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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강태수, 46세, 평택의 건설현장 콘크리트 펌프카 기사

by 마음 탐구소 2026. 8. 11.

현재의 하루

오전 4시 36분

강태수의 알람이 울린다.

한 번에 끈다.

아내는 옆에서 계속 잔다.

태수는 침대에서 내려와 부엌으로 간다.

냉장고에서 전날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을 꺼낸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서 날씨 앱을 본다.

비 올 확률 60%.

“애매하게 오네.”

비가 많이 오면 작업이 미뤄질 수 있다.

일을 쉬게 되면 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 비가 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펌프카 할부금, 보험료, 유류비를 계산하면 하루 작업이 취소되는 것이 단순한 휴일은 아니다.

오전 5시 17분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차에 오른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어젯밤 보낸 문자가 생각난다.

아빠 나 학원 하나 그만두면 안 돼?

태수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

아들의 수학학원비는 월 42만 원이다.

최근 성적은 오히려 떨어졌다.

태수는 학원을 그만두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허락하면 자기가 공부를 가볍게 보는 아버지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들이 방에서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저럴 거면 학원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답장을 쓰지 않은 채 시동을 건다.

오전 6시 32분

현장에 도착한다.

젊은 현장 직원이 다가온다.

“기사님, 오늘 여기 말고 B동부터 친답니다.”

태수가 묻는다.

“아까 도면은 A동이었잖아요.”

“변경됐습니다.”

“차를 여기까지 왜 빼놨어.”

직원이 웃으며 말한다.

“저도 방금 전달받았습니다.”

태수는 한숨을 쉰다.

“요즘은 현장이 맨날 방금이야.”

직원의 표정이 조금 굳는다.

태수는 알아차리지만 사과하지 않는다.

직원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획이 자꾸 바뀌는 현장에 화가 났고, 실제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 화가 나왔다.

오전 8시 11분

콘크리트 타설이 시작된다.

태수의 표정이 달라진다.

붐을 움직여 호스 위치를 맞춘다.

작업반장이 손짓한다.

태수는 거의 동시에 움직인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미리 본다.

20년 가까이 해온 일이다.

새로 들어온 기사 한 명이 옆에서 구경한다.

“형님, 저 각도에서 안 걸려요?”

“저쪽만 보면 걸리지. 뒤를 봐야 돼.”

“뒤요?”

“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지 호스만 보면 안 돼.”

목소리에 약간의 만족감이 묻어난다.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에는 기분이 좋다.

오전 10시 47분

쉬는 시간.

작업자 네 명이 편의점 커피를 마신다.

한 사람이 최근 안전교육이 너무 많다며 불평한다.

“일을 하라는 건지 교육 들으라는 건지 모르겠어.”

태수도 말한다.

“옛날에는 알아서 다 했지.”

옆에 있던 27세 기사가 말한다.

“그래도 옛날보다 사고는 줄었잖아요.”

태수는 잠깐 조용해진다.

“그건 그렇지.”

그 이상 반박하지 않는다.

사실 태수도 안전장비가 강화된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젊을 때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다치던 장면도 몇 번 봤다.

그런데 ‘옛날 방식이 위험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시절 자신들이 무식하게 일한 사람처럼 평가받는 느낌이 든다.

그는 안전규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 전체가 낡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을 싫어한다.

오후 12시 23분

현장 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는다.

아내에게 메시지가 온다.

민준이 학원 얘기 했어?

태수는 답한다.

오늘 얘기할게.

2분 후 아내가 다시 보낸다.

화내지 말고 얘기해.

태수는 그 문장을 세 번 본다.

기분이 조금 상한다.

내가 맨날 화만 내나.

그러다가 지난달 아들이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넌 하기 싫으면 다 그만두냐?”

아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태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는다.

오후 3시 08분

오후 작업 도중 후배 기사가 기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말한다.

태수가 직접 확인한다.

“이거 계속 쓰면 안 돼.”

현장 관리자는 말한다.

“오늘 물량 얼마 안 남았는데 끝내면 안 될까요?”

태수는 단호하게 말한다.

“터지면 누가 책임질 건데요?”

관리자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이다.

태수도 일정이 밀리는 것이 싫다.

수리비도 자기 부담이 일부 생길 수 있다.

그래도 작업을 중단한다.

흥미롭게도 자신이 위험을 감수할 때와 남이 위험을 요구할 때 태수의 기준은 다르다.

자기가 판단해서 무리하는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이 시키는 무리는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5시 54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른다.

금액이 17만 원을 넘는다.

태수는 영수증을 보며 중얼거린다.

“기름값 진짜…”

그러면서 휴대전화 쇼핑 앱에서 지난주부터 보고 있던 38만 원짜리 전동공구 세트를 다시 확인한다.

필요 없는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 장비도 쓸 수 있다.

구매 버튼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 앱을 닫는다.

10분 뒤 신호 대기 중 다시 켠다.

결국 주문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일하는 사람이 장비에는 돈 아끼면 안 되지.

아내가 같은 가격의 가방을 샀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굳이 떠올리지 않는다.

오후 7시 22분

가족 세 명이 저녁을 먹는다.

아들이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태수가 먼저 묻는다.

“학원 왜 그만두려고.”

“그냥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같아.”

“성적 떨어지니까 그런 거 아니고?”

“그런 것도 있고.”

태수는 한동안 밥을 먹는다.

예전 같으면 바로 뭐라고 했을 것이다.

아내가 태수를 한 번 쳐다본다.

태수는 묻는다.

“그만두면 그 시간에 뭐 할 건데?”

아들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얼굴을 한다.

“인강 듣고 혼자 해보려고.”

“진짜 할 수 있어?”

“해볼게.”

태수는 말한다.

“한 달 해봐. 안 되면 다시 알아보고.”

아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가 끝난 뒤 아내가 주방에서 조용히 말한다.

“오늘은 잘 얘기했네.”

태수는 곧바로 대답한다.

“내가 언제는 못 얘기했어?”

아내가 웃는다.

“됐어.”

태수는 조금 민망하다.

오후 9시 13분

샤워하고 소파에 눕는다.

유튜브에서 굴착기 정비 영상을 본다.

아들이 방에서 친구와 게임하는 소리가 난다.

웃음소리가 크다.

태수는 한 번 말하려다 참는다.

학원 그만두겠다고 해놓고 바로 게임이냐.

그러나 오늘부터 그만둔 것도 아니다.

조금 뒤 아들이 거실에 나와 물을 마신다.

“아빠.”

“왜.”

“아까 고마워.”

“뭐가.”

“그냥.”

태수는 TV를 보며 말한다.

“약속은 지켜.”

“알았어.”

아들이 방으로 돌아간 뒤 태수는 입꼬리를 조금 올린다.

밤 10시 42분

침대에 누워 내일 현장 주소를 확인한다.

아내가 묻는다.

“당신 몇 살까지 그 일 할 거야?”

“왜?”

“허리도 아프다며.”

태수는 말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지.”

“그게 몇 살인데?”

“모르지.”

말은 간단하지만 태수에게 어려운 질문이다.

펌프카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지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돈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가 잘하는 일이 이것이라는 사실이 더 크다.

잠들기 직전 잠깐 생각한다.

민준이는 나처럼 몸 쓰는 일 안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조금 뒤에는 생각한다.

근데 뭐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아야지.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강태수는 1980년 경기도 평택 외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화물차 기사였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했다.

부모는 교육열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자녀가 굶거나 학비가 없어 학교를 못 다니게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고쳐주거나 태워다주는 것이 애정 표현에 가까웠다.

태수가 중학생 때 자전거가 고장 나면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수리했다.

하지만 시험을 망쳤다고 속상해할 때는

“다음에 잘하면 되지.”

정도로 끝났다.

태수도 점차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익혔다.

학창 시절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성적은 중하위권이었다.

하지만 기술 시간과 체육을 좋아했고 기계를 만지는 데 익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친구들 몇 명이 전문대에 갔을 때 약간의 열등감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대학 가서 뭐 하냐. 빨리 돈 버는 게 낫지.”

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실제 신념도 있었고 자기 선택을 방어하는 마음도 있었다.

20대

군 복무 후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일을 빨리 익혔다.

기계 조작에서는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장에서는 학력보다 ‘저 사람이 실제로 할 줄 아느냐’가 비교적 빠르게 드러났다.

태수에게 이것은 중요한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자신이 평균 이하라고 느꼈다면 현장에서는 자신이 꽤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일을 점점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30대

결혼하고 아들이 태어났다.

처음에는 월급 기사였지만 이후 대출을 받아 중고 펌프카를 구입했다.

수입이 크게 늘어난 해도 있었고 일이 줄어 힘든 해도 있었다.

한때는 월수입이 회사원 친구들보다 훨씬 많았다.

친구들이 연봉 이야기를 할 때 속으로 약간 우쭐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주말마다 쉬거나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종류의 삶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무실 체질이 아니야.”

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사무실 일을 해본 적은 없다.

40대

경력이 쌓이면서 현장에서 인정받는 기사 중 하나가 되었다.

동시에 몸의 변화도 느끼기 시작했다.

허리가 자주 뻐근하고 회복 속도가 느려졌다.

현장은 점점 시스템화됐다.

앱으로 작업 일정이 오고, 안전규정과 장비 기준도 바뀌었다.

태수는 변화 중 많은 부분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자신의 20년 경험이 어느 순간 ‘옛날 방식’으로 분류될 가능성을 불편해한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또 다른 갈등이 생겼다.

태수는 아들에게 자신보다 편한 일을 하길 바란다.

동시에 그 편한 삶을 얻으려면 자신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두 생각은 아들에게 종종 압박으로 전달된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태수에게 능력은 상당히 중요한 자기 기준이다.

학교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현장에서는 능력이 명확하게 보였다.

기계를 정확히 움직이고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고 문제를 해결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찾았다.

그래서 오전 작업 중 젊은 기사에게 기술을 설명할 때 자연스럽게 만족감을 느꼈다.

반대로 젊은 직원이나 새로운 규정이 자신의 경험을 낡은 것으로 취급하는 듯한 순간에는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가 안전교육을 비꼬면서 실제 위험한 작업은 중단시킨 행동은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태수에게 중요한 것은 ‘위험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다.

누가 위험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에 더 가깝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판단은 믿는다.

책상에서 만들어진 규칙은 일단 의심한다.

그렇다고 규칙을 모두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면 받아들인다.

아들에게도 비슷한 구조가 보인다.

태수는 학원을 계속 다니게 하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아들이 ‘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되는 것은 두렵다.

왜냐하면 태수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하기 싫어도 버티는 능력이 생존에 실제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의 세계도 자신과 같다고 확신할 근거는 없다.

태수는 그 점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경험적으로 판단한다.

38만 원짜리 공구를 사면서도 자신은 소비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장비에 투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가족의 다른 소비에는 좀 더 엄격하다.

이 역시 단순한 이중잣대만은 아니다.

자신의 돈이 노동과 다시 연결될 때 태수는 지출을 정당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기준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것은 사실이다.

태수는 가족을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아들이 “고마워”라고 했을 때 자신도 기뻤으면서

“약속은 지켜.”

라고 답했다.

그에게 관계는 종종 감정의 교환보다 책임의 교환으로 번역된다.

아마 본인은 자신을 그저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태수가 새로운 안전규정을 불평한다면 당신은 단순히 변화에 뒤처진 사람이라고 평가할까?

그 규칙이 자신의 기술과 경험이 점점 가치 없어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가능성은 없을까?

2. 부모가 자녀에게 “버텨라”라고 말하는 것은 항상 통제일까?

자신이 실제로 버텨서 살아남았던 사람에게는 그것이 꽤 합리적인 조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3. 당신이 20년 동안 잘해온 일이 어느 날 새로운 기술 때문에 낡은 방식이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논리적으로 변화가 옳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같은 문제일까?

평택 건설현장에서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콘크리트 펌프카를 점검하는 강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