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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2

아딜 라만, 61세, 독재정권의 검열기관에서 17년 동안 무엇이 국민에게 보이고 사라질지를 결정하다 망명한 전직 고위 관료

by 마음 탐구소 2026. 8. 15.

1. 현재의 삶

아딜은 현재 북유럽의 한 중소도시에서 아내와 살고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방 세 개짜리 평범한 임대주택이다. 과거에는 운전기사가 있었고 정부기관 경비원이 집 앞을 지켰지만, 지금은 장을 보기 위해 직접 버스를 탄다.

공식적으로 그는 은퇴한 번역가다.

실제로는 대학이나 인권단체의 요청을 받아 자신이 몸담았던 정권의 선전·검열 구조를 설명하는 비공개 세미나에 가끔 참석한다.

아딜은 군인도 고문기술자도 아니었다.

사람을 직접 체포한 적도 거의 없다.

그러나 그가 서명한 서류 때문에 신문기사가 사라졌고, 영화가 상영금지됐으며, 작가가 출판하지 못했고, 어떤 사건은 국민에게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됐다.

그가 맡았던 부서에는 하루에도 수백 건의 보고가 올라왔다.

어떤 시위 사진을 내보낼 것인가.

사망자 숫자를 공개할 것인가.

경제위기를 어떤 단어로 표현할 것인가.

정부 지도자의 건강 이상을 보도할 것인가.

아딜은 이런 것들을 결정했다.

현재 그의 일상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다.

매일 새벽 5시쯤 일어나 국제뉴스를 읽는다.

신문 하나만 읽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다룬 여러 나라의 기사와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매체를 일부러 비교한다.

하나의 기사만 읽으면 불안해진다.

아내는 때때로 묻는다.

“이제 아무도 당신에게 보고서를 올리지 않는데 왜 아직도 그렇게까지 확인해?”

아딜은 대답한다.

“한 문장만 보면 그 문장을 고른 사람이 무엇을 뺐는지 모르잖아.”

그가 현재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안전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족에게 말해야 하는가이다.

성인이 된 두 자녀는 아버지가 정부기관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가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딜은 자신이 과거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옳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과거 검열관이었던 자신이 평생 사용했던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2.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

아딜은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공무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방정부 회계담당자였고 어머니는 중등학교 국어교사였다.

그의 가족은 정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 이야기를 피했다.

아딜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이미 장기집권 정권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지도자의 연설문을 외웠지만 아딜에게 그것은 특별한 신념이라기보다 학교생활의 일부였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과 언론학을 공부했다.

글을 잘 썼고 문장의 미묘한 의미 차이를 빠르게 파악했다.

졸업 후 국영신문에 취직했다.

처음 맡은 일은 기사 교열이었다.

그가 검열 업무와 처음 접촉한 것도 대단한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지방 시위 관련 기사에서 “정부에 항의했다”라는 표현을 “정부에 의견을 전달했다”로 바꾸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딜은 수정했다.

그날 그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신문사는 원래 문장을 다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그는 편집책임자가 됐다.

정부기관 관계자가 어떤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면 이유를 묻지 않고 처리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아딜이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정부가 직접 삭제 지시를 내리기 전에 어떤 표현이 문제가 될지를 미리 알았다.

정권 입장에서 매우 유능한 사람이었다.

36세에 국가정보정책위원회 산하 검열조정 부서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그의 역할이 달라졌다.

기사를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기사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됐다.

초기에는 자신의 일을 사회안정을 위한 것으로 이해했다.

민족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보도를 막는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통제한다.

전쟁 가능성을 높일 정보를 제한한다.

실제로 일부 업무는 그런 성격도 있었다.

문제는 경계가 조금씩 이동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부패 보도도 “사회불안”.

실업률 급등 보도도 “경제적 공황 유발”.

경찰의 과잉진압 영상도 “국가 이미지 훼손”.

점점 정권에 불편한 사실과 사회에 위험한 사실의 구분이 사라졌다.

아딜 역시 이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떠나지 않았다.

높은 급여를 받았다.

가족에게 좋은 집이 제공됐다.

아이들은 좋은 학교에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좋아했다.

50대 초반 정권 내부에서 권력승계 갈등이 발생했다.

아딜이 오랫동안 따르던 상관이 실각했다.

며칠 뒤 그 상관은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아딜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충격적인 것은 다음날이었다.

자신이 직접 수년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회의에서 그 상관을 “국가를 배신한 범죄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딜 역시 침묵했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통제했던 것은 진실이 아니라 허용되는 기억이었구나.”

몇 년 뒤 해외회의 참석 중 가족 일부와 함께 망명을 신청했다.

그 선택은 도덕적 결단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다음 숙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상당히 컸다.

그는 지금도 그것을 인정한다.

3.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세계 인식

진실

아딜은 “진실은 하나다”라는 말을 들으면 불편해한다.

객관적 사실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실은 존재한다고 강하게 믿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을 사실 그 자체로 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촬영한다.

누군가가 선택한다.

누군가가 제목을 붙인다.

누군가가 순서를 정한다.

그리고 어떤 사실은 아예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딜에게 정보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이 문장이 사실인가?”보다 “왜 이 사실이 선택되었고 무엇이 빠졌는가?”

권력

젊은 시절 그는 권력자를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에게 가장 강력한 권력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누군가를 체포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의 존재를 보도하지 않으면 된다.

시위대를 모두 없앨 필요도 없다.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 대다수가 모르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그는 총을 가진 권력만큼 편집권을 가진 권력을 경계한다.

사람

아딜은 사람의 신념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권력 내부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자신의 언어를 바꾸는지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영웅이었던 사람을 오늘 배신자라고 부른다.

친구가 숙청되면 사진을 지운다.

아딜 자신도 그랬다.

따라서 그는 사람을 평가할 때 “무엇을 믿는가”보다 그 믿음 때문에 무엇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본다.

가족

가족은 그에게 가장 강력한 도덕적 약점이었다.

아딜이 정권을 떠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녀였다.

자신이 반항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쫓겨날 수 있었다.

아내가 직장을 잃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다.”

현재 그는 이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안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는 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돈과 특권

아딜은 부자가 아니었지만 권력에 가까운 사람이 누리는 특권을 경험했다.

좋은 병원.

좋은 학교.

구하기 어려운 상품.

신속한 행정절차.

그 과정에서 그는 사회적 불평등이 반드시 은행계좌 숫자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줄을 서야 하는 사람의 차이 역시 권력이다.

실패

그에게 가장 큰 실패는 자신이 틀린 판단을 한 것이 아니다.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시점부터 알고도 계속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그때는 몰랐다”라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

아딜은 어떤 정치체제도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자신이 일했던 정권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정권 내부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 권력구조가 흔들렸다.

그 이후 그는 모든 제도를 임시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4. 밖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행동 1 — 뉴스 기사를 읽을 때 항상 가장 아래부터 확인한다

그는 기사 제목과 첫 문장을 거의 믿지 않는다.

누가 작성했는지, 어떤 자료를 근거로 했는지, 원문이 있는지를 먼저 본다.

밖에서 보면 지나치게 의심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그는 평생 사람들이 제목만 읽도록 만드는 기술을 다뤘다.

그에게 이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정보위생이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극단적으로 가면 아무 정보도 신뢰하지 못하는 냉소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 2 — 자녀가 정치문제로 강한 확신을 말하면 내용보다 확신 자체를 경계한다

자녀는 이것을 아버지의 회피라고 생각한다.

아딜은 극단적 확신이 얼마나 쉽게 이용되는지 봤다.

그래서 “틀릴 가능성은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니?”라고 묻는다.

때로는 유용한 질문이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중요한 문제에 도덕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행동 3 — 자신의 과거를 공개적으로 완전히 고백하지 않는다

일부 사람은 그가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판한다.

그 비판에는 근거가 있다.

아딜 역시 자신이 과거를 선택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증언 때문에 아직 고국에 있는 과거 동료나 친척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고려한다.

그 결과 그는 진실을 숨겼던 사람이 지금도 진실을 일부 숨기는 역설적인 삶을 살고 있다.

5.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 당신의 서명 하나로 총을 쏘지 않고도 수백만 명이 어떤 사건을 모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폭력의 한 형태라고 느끼게 될까?
  •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한 체제에 협력해야 한다면 어느 시점까지 그것을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당신이 잘못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면, 책임은 처음 몰랐던 시점이 아니라 알게 된 뒤에도 계속한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아딜 라만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