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하루
오전 6시 11분
한지윤은 알람이 울리기 4분 전에 눈을 뜬다.
옆에서 남편은 자고 있다.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병원 단체방 메시지가 두 개 와 있다.
원장님 10시 임플란트 환자 CT 다시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료 업체에서 오늘 2시 방문 가능하답니다.
지윤은 침대에서 바로 답한다.
확인했습니다. 9시 30분 전에 기존 영상 먼저 올려주세요.
답을 보내고 나서 생각한다.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 시작했네.
그러면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않는다.
오전 6시 43분
집 근처 헬스장에 간다.
트레이너 없이 혼자 운동한다.
러닝머신 20분, 하체 운동 세 종류.
운동 앱에는 주 4회가 목표라고 적혀 있다.
이번 주는 오늘이 두 번째다.
그녀는 오늘 운동한 사실보다 지난 이틀 동안 하지 않았던 것을 먼저 생각한다.
거울 앞에서 운동복을 정리한다.
체중은 정상 범위이고 주변에서도 날씬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지윤의 머릿속에서는 몸이 주로 ‘관리 상태’로 인식된다.
좋다, 싫다보다
관리되고 있다 / 흐트러지고 있다.
두 가지에 가깝다.
오전 8시 07분
남편과 아침을 먹는다.
남편은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친다.
남편이 말한다.
“다음 달에 나 일주일 제주도 워크숍 갈 수도 있어.”
“언제?”
“둘째 주쯤.”
지윤은 캘린더를 확인한다.
“나는 그때 화요일 세미나 있고 목요일 수술 세 개 있어.”
남편이 웃는다.
“같이 가자는 얘기 아닌데.”
지윤도 웃는다.
“아, 그러네.”
자기도 왜 자기 일정을 먼저 확인했는지 조금 우습다.
남편이 말한다.
“우리 올해 휴가는 언제 가지?”
“9월?”
“작년에도 9월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윤이 잠깐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결국 사흘 쉬었다.
“이번에는 진짜 가자.”
남편은 대답한다.
“당신이 예약해.”
지윤은 웃으며 말한다.
“그럼 못 갈 수도 있는데.”
농담처럼 말했지만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을 안다.
오전 9시 18분
병원에 도착한다.
직원들에게 인사한다.
“좋은 아침.”
데스크 직원이 말한다.
“원장님, 오늘 예약 거의 꽉 찼어요.”
지윤은 예약표를 본다.
“12시 30분 여기 왜 비었어요?”
“점심시간이에요.”
지윤이 웃는다.
“아, 맞다.”
직원도 웃는다.
지윤은 바쁜 날을 싫어한다고 자주 말한다.
그러나 예약표에 빈칸이 많으면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오전 11시 02분
환자가 치료 상담을 받는다.
50대 남성이 비용을 듣고 묻는다.
“꼭 지금 해야 합니까?”
지윤은 엑스레이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당장 오늘 하셔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더 진행되면 치료 범위가 커질 수 있어요.”
환자가 말한다.
“다른 데서는 좀 더 지켜봐도 된다고 하던데.”
순간 지윤의 머릿속에 아주 짧은 반응이 지나간다.
그 병원은 뭘 보고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겉으로는 말한다.
“치과마다 판단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경과 관찰하셔도 됩니다.”
환자는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나간다.
지윤은 다음 환자를 보기 전에 엑스레이를 다시 한번 본다.
자기 판단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다시 확인한다.
오후 1시 06분
직원들과 점심을 먹는다.
한 직원이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건넨다.
“원장님 꼭 오세요.”
“당연히 가야지. 축하해.”
직원이 웃는다.
다른 직원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원장님은 애기 생각 없으세요?”
순간 식탁이 아주 잠깐 조용해진다.
직원은 곧 덧붙인다.
“아, 제가 너무 개인적인 걸 물어봤나.”
지윤은 웃는다.
“괜찮아요. 우리는 그냥 둘이 잘 살기로 했어요.”
대화는 금방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지윤은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다.
실제로 부부는 자녀를 갖지 않기로 오래전에 결정했다.
그런데 5분 정도 지나 갑자기 생각한다.
쟤는 내가 애를 못 가진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바로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게 뭐가 중요해.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런데 생각은 한 번 더 돌아온다.
오후 3시 41분
치료가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직원이 말한다.
“원장님, 4시 환자 15분 정도 밀릴 것 같아요.”
지윤은 답한다.
“다음부터는 이 치료 40분 잡지 말고 50분 잡아요.”
“네.”
5분 뒤 지윤이 다시 말한다.
“아니, 환자에 따라 다르니까 일괄적으로 바꾸지는 말고요.”
직원은 다시 “네”라고 한다.
지윤은 자신이 직원들을 피곤하게 만들 때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안다.
하지만 기준을 단순화하면 예외가 생기고, 예외를 허용하면 품질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오후 6시 28분
마지막 환자가 취소한다.
예정보다 30분 일찍 끝났다.
실장이 말한다.
“원장님 오늘 일찍 가세요.”
지윤은 대답한다.
“그러려고요.”
그러나 원장실에서 매출표를 연다.
이번 달 현재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7% 높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그런데 신규 환자 수는 4% 줄었다.
지윤은 신규 환자 항목을 클릭한다.
유입 경로를 확인한다.
블로그 검색, 지인 추천, 지도 검색.
20분이 지난다.
실장이 문을 두드린다.
“원장님 아직 안 가셨어요?”
지윤이 웃는다.
“이것만 보고.”
40분 뒤 병원을 나온다.
오후 8시 02분
남편과 집 근처 이탈리안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와인을 한 잔 주문한다.
남편이 묻는다.
“오늘 몇 시에 끝났어?”
“일곱 시쯤.”
“원래 여섯 시 반 아니었어?”
“매출 좀 보느라고.”
“왜?”
“그냥.”
남편은 파스타를 먹다가 말한다.
“잘되고 있잖아.”
지윤은 바로 대답한다.
“지금 잘된다고 계속 잘되는 건 아니잖아.”
남편이 웃는다.
“그 말 당신 진짜 자주 한다.”
지윤도 웃는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남편은 더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후 9시 37분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는다.
대학 동기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보인다.
친구는 병원을 정리하고 캐나다에서 1년 살기를 시작했다.
사진에는 산과 호수가 있다.
글에는 ‘조금 늦게 쉬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적혀 있다.
지윤은 좋아요를 누른다.
그리고 남편에게 보여준다.
“얘 진짜 갔네.”
“부럽지?”
“나는 저렇게 못 살아.”
“왜?”
“병원을 어떻게 1년을 닫아.”
남편이 묻는다.
“병원 없으면 당신은 뭐 하고 싶어?”
지윤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게 무슨 질문이야.”
“그냥.”
지윤은 잠깐 생각한다.
여행.
책.
운동.
요리.
몇 가지가 떠오르지만 어느 것도 1년을 채울 만큼 강하게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조금 불편해진다.
밤 11시 16분
침대에서 내일 일정을 확인한다.
첫 환자는 오전 10시다.
조금 늦게 출근해도 된다.
알람을 6시 15분으로 맞춘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 9월에 진짜 여행 예약할까?”
남편이 말한다.
“그래.”
“근데 추석 전이면 병원 바쁠 수도 있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지윤이 웃는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지윤도 무슨 의미인지 안다.
그래서 조금 짜증이 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도 조금 짜증이 난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오늘 매출도, 환자도 아니다.
병원 없으면 나는 진짜 뭐 하지?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한지윤은 1985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기업 직원, 어머니는 중학교 교사였다.
가정형편은 안정적이었다.
부모가 성적을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집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험에서 95점을 받아도
“잘했네.”
정도로 끝났다.
하지만 지윤은 어릴 때부터 자기가 정한 기준이 높았다.
받아쓰기 하나를 틀리면 집에서 다시 써봤다.
부모가 시킨 적은 없다.
어머니는 가끔 말했다.
“그 정도면 됐어.”
지윤에게는 이상한 말처럼 들렸다.
됐다는 걸 누가 정하지?
청소년기
학교에서는 늘 상위권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여러 일이 쉬워졌다.
선생님은 믿어줬고 부모는 걱정하지 않았다.
친구들도 시험 기간이면 지윤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풀어?”
지윤은 그 위치가 편했다.
특별히 남보다 우월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잘하는 사람’인 자신에게 익숙해졌다.
고등학생 때 성적이 크게 떨어진 시험이 한 번 있었다.
부모는 별말 하지 않았지만 지윤이 가장 크게 당황했다.
그때 처음으로
다음에도 이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오래 했다.
대학과 20대
치대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성적에 맞았고 전문직이라는 안정성이 있었고 손으로 정밀하게 작업하는 것도 잘 맞았다.
부모도 좋아했다.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자기만큼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지윤은 평범해진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러나 곧 더 열심히 하는 방식으로 적응했다.
졸업 후 봉직의로 일하면서 치료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환자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때도 좋았지만, 복잡한 치료를 자신이 예상한 대로 끝냈을 때 더 큰 만족을 느꼈다.
30대
32세에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자녀 문제를 여러 차례 이야기한 끝에 갖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압력 때문은 아니었다.
둘 다 현재 생활을 좋아했고 육아를 강하게 원하지 않았다.
지윤은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이 그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때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방어적인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35세에 대출을 크게 받아 치과를 열었다.
첫해에는 환자 수가 적어 상당한 불안을 겪었다.
두 번째 해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몇 년 뒤 대출 대부분을 갚았고 소득도 상당히 높아졌다.
현재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40대에 들어서며
개원 초기의 목표는 명확했다.
환자를 늘리고, 대출을 갚고, 병원을 안정시키는 것.
이제 그 목표 대부분을 달성했다.
그런데 목표가 달성된 뒤 오히려 다음 기준이 더 세분화됐다.
매출이 안정되면 신규 환자 수를 보고,
신규 환자 수가 괜찮으면 재방문율을 보고,
그것도 괜찮으면 직원 이직률을 본다.
지윤은 이를 ‘사업 관리’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꼼꼼한 관리 덕분에 병원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부분도 크다.
하지만 관리해야 할 문제가 줄어들수록 새로운 관리 지표를 찾는 경향도 있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지윤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실패에 대한 공포보다 완료에 대한 불편함이다.
그녀는 많은 목표를 달성했다.
전문직이 되었고, 병원을 열었고, 상당한 부채도 상환했다.
현재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다.
그런데 ‘이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지윤은 누가 시켜서 노력한 사람이라기보다 자기 기준으로 계속 다음 문제를 찾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병원 예약이 꽉 차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빈 시간이 생기면 불안하다.
매출이 7% 올랐는데도 신규 환자가 4% 줄었다는 숫자를 먼저 본다.
이 행동은 단순한 완벽주의라고만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병원을 운영하려면 위험을 미리 찾아야 한다.
지윤의 성향은 현실적인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문제는 위험을 찾는 능력이 너무 잘 발달하면 위험이 없는 순간에도 위험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가 없는 삶도 마찬가지다.
지윤은 자신의 선택에 대체로 만족한다.
그런데 직원의 질문 이후
나를 아이를 못 가진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라고 떠올렸다.
자녀를 원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타인의 눈에는 ‘선택하지 못한 결과’로 보일 가능성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친구의 캐나다 생활을 보며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저렇게 못 살아.”
라고 말했다.
실제로 병원 때문에 어렵다.
그러나 전부 병원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년 동안 아무 성과 지표도 없이 살아보는 것은 지윤에게 꽤 낯선 경험일 것이다.
병원이 없다면 그녀는 높은 소득만 잃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를 매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잃는다.
그래서 남편의
“병원 없으면 뭐 하고 싶어?”
라는 아주 평범한 질문이 예상보다 어렵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모순이 있다.
지윤은 자유를 원한다.
여행도 가고 싶고 조금 덜 일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그 시간을 다시 목표와 일정으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
그녀가 삶을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방식으로 상당히 만족하며 살아왔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 중요한 질문이 바뀌기 시작한다.
예전의 질문은
“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였다면,
이제는 조금씩
“성공한 뒤에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지?”
가 되고 있다.
지윤은 아직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도 아마 병원 메시지부터 확인할 것이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성공한 사람이 계속 일한다면 반드시 욕심이 많아서일까?
일을 멈추었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사람에게 성취는 돈 이상의 기능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2. 스스로 선택한 삶인데도 타인의 평가가 신경 쓰일 수 있을까?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것과 그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
3. 당신이 오랫동안 바라던 목표를 모두 달성한다면 정말 편안해질까?
혹시 새로운 목표를 만드는 이유 중 일부는 더 많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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