 노인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은행 직원이 아들과 상의하라고 했을 때 불쾌해했고, 며느리가 물건을 사오는 것도 완전히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고집 이상의 것이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기 노동을 통해 생활을 운영해왔다.
16살부터 돈을 벌었고, 30년 넘게 자기 가게에서 수많은 작은 판단을 직접 내렸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판단 능력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이양되는 상황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시장에서는 상추값 500원을 깎으면서도 손녀에게 보낼 8천 원짜리 멸치볶음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절약하는 사람이어서도, 손녀에게만 관대한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가격을 흥정할 때는 거래의 주도권이 중요했고, 손녀에게 돈을 쓸 때는 자신이 선택한 지출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아들이 갑자기 방문하겠다고 했을 때도 비슷하다.
실제로는 손녀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갈게”라는 말이 자신의 저녁 시간을 갑자기 다른 사람의 계획으로 바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거절한다.
그리고 거절하고 나서 아쉬워한다.
복순은 독립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고, 손녀의 사진을 보고,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상대가 자신의 생활을 대신 판단해도 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은 싫다.
복지관도 마찬가지다.
노래가 싫어서 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불편했던 것은 자신이 갑자기 ‘노인 집단’의 일원이 되어 관리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노인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복순 자신도 무릎이 예전 같지 않고 몸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자신에게 노화는
“나는 예전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늘었다.”
에 가깝지,
“이제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 판단해야 한다.”
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복순의 모순이 생긴다.
누군가 먼저 찾아와 주기를 바라면서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은 싫다.
도움을 고마워하면서도 도움받는 사람으로 규정되는 것은 싫다.
자유로운 시간을 원해서 은퇴했지만, 일이 주던 구조를 그리워한다.
아마 복순 자신도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복순이 당신의 부모라면 그의 거절을 단순한 고집이라고 생각할까?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도움의 양보다 ‘내 삶은 아직 내가 결정한다’는 감각일 가능성은 없을까?
2.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언제 상대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을까?
당신이 선의로 대신 결정해준 일이 상대에게는 능력을 의심받는 경험일 수도 있지 않을까?
3. 당신이 72세가 되었을 때 무엇을 가장 잃기 싫을까?
건강이나 돈뿐 아니라, 사소한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가능성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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