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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김란, 44세, 전남 해남에서 남편과 시설채소 농사를 짓는 귀화 한국인

by 마음 탐구소 2026. 8. 12.

현재의 하루

오전 5시 21분

란은 남편의 알람 소리에 깬다.

남편이 손을 뻗어 알람을 끈다.

란은 이미 눈을 뜨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은 출하하는 날이다.

5분 정도 더 누워 있다가 먼저 일어난다.

주방에 나가 밥솥을 열고 남은 밥을 확인한다.

두 사람 먹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햇반을 하나 데울까 하다가 국수를 삶는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아침부터 국수야?”

“밥 없잖아.”

“햇반 있던데.”

“그건 지민이 먹으라고 놔둔 거.”

남편이 웃는다.

“딸은 학교 기숙사에 있는데?”

란은 냉장고를 열다 잠깐 멈춘다.

“주말에 오잖아.”

금요일이다.

딸은 내일 온다.

햇반 한 개를 굳이 아껴둘 이유는 없다.

란도 안다.

그래도 그대로 둔다.

오전 6시 17분

비닐하우스 안은 벌써 덥다.

란과 남편은 파프리카를 선별한다.

남편이 상자에 담고 란이 흠집을 확인한다.

남편이 하나를 집어 들며 말한다.

“이 정도는 넣어도 되지 않아?”

란이 바로 빼낸다.

“안 돼. 여기 눌렸어.”

“먹는 데 문제없는데.”

“상품인데.”

“아깝잖아.”

란은 대꾸하지 않는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파프리카는 따로 담는다.

일부는 집에서 먹고 일부는 이웃에게 나눠준다.

란은 물건을 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출하품에 섞는 것은 더 싫다.

자기가 만든 것이 ‘이 정도면 됐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

오전 8시 42분

농협 직원이 트럭으로 물량을 가지러 온다.

직원은 란보다 어리다.

상자를 확인하며 말한다.

“사모님, 오늘 물건 좋네요.”

란은 웃는다.

“사모님 아니고 김란이에요.”

직원도 웃는다.

“아, 네. 김란 사장님.”

남편이 옆에서 장난스럽게 말한다.

“사장님은 난데?”

란이 말한다.

“그럼 내가 직원이야?”

셋이 웃는다.

사소한 대화다.

하지만 란은 ‘사모님’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농사를 같이 지었는데도 농장 주인은 남편이고 자신은 그 옆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세금이나 행정서류 때문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도 남편에게

“당신이 한국 사람이니까 당신이 해.”

라고 말한다.

그 순간에는 자기 역할을 스스로 줄인다.

란은 그 모순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편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13분

지역 다문화가족센터에서 전화가 온다.

“김란 선생님, 다음 주 새로 오신 베트남 분 통역 한번 가능하세요?”

란은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온 지 21년이 됐다.

처음 몇 년 동안 비슷한 부탁을 많이 받았다.

요즘은 줄었다.

란이 묻는다.

“무슨 통역인데요?”

“아이 학교 상담이요. 한 시간 정도요.”

“몇 시예요?”

“화요일 두 시요.”

란은 그 시간에 병원 예약이 있다.

잠깐 생각한다.

“저 그날 안 돼요.”

직원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러세요?”

“네.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

전화를 끊고 약간 마음이 쓰인다.

21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자신도 학교와 병원에서 누가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부탁을 받을 때마다 모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피곤하다.

란은 스스로에게 말한다.

센터 직원도 있는데 알아서 하겠지.

오전 11시 37분

란의 어머니에게 영상통화가 온다.

베트남 남부에 사는 어머니는 70대다.

화면 뒤로 선풍기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가 베트남어로 묻는다.

“잘 지내니?”

란도 베트남어로 대답한다.

처음 몇 분은 자연스럽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친척의 병원비 이야기를 한다.

란은 대충 무슨 흐름인지 안다.

돈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가 직접 요구하지는 않는다.

“걔네도 형편이 어려워서 걱정이다.”

란은 말한다.

“엄마도 너무 신경 쓰지 마.”

대화를 마친 뒤 휴대전화 송금 앱을 연다.

금액을 입력하다 멈춘다.

이번 달에는 딸 기숙사비와 농기계 수리비가 겹쳤다.

앱을 닫는다.

10분 뒤 다시 열어 평소보다 적은 금액을 보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해서 보낸 것처럼 남겨두고 싶다.

오후 12시 49분

남편과 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남편이 묻는다.

“장모님 전화 왔어?”

“응.”

“또 돈 얘기?”

란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돈 달라고 안 했어.”

“그냥 물어본 거야.”

란은 조금 날카롭게 말한다.

“그러니까 안 했다고.”

남편은 더 묻지 않는다.

란은 잠시 뒤 후회한다.

남편이 송금을 막은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초기에는 먼저 보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친정 돈 문제가 나오면 란은 종종 남편이 자신을 ‘계속 외국에 돈 보내는 사람’으로 볼까 봐 먼저 방어한다.

남편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후 2시 26분

읍내 병원에 간다.

접수 직원이 란의 이름을 보고 묻는다.

“외국인 등록증 있으세요?”

란은 주민등록증을 꺼낸다.

“저 한국 사람이에요.”

직원이 바로 말한다.

“아, 죄송합니다.”

란은 웃는다.

“괜찮아요.”

정말 별일 아니다.

이런 일은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

하지만 진료실 의사가 지나치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짜증이 난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단어 사이를 길게 끊는다.

란은 평소 속도로 대답한다.

“오른쪽 손목이 몇 주 전부터 아픈데 농사할 때 특히 당겨요.”

의사는 그제야 정상 속도로 말한다.

란은 속으로 생각한다.

얼굴 보고 결정하지 말고 말 한번 들어보고 하지.

그러면서 자신도 한국어가 서툰 다른 외국인을 만나면 본인도 모르게 천천히 말할 때가 있다는 사실은 떠올리지 않는다.

오후 4시 04분

마트에 들른다.

계산대 앞에서 베트남산 쌀국수 면을 발견한다.

한 봉지 집었다가 가격을 본다.

한국에 처음 왔던 시절에는 이런 제품을 구하려면 큰 도시까지 가거나 국제식품점에 가야 했다.

지금은 동네 마트에도 있다.

란은 두 봉지를 산다.

계산원이 말한다.

“이거 맛있어요?”

란이 웃는다.

“저도 몰라요. 처음 사요.”

계산원이 당황하며 같이 웃는다.

란은 차에 타서 혼자 웃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가끔 자신이 베트남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란은 한국식 된장찌개를 훨씬 자주 만든다.

오후 5시 31분

고등학생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나 오늘 친구 집에서 자도 돼?”

“누구 집?”

“준혁이.”

“부모님 계셔?”

“엄마…”

“있어, 없어?”

“있어.”

란은 허락한다.

아들이 말한다.

“고마워.”

통화를 끊은 뒤 남편에게 말한다.

“준혁이 집에서 잔대.”

남편이 묻는다.

“누군데?”

란은 대답한다.

“같은 반 친구.”

남편이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란은 잠깐 생각한다.

자신이 아들 친구 부모를 거의 모른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자신이 자랄 때는 누구 집 아이인지 마을 전체가 알았다.

하지만 그 시절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생활이 없었던 것도 싫었다.

그런데 자기 아들에게 사생활이 생기자 조금 불안하다.

오후 7시 18분

남편과 저녁을 먹는다.

두 사람뿐이라 간단히 먹기로 했는데 반찬이 여섯 가지다.

남편이 말한다.

“둘이 먹는데 뭘 이렇게 많이 꺼내.”

“냉장고에 있으니까 먹지.”

“설거지도 당신이 하잖아.”

란이 말한다.

“내가 한다는데.”

조금 뒤 설거지를 하다가 허리가 뻐근하다.

순간 남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에도 비슷하게 차릴 가능성이 높다.

란에게 밥상이 허술하면 생활 전체가 허술해진 느낌이 든다.

오후 8시 46분

교회 단체 채팅방에 다음 주 음식 봉사 공지가 올라온다.

란은 천주교 신자는 아니고 지역의 작은 개신교회에 다닌다.

한국에 온 초기부터 다닌 곳이다.

교회는 처음 한국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많았던 장소 중 하나였다.

메시지를 읽고도 대답하지 않는다.

이번 주말은 일하고 싶지 않다.

몇 분 뒤 권사님이 개인 메시지를 보낸다.

란 집사님 이번에도 월남쌈 해주실 수 있죠? 다들 좋아하던데^^

란은 화면을 본다.

월남쌈은 베트남에서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도 아니다.

한국에 와서 더 많이 만들었다.

잠시 후 답한다.

이번에는 다른 음식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잡채 해갈게요.

상대방은 곧바로 답한다.

잡채도 좋죠^^

란은 예상보다 기분이 좋아진다.

거절이라기보다는 아주 작은 수정일 뿐이다.

그런데 자기 역할을 자기가 정했다는 느낌이 든다.

밤 10시 22분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다.

딸에게 메시지가 온다.

엄마 내일 2시 버스 타.

란이 답한다.

뭐 먹고 싶어?

딸이 답한다.

아무거나. 제발 많이 하지마.

란은 웃는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한다.

닭볶음탕.

딸이 좋아하는 전.

쌀국수도 한번 해볼 수 있다.

많이 하지 말라며.

생각하면서도 세 가지를 모두 머릿속에 올려둔다.

잠들기 전 란은 자신이 한국 사람인지 베트남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일 딸이 오고, 파프리카 일부를 다시 선별해야 하고, 교회에 잡채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가 더 현실적인 문제다.

다만 누군가 그에게

“어느 나라가 더 고향 같아요?”

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사람의 일생

베트남에서의 유년기

란은 1982년 베트남 껀터 인근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작은 농사와 장사를 병행했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 특별히 가난한 집도 아니었다.

란은 어려서부터 손이 빨랐다.

장을 보러 가거나 동생들을 챙기는 일을 자주 맡았다.

가족은 개인의 선택보다 서로 돕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란은 가족 중심적인 사람이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꽤 좋아했다.

동생들이 자기 물건을 함부로 쓰면 크게 화냈다.

“가족인데 뭘 그러냐.”

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더 화가 났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고등학교를 마친 뒤 작은 업체에서 사무보조 일을 했다.

대학에 갈 수도 있었지만 가족 형편과 자신의 성적을 고려해 취업했다.

21세 무렵 지인의 소개를 통해 한국 남성과 연락을 시작했다.

현재 남편이었다.

두 사람이 결혼을 결정한 데에는 현실적인 요소도 있었다.

남편은 농촌에서 함께 살 배우자를 찾고 있었고, 란 역시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는 것과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단순히 조건만 보고 결혼한 관계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몇 달 동안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았고 서로의 차분한 성격이 잘 맞았다.

한국 생활 초기

2003년 한국에 왔다.

처음 몇 년은 언어 때문에 가장 피곤했다.

한국어를 전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면 따라가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얘가 이걸 알아듣나?”

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그 경험 때문에 란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데 오히려 조심스러워졌다.

몰라서 질문하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볼 것 같았다.

반대로 한번 익힌 일은 남보다 더 확실하게 하려는 경향도 생겼다.

농사일은 비교적 빨리 익혔다.

농촌 생활 자체는 베트남에서도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농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과 언어의 미세한 차이였다.

30대

두 자녀를 키우며 한국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귀화시험을 준비했고 국적을 취득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학부모 모임에도 참여했다.

초기에는 자신이 말을 잘못할까 봐 조용히 있었다.

몇 년이 지나면서 먼저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어 꿈을 꾸는 날도 많아졌다.

동시에 베트남 가족과 통화할 때 적절한 베트남어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 순간도 생겼다.

그럴 때면 스스로 조금 우스웠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사람이고 베트남에 가면

“너 이제 한국 사람 다 됐다.”

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소속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문제를 매일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40대

현재 란은 남편과 함께 약 20년째 농사를 짓는다.

부부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농지 일부를 소유하고 있고 농기계 대출도 거의 갚았다.

자녀 교육비와 농장 유지비 때문에 여전히 돈을 조심스럽게 쓴다.

친정에는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돈을 보낸다.

란은 한국 생활에 익숙하다.

한국 정치 이야기도 하고, 김장철을 귀찮아하며, 지역 사람들의 성격을 평가하기도 한다.

동시에 자신이 외국 출신이라는 사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이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유용하며, 어떤 날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란의 하루에는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란은 하루 종일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에는 농산물 가격, 자녀, 손목 통증, 반찬처럼 아주 평범한 것을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 특정 상황에서만 갑자기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병원 직원이 외국인등록증을 요구했을 때 란은 즉시

“저 한국 사람이에요.”

라고 말했다.

이 반응에는 단순한 국적 확인 이상의 감정이 있다.

20년 넘게 살아온 곳에서 아직도 설명이 필요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데서 오는 피로다.

하지만 농협 행정이나 복잡한 서류가 생기면 란은 남편에게

“당신이 한국 사람이니까 해.”

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이 불편할 때는 경계를 지우고 싶고, 귀찮을 때는 그 경계를 활용한다.

그것은 위선이라기보다 사람이 상황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다르게 사용하는 모습에 가깝다.

교회에서 월남쌈을 부탁받은 장면도 비슷하다.

주변 사람들은 좋은 의도로 부탁했다.

란도 그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오랫동안 ‘베트남에서 온 란’이라는 역할을 맡다 보면 자신이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공간이 좁아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잡채를 하겠다고 했다.

아주 사소한 선택이다.

하지만 란에게는

“내가 무엇을 가져올지는 내가 정한다.”

는 감각이 있었다.

친정 송금 문제에서는 또 다른 모순이 나타난다.

란은 가족을 돕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머니가 직접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아도 상황을 듣고 보내준다.

동시에 자신이 가족에게 끝없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싫다.

그래서 돈을 보내면서도

“내가 원해서 보낸 것”

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 실제 경험과 현재 자신의 예상이 섞여 있다.

란에게 소속감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베트남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한국 교회에서 잡채를 만들며,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가 친구 집에서 자는 것을 걱정한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자기 삶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두 문화 사이에 끼인 장소라기보다 여러 규칙을 상황마다 읽어야 하는 장소에 조금 더 가깝다.

그리고 20년 넘게 그것을 해온 덕분에 란은 상당히 능숙하다.

다만 능숙하다는 것은 피곤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한 사람이 한국 사회에 완전히 익숙해졌다고 해서 자신의 출신 배경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평소에는 거의 의식하지 않다가 특정 상황에서만 그 정체성이 갑자기 중요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2. 누군가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의도로 계속 그 문화와 관련된 역할을 부탁한다면, 그 사람은 언제부터 부담을 느낄까?

좋은 의도와 상대가 실제로 경험하는 피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3. 가족에게 자발적으로 돈과 시간을 쓰면서도 가족의 의무에 묶여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사랑해서 하는 행동과 ‘해야 한다’는 압박은 한 사람 안에서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될까?

전남 해남의 비닐하우스에서 시설채소를 재배하는 농업인 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