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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김도현, 17세, 군산의 특성화고 자동차과 2학년

by 마음 탐구소 2026. 8. 12.

현재의 하루

오전 6시 38분

도현은 알람이 세 번째 울리고 나서야 눈을 뜬다.

침대 옆에는 어제 벗어놓은 교복 바지가 뒤집힌 채 놓여 있다. 방 한쪽에는 자동차 정비기능사 필기 문제집과 게임용 키보드 상자가 나란히 쌓여 있다.

휴대전화를 보니 같은 반 단체방에 메시지가 47개 와 있다.

누군가 어젯밤 학교 근처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고, 친구들이 새벽까지 농담을 주고받았다.

도현은 대화를 위로 올려보지만 답은 하지 않는다.

반 친구 승우가 올린 사진이 눈에 걸린다.

아버지가 새 차를 샀다는 사진이다.

친구들이 댓글을 달았다.

미쳤다ㅋㅋ
너네 집 돈 많네
한 번 태워줘라

도현은 사진을 확대했다가 바로 닫는다.

차가 뭐 대단하다고.

그리고 화장실로 간다.

오전 7시 04분

어머니가 식탁에 계란프라이와 김을 놓는다.

“빨리 먹어. 버스 놓친다.”

도현은 의자에 앉으며 묻는다.

“엄마, 우리 차 언제 바꿔?”

어머니가 쳐다본다.

“갑자기?”

“그냥.”

현재 가족 차는 12년 된 준중형 승용차다.

정비는 잘 되어 있고 크게 문제도 없다.

어머니가 말한다.

“멀쩡한데 왜 바꿔. 너 취업해서 사.”

도현이 웃는다.

“내가 왜 엄마 차를 사줘.”

“그러니까 엄마도 안 사.”

둘 다 웃는다.

도현은 별일 아닌 것처럼 밥을 먹는다.

사실 질문을 한 이유가 승우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대형마트 계산원으로 일한다.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안다.

도현은 가끔 자기가 이런 걸 신경 쓴다는 사실 자체를 조금 창피하게 생각한다.

나도 돈 밝히는 애 같잖아.

그래서 돈 이야기를 할 때는 대개 농담처럼 한다.

오전 7시 51분

버스 뒷자리에 같은 반 정환이가 앉아 있다.

“야, 수행했냐?”

“무슨 수행?”

“자동차 전기.”

도현이 욕을 한마디 한다.

“오늘이냐?”

“오늘이지.”

도현은 가방을 뒤진다.

프린트는 있다.

빈칸이다.

정환이가 웃는다.

“역시.”

도현도 웃으며 말한다.

“쉬는 시간에 베끼면 되지.”

실제로는 약간 불안하다.

필기 과목 성적은 좋지 않다.

그런데 실습에서는 대체로 상위권이다.

도현은 이 차이를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적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원래 책으로 하는 거 못해.”

라고 말한다.

그 말은 자기평가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방어선이다.

책으로 하는 걸 못하는 것이지, 자신이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전 9시 36분

자동차 정비 실습시간이다.

교사가 일부러 점화계통에 문제가 있는 차량을 준비한다.

“누가 한번 찾아볼래?”

학생 몇 명이 앞으로 나온다.

도현도 일어난다.

친구들과 계측기를 연결하고 하나씩 확인한다.

친구가 퓨즈를 의심한다.

도현이 말한다.

“퓨즈면 아예 안 걸리지 않았겠냐?”

교사가 옆에서 듣고 묻는다.

“그러면 뭐 같아?”

도현은 잠깐 망설이다 말한다.

“코일 쪽이요.”

“확인해봐.”

결국 비슷한 원인이 맞는다.

교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도현이는 이런 건 감이 빠르네.”

도현은 별것 아니라는 듯 웃는다.

“맨날 차만 보니까 그렇죠.”

자리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좋다.

정환이가 툭 치며 말한다.

“취업하면 니가 나 먹여 살려라.”

“꺼져.”

도현은 웃는다.

수학시험에서 80점을 받았을 때보다 이런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오전 11시 18분

국어시간.

학생들의 절반쯤이 엎드려 있다.

교사는 다음 학기 취업 준비 이야기를 한다.

“무조건 빨리 취업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회사도 잘 알아봐야 돼.”

앞자리 학생이 묻는다.

“선생님, 대기업 생산직도 학교에서 보내줘요?”

“성적이랑 출결 봐야지.”

뒤에서 누군가 말한다.

“우리 반에서 갈 사람이 있긴 해?”

몇 명이 웃는다.

도현도 웃는다.

그런데 조금 불편하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끼리 학교를 무시할 때는 같이 웃을 수 있다.

외부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그 차이를 스스로 논리적으로 설명해본 적은 없다.

오후 12시 34분

급식시간.

친구들이 졸업 후 이야기를 한다.

승우가 말한다.

“나는 일단 전문대 갈 수도 있음.”

정환이가 묻는다.

“갑자기?”

“우리 아빠가 대학은 가래.”

도현이 말한다.

“전문대 가서 뭐 하게?”

승우가 어깨를 으쓱한다.

“모르지. 자동차 쪽?”

도현은 말한다.

“그럴 거면 그냥 취업하는 게 낫지 않냐.”

말하고 나서 승우가 기분 나빠할까 잠깐 신경 쓰인다.

그런데 승우는 별 반응 없이 김치를 먹는다.

도현은 속으로 생각한다.

대학 가면 좋긴 하겠지.

자기에게 대학 진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담임도 전문대 진학을 권한 적이 있다.

하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를 생각하면 취업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누가 그 이유를 물으면 돈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보통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공부 더 하기 싫어.”

그 말도 거짓말은 아니다.

오후 3시 17분

마지막 수업이 끝난다.

친구 셋이 PC방을 가자고 한다.

도현은 처음에는 간다고 했다가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어머니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

집 올 때 계란 한 판만 사와.

도현이 말한다.

“나 오늘 안 감.”

“왜?”

“돈 없음.”

사실 2만4천 원이 있다.

정환이가 말한다.

“내가 빌려줄게.”

“됐어. 그냥 집 갈 거야.”

도현은 친구들과 헤어진다.

그는 가족 심부름 때문에 집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말보다 돈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덜 민망했다.

오후 4시 06분

마트에서 계란 한 판을 산다.

계산대에는 어머니와 같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있다.

어머니가 근무하는 지점은 아니지만 도현은 잠시 직원들을 본다.

한 중년 남자가 계산원에게 말한다.

“이거 할인된다고 써 있던데 왜 이 가격이에요?”

직원이 설명한다.

남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도현은 괜히 신경이 쓰인다.

엄마도 저런 거 하루 종일 상대하겠지.

그런데 집에서는 어머니가 손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도현도 굳이 묻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모르는 노동시간이 꽤 많다.

오후 5시 23분

집에 도착해 교복을 벗고 컴퓨터를 켠다.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니 친구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

헤드셋을 쓰자 승우가 묻는다.

“야, 너 아까 왜 갔냐.”

“귀찮아서.”

게임을 하던 중 친구들이 승우 아버지 차 이야기를 다시 한다.

승우가 말한다.

“도현아 너 자동차과니까 차 봐줘. 아빠가 중고차 팔 때 가격 알아봐달래.”

도현이 말한다.

“사진 보내봐.”

사진 몇 장을 본다.

“이 정도면 관리 잘했네.”

승우가 농담한다.

“우리 아빠 차까지 관리해주냐?”

도현이 웃는다.

“돈 내.”

조금 전 아침에 느꼈던 불편함이 사라진다.

차의 가격을 비교할 때는 승우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차의 상태를 판단하는 순간에는 자신이 더 많이 안다.

도현은 그 차이를 좋아한다.

오후 7시 11분

어머니와 여동생과 저녁을 먹는다.

중학교 1학년인 동생이 말한다.

“오빠 학교 졸업하면 바로 돈 벌어?”

도현이 말한다.

“그렇겠지.”

“얼마 벌어?”

“몰라.”

어머니가 웃으며 말한다.

“오빠 돈 벌면 너 용돈 달라고 하려고?”

동생이 말한다.

“응.”

도현이 젓가락으로 동생 머리를 툭 친다.

“내가 왜.”

하지만 속으로는 첫 월급을 받으면 가족에게 무엇을 사줄지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런 상상을 좋아하면서도 가족을 위해 빨리 취업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싫다.

자기가 희생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부담스럽다.

오후 9시 02분

자동차 정비기능사 문제집을 펼친다.

열 문제를 푼다.

네 개를 틀린다.

답지를 보다가 짜증이 난다.

“이걸 왜 외워야 돼.”

책을 덮는다.

게임을 켜려다가 다시 문제집을 연다.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할 때 유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15분 더 공부한다.

도현은 자신이 끈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가 실제로 필요하다고 납득한 일은 꽤 오래 붙잡는다.

밤 11시 47분

침대에 누워 유튜브에서 자동차 정비 영상을 본다.

추천 영상 사이에 ‘20대에 월 500 버는 법’ 같은 영상이 뜬다.

잠깐 눌렀다가 30초 만에 나온다.

뭔 말이 저렇게 많아.

다시 엔진 분해 영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승우의 새 차 사진이 떠오른다.

아침처럼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도현은 생각한다.

나도 나중에 사면 되지.

조금 뒤 다른 생각이 붙는다.

근데 진짜 살 수 있나?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도현은 2009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유통업계에서 일했다.

도현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부모가 이혼했다.

극심한 갈등이나 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몇 년 동안 자주 다투었고 결국 따로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버지는 같은 지역에 살며 간헐적으로 연락한다.

도현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다.

어린 도현에게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이혼 자체보다 친구들의 집과 자기 집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언제 설명해야 하는지였다.

처음에는 친구가

“너네 아빠 뭐 해?”

라고 물으면 대충 대답했다.

나중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

도현은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다.

레고를 설명서대로 완성한 뒤 다시 분해해서 다른 것을 만들었다.

성적은 평균 정도였다.

어머니는 공부를 강하게 시키지 않았다.

대신 준비물을 빠뜨리거나 숙제를 거짓말하면 심하게 혼냈다.

“못하는 건 괜찮은데 안 하고 했다고 하는 건 안 돼.”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도현에게 이 기준은 꽤 오래 남았다.

그는 실패보다 ‘허세 부리다 들키는 것’을 더 싫어한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집안 형편 차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최신 휴대전화를 바로 바꿨고 누구는 학원을 세 개씩 다녔다.

도현의 집도 생계가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먹고 싶은 것을 전혀 못 먹거나 수학여행을 못 갈 정도도 아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사려면 한 번 생각해야 하는 집이었다.

도현은 이 차이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싫어했다.

“돈이 없어서 못 한다.”

보다

“난 그거 필요 없어.”

라고 말하는 일이 늘었다.

그 가운데 진짜로 필요 없어진 것들도 있었다.

진로 선택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은 인문계고 진학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도현에게 결정하라고 했다.

도현은 특성화고 자동차과를 선택했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었고 빨리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동시에 대학 입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친척 중 한 명이 말했다.

“공부 조금만 더 하지. 요즘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도현은 그 자리에서는

“전 공부 싫어요.”

라고 웃었다.

집에 돌아온 뒤 며칠 동안 그 말을 생각했다.

자신이 정말 자동차과를 선택한 것인지,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선택한 것인지 스스로도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현재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잘 맞는다.

실습에서는 손이 빠르고 교사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반면 일반교과 시간에는 집중을 잘하지 않는다.

도현은 취업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취업이 무엇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모른다.

월급을 받고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 정도를 상상한다.

가끔 대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 조금 부럽다.

그러나 자신이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삶을 부러워하는 것과 실제로 그 삶을 선택하고 싶은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도현은 그 차이를 아직 정확한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아침에 친구 승우의 새 차 사진을 보고 도현은 불편해했다.

그것을 단순한 질투라고 부를 수도 있다.

실제로 질투가 조금 섞여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돈이라는 기준에서는 자신이 손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느낌이다.

부모의 소득이나 지금 집에 있는 자동차는 도현이 바꿀 수 없다.

반면 학교 실습에서 자동차 문제를 찾아낼 때는 상황이 다르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손과 판단으로 위치가 바뀐다.

그래서 승우의 비싼 자동차를 볼 때보다 그 자동차의 상태를 자신이 판단해줄 때 훨씬 편해진다.

도현에게 기술은 단순한 직업 준비가 아니다.

아직 어린 자신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는 몇 안 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가 친구들에게 가족 심부름 때문에 PC방을 못 간다고 하지 않고

“돈 없음.”

이라고 말한 행동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는 돈이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창피할 것 같지만 도현에게는 꼭 그렇지 않다.

집에 가서 어머니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자신이 친구들보다 가족 사정에 더 얽매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돈 없음”은 친구들끼리 흔히 하는 말이다.

상황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그는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집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계층적 불편함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다.

나보다 힘든 애도 많은데.

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불편함은 직접 표현되기보다 농담이나 무관심의 형태로 나타난다.

대학 문제에서도 비슷하다.

“나는 공부가 싫어서 취업한다.”

는 말에는 진실이 있다.

동시에 등록금, 성적, 자신의 자신감 같은 여러 조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기능도 한다.

그 문장을 유지하면 도현은 ‘대학을 못 간 사람’이 아니라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합리화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자동차 실습을 좋아하고, 책상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잘 맞는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가 동시에 사실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동차 일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다른 선택지가 더 넓었으면 좋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17세인 도현 자신은 그 두 마음을 굳이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도현이 “대학 필요 없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열등감이나 합리화라고만 볼까?

그 말 안에는 실제로 기술을 좋아하는 마음과 경제적 현실, 자존심, 아직 경험하지 않은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동시에 들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2. 사람에게 돈이 부족한 것보다 ‘돈 때문에 선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더 불편할 수도 있을까?

당신이 당연한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다른 사람의 선택 중에도 비슷한 사정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3. 당신이 도현의 나이와 환경에서 자랐다면 정말로 지금의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판단했을까?

17세의 선택을 성인이 된 이후의 정보와 기준으로 너무 쉽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을까?

군산 특성화고 자동차 실습실에서 진단 장비를 배우는 2학년 김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