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하루
오전 6시 03분
정희는 일어나자마자 커튼부터 연다.
햇빛이 거실 바닥에 길게 들어온다.
아파트는 조용하다.
그녀는 혼자 산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냉장고에 붙어 있는 작은 메모를 확인한다.
화: 엄마 피부과
목: 요양보호사 휴무
금: 수영
오늘은 월요일이다.
특별한 일정은 없어 보이지만 오전 10시에 어머니 집에 갈 예정이다.
정희는 커피를 내리며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언니에게 메시지가 와 있다.
엄마 어젯밤 또 잠 설쳤다더라. 오늘 가면 한번 봐줘.
정희는 답한다.
응.
딱 한 글자다.
메시지를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언니도 가서 보면 되잖아.
바로 이어서 생각한다.
무릎 수술한 사람한테 뭘 바라냐.
화를 냈다가 자신이 직접 취소한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은 갈등이다.
오전 7시 18분
아파트 단지 근처 수영장에 간다.
정희는 8년째 아침 수영을 한다.
레인 끝에서 지인 미숙이 말한다.
“언니 오늘 점심 먹을래?”
정희가 묻는다.
“누구랑?”
“순자랑 셋이.”
정희는 잠깐 머릿속으로 오후 일정을 계산한다.
어머니에게 갔다가 점심시간까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또 어머니?”
“응.”
미숙이 말한다.
“정희 언니도 좀 살아. 다른 형제들도 있잖아.”
정희는 수경을 고쳐 쓰며 웃는다.
“내가 뭐 안 살고 있냐.”
말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평소에도 듣는 이야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더 듣기 싫다.
오전 8시 37분
집에서 아침으로 사과 반쪽과 삶은 달걀을 먹는다.
어머니 집에 가져갈 반찬을 작은 통에 나눠 담는다.
멸치볶음.
애호박볶음.
전날 자신이 먹으려고 만든 것들이다.
정희는 어머니를 위해 특별히 반찬을 만들지는 않으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정했다.
내 생활하면서 같이 챙기는 거지.
그런데 실제로 장을 볼 때는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지를 먼저 보는 경우가 많다.
정희는 그 차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오전 9시 52분
차로 15분 거리의 어머니 아파트에 도착한다.
요양보호사가 문을 연다.
“선생님 오셨어요.”
정희는 여러 번
“저 선생님 아니에요.”
라고 했지만 요양보호사는 간호사 출신인 정희를 계속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엄마.”
어머니가 쳐다본다.
“왔냐?”
“어제 잠 못 잤어?”
“누가 그래.”
“언니가.”
“걔는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정희는 어머니의 발목을 본다.
조금 부어 있다.
손으로 눌러본다.
“어제 많이 걸었어?”
“집에서 뭘 걸어.”
정희는 혈압도 잰다.
어머니가 짜증 난 목소리로 말한다.
“너만 오면 사람 환자 만든다.”
정희의 손이 잠깐 멈춘다.
“아픈 데 있나 보려고 그러지.”
“아픈 데 없어.”
정희는 혈압계를 접는다.
간호사로 37년 일한 사람에게 ‘확인한다’는 것은 돌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어머니에게는 딸이 찾아올 때마다 몸을 검사받는 경험이 될 때가 있다.
오전 11시 06분
어머니가 냉장고에서 오래된 두유를 꺼내 마시려고 한다.
정희가 가져간다.
“이거 날짜 지났잖아.”
“하루밖에 안 지났어.”
“버려.”
“멀쩡한 걸 왜 버려.”
“엄마 배탈 나면 누가 고생해?”
말이 나온 뒤 정희는 잠깐 입을 다문다.
어머니가 대답한다.
“내가 고생하지.”
“엄마만 고생해?”
정희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어머니도 표정이 굳는다.
두유를 싱크대에 놓고 정희가 말한다.
“새 거 사다 놓을게.”
어머니는 말이 없다.
정희는 순간 죄책감이 든다.
그러면서도 두유를 돌려주지는 않는다.
오후 12시 13분
둘이 점심을 먹는다.
어머니가 묻는다.
“너는 아직 사람 안 만나냐?”
정희는 웃는다.
“내가 누구를 만나.”
“혼자 늙으면 안 외롭냐?”
“엄마나 잘 드셔.”
어머니가 말한다.
“내가 죽으면 너 혼자잖아.”
정희가 밥을 씹다 멈춘다.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지.”
“걔들이 너랑 사냐.”
정희는 대답하지 않는다.
결혼하지 않은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은 40년째 비슷하다.
20대에는 짜증이 났다.
40대에는 지겨웠다.
지금은 가끔 다른 방식으로 들린다.
94세의 어머니가 실제로 자신보다 먼저 없어질 미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희는 반찬을 어머니 쪽으로 밀어준다.
“애호박 먹어.”
대화도 같이 밀어낸다.
오후 1시 42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영장 친구 미숙에게 전화가 온다.
“우리 카페 왔어. 올래?”
정희는 시계를 본다.
갈 수 있다.
“어딘데?”
주소를 듣고 방향을 바꾼다.
카페에 도착하자 미숙이 말한다.
“봐, 시간 되잖아.”
정희가 웃는다.
“엄마 밥 먹이고 왔지.”
순자가 묻는다.
“요양원은 생각 없어?”
정희의 표정이 조금 달라진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요양원 간다고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알아.”
정희는 바로 대답한다.
자신도 간호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안다.
괜찮은 시설도 많이 봤다.
가족이 모든 돌봄을 직접 해야 좋은 자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 이야기가 되면 판단 기준이 달라진다.
“조금 더 집에서 계셔도 돼.”
라고 말한다.
누구에게 설명하는 말인지 모호하다.
오후 3시 27분
카페에서 헤어진 뒤 대형서점에 들른다.
여행책 코너에서 포르투갈 여행책을 집는다.
정희는 예전부터 유럽의 작은 도시를 천천히 여행해보고 싶었다.
현직일 때는 시간이 없었다.
퇴직 후에는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어머니의 돌봄 필요가 커졌다.
정희는 책을 15분 정도 본다.
리스본.
포르투.
코임브라.
휴대전화로 10월 항공권까지 검색한다.
비용은 감당할 수 있다.
시간도 있다.
문제는 열흘 동안 누가 어머니를 확인할지다.
언니와 남동생에게 부탁하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예약 버튼까지 가지 않는다.
책은 산다.
오후 5시 08분
집에서 언니에게 전화한다.
“엄마 오늘 괜찮더라.”
“그래?”
“발 좀 붓긴 했어.”
언니가 말한다.
“병원 가야 하나?”
정희는 바로 설명한다.
“그 정도 아니야. 일단 봐.”
언니가 안도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있으니까 다행이다.”
정희는 대답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 말을 들으면 자부심이 있었다.
가족 중 의료지식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
요즘에는 같은 말이 가끔 이렇게 들린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네가 해.
언니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정희는 그것을 안다.
그래도 느낌은 남는다.
오후 6시 31분
혼자 저녁을 먹는다.
TV에서 여행 프로그램이 나온다.
정희는 포르투갈 장면이 나오자 웃는다.
“오늘 왜 자꾸 이래.”
혼잣말이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려다 다시 넣는다.
저녁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올 수도 있다.
술 한 캔 때문에 통화를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그렇다.
대신 탄산수를 마신다.
오후 8시 02분
남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누나, 엄마 좀 어때?”
“괜찮아.”
“나 이번 주 토요일에 가려고.”
정희는 조금 놀란다.
“왜?”
“왜긴 왜야. 엄마 보러 가지.”
“애들하고?”
“나 혼자.”
정희가 말한다.
“그러면 점심 같이 먹어.”
남동생이 대답한다.
“누나도 와?”
정희가 웃는다.
“내가 왜 가. 너 혼자 엄마랑 먹어.”
말하고 나서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토요일 오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영화.
목욕탕.
아무것도 안 하기.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오후 9시 46분
책상에서 포르투갈 여행책을 펼친다.
열흘 일정 예시를 본다.
다시 항공권을 검색한다.
이번에는 가격까지 적어둔다.
그리고 가족 단체방을 연다.
나 10월에 열흘 정도 여행 갔다 올까 하는데 그때 엄마 일정 좀 나눌 수 있나?
문장을 쓴다.
보내지 않는다.
다시 읽는다.
‘나눌 수 있나’라는 표현이 부탁처럼 느껴진다.
정희는 지운다.
다시 쓴다.
나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여행 생각 중이야. 그 기간 엄마 일정은 셋이 나눠서 맞춰보자.
이번에도 전송하지 않는다.
결국 화면을 끈다.
항공권부터 보고 이야기하지 뭐.
밤 11시 07분
침대에 눕는다.
어머니에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정희는 이상하게 조금 섭섭하다.
낮에는 자신을 환자 만든다고 화내더니 밤에는 전화도 없다.
곧 스스로 웃는다.
전화 오면 귀찮다고 할 거면서.
그녀는 내일 일정표를 본다.
오전 치과.
오후 자유.
수요일에는 어머니 피부과 예약을 잡아줄 생각이다.
잠들기 전에 여행책을 다시 한번 본다.
정희는 자신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친구도 만나고 수영도 하고 돈도 자신이 쓴다.
그런데 자신의 자유를 계획할 때는 언제나 어머니의 일정이 먼저 화면에 뜬다.
그 사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책임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어떤 날에는 둘 다 아니다.
그냥 너무 오래 해온 습관처럼 느껴진다.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문정희는 1958년 전남 나주에서 2녀 1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작은 논밭과 살림을 맡았다.
정희는 어려서부터 몸이 튼튼하고 손이 빨랐다.
언니는 조용하고 책을 좋아했고 남동생은 집안의 막내였다.
어머니는 정희에게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
그 말은 칭찬이었고 실제로 정희도 일을 맡으면 빠르게 해냈다.
가끔은 언니보다 자기가 더 많이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더 잘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간호사가 되기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간호교육을 받고 병원에 취업했다.
당시 여성에게 안정적인 전문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처음부터 사람을 돌보는 데 특별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피를 크게 무서워하지 않고, 몸 상태를 관찰하고, 정해진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다.
병원에서는 능력이 눈에 보였다.
상황이 급할수록 정희는 오히려 침착해졌다.
선배들은
“문 간호사는 맡겨놓으면 된다.”
고 말했다.
정희는 그 평가를 좋아했다.
20대와 30대
연애는 몇 번 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간 관계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 남성과는 상대 부모가 간호사의 교대근무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 갈등이 됐다.
다른 관계에서는 정희 자신이 결혼 후 직장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희는 이후
“나는 결혼 체질이 아닌가 봐.”
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자조도 있었고 실제 만족도 있었다.
30대 중반을 지나면서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이 줄었다.
부모는 계속 걱정했지만 직장과 친구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상이 크게 외롭지는 않았다.
40대와 50대
경력이 쌓이며 책임간호사 역할을 맡았다.
후배들에게는 깐깐하지만 일을 잘 가르치는 선배로 평가받았다.
환자 가족이 의료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단호하게 말하는 편이었다.
“가족이 모든 것을 직접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보호자도 쉬셔야 합니다.”
수십 년 동안 이런 말을 여러 사람에게 했다.
부모도 나이가 들었다.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혼자 살았다.
세 형제가 번갈아 살폈지만 의료 관련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희에게 몰렸다.
누구도 공식적으로 정한 것은 아니다.
병원 예약.
약 확인.
검사 결과 설명.
이런 일은 정희가 가장 잘했다.
은퇴 이후
정희는 62세에 일을 그만뒀다.
퇴직 초기에는 생활이 좋았다.
수영을 시작했고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다.
오랫동안 갖지 못했던 평일 낮 시간이 특히 좋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의 일상생활에 조금씩 도움이 필요해졌다.
처음에는 병원에 동행하는 정도였다.
이후 장보기와 약 관리, 요양보호사 일정 확인까지 늘었다.
언니는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고 남동생은 직장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있는 날이 많았다.
결국 정희가 가장 자주 어머니를 보게 됐다.
정희는 이것을 가족이 자신에게 떠넘겼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편이 실제로 편하다.
병원 설명도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작은 변화도 빨리 알아챈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도 어렵다.
현재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퇴직연금과 저축이 있고 본인 명의 아파트가 있다.
자녀의 교육비나 결혼비용도 없다.
시간과 돈만 본다면 여행을 다니며 살기에 상당히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94세 어머니의 생활은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희는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살지 계산하지 않는다.
그런 계산 자체가 불경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 다른 날에는
나는 몇 살부터 내 마음대로 살아보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이 떠오르면 곧 죄책감이 따라온다.
자신이 실제로 자유롭게 산 시간이 적지 않았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정희는 돌봄에 능숙하다.
그리고 바로 그 능숙함 때문에 돌봄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아침 어머니 집에 도착하자 혈압을 재고 발목 부종을 확인했다.
정희에게 이것은 사랑을 표현하려고 특별히 선택한 행동이라기보다 거의 자동적인 행동이다.
37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이상 징후를 먼저 발견하는 사람”
이 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딸이 찾아올 때마다 자신의 몸을 점검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너만 오면 사람 환자 만든다.”
고 말했다.
이 말에 정희가 상처받은 이유도 단순하다.
자신은 귀찮아서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지키려고 하는데, 그 행동이 간섭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유를 버리는 장면을 보면 어머니의 불편함도 이해할 수 있다.
정희는
“배탈 나면 누가 고생해?”
라고 말했다.
이 문장에는 여러 층이 있다.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
실제로 문제가 생기면 돌봄이 늘어난다는 현실적인 계산.
간호사로서 예방 가능한 문제를 방치하기 싫은 태도.
그리고 자신의 말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상대가 따라야 한다는 생각.
모두 동시에 존재한다.
정희는 좋은 딸이면서 때로는 통제적이다.
그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카페에서 친구가 요양원을 이야기했을 때 정희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정희 자신은 평생 환자 보호자들에게
“가족이 모든 돌봄을 직접 할 필요는 없다.”
고 말해왔다.
즉 지식이 없어서 시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가족에게 적용할 때는 합리적이었던 원칙이 자기 가족에게 오면 감정의 무게가 달라진다.
여기에는 죄책감도 있고 어머니의 성향에 대한 실제 지식도 있다.
또 하나는 자신이 아니면 제대로 안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에는 상당한 사실이 들어 있다.
정희가 의료적인 부분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더 강력한 덫이 되기도 한다.
언니가
“네가 있으니까 다행이다.”
라고 했을 때 정희가 불편했던 이유다.
인정받아서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평생 ‘맡겨놓으면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평가가 책임의 연장을 의미할 수 있다.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온 능력이 동시에 자신을 묶는다.
여행 문제에서 정희는 가족에게 부탁하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안다.
동생도 먼저 토요일에 어머니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즉 객관적으로 정희만 돌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가족 단체방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행을 가려면 다른 사람이 자기 역할을 대신해야 하고, 그 순간 정희는 처음으로
“나는 엄마보다 내 계획을 우선하겠다.”
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열흘의 여행일 뿐이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훨씬 큰 의미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정희가 어머니의 전화를 귀찮아하면서도 밤에 전화가 없자 섭섭해했다는 점이다.
돌봄은 부담인 동시에 관계의 형태다.
어머니에게 필요로 되는 것이 힘들지만, 어느 날 정말 필요 없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상실이 될 것이다.
정희가 그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그녀에게 세상은
“이제 내 시간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 시기”와 “지금 내가 아니면 언제 부모를 돌보겠느냐는 시기”가 겹쳐 있는 장소다.
둘 중 하나가 거짓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선택이 어렵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다른 사람에게는 “당신의 삶도 중요하다”고 쉽게 조언하면서 자기 가족을 돌볼 때는 그 말을 적용하지 못할 수 있을까?
지식을 갖는 것과 자신의 감정이 걸린 상황에서 그대로 행동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 일일까?
2. 누군가가 가족을 돌보며 불평한다면 그것은 가족을 덜 사랑한다는 의미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면서 동시에 그 사람 때문에 자유를 잃는다고 느끼는 두 마음이 함께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3. 당신이 정희라면 포르투갈 여행을 예약할 수 있을까?
가족이 실제로 당신 없이도 열흘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울 가능성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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