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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임선영, 49세, 대전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재혼 여성

by 마음 탐구소 2026. 8. 14.

현재의 하루

오전 5시 49분

선영은 알람을 끄고 바로 일어난다.

침대 옆 남편 동수는 코를 골며 잔다.

선영은 욕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가까이 본다.

왼쪽 눈 아래가 조금 부었다.

“어제 짜게 먹었나.”

냉장고에서 차가운 숟가락을 꺼내 눈 밑에 댄다.

오늘 오전에는 고객 두 명을 만나고 점심에는 예전 직장 동료 모임이 있다.

화장을 평소보다 조금 오래 한다.

선영은 외모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니 단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온라인으로 본 18만 원짜리 재킷이 떠오른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구매하지 않았다.

옷은 이미 많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에는

그거 하나 있었으면 딱인데.

라는 생각이 든다.

오전 6시 31분

남편이 일어나 주방으로 나온다.

“오늘 어디 가?”

“둔산동 두 군데. 점심 약속.”

“저녁은?”

“몰라. 일찍 올 수도 있고.”

동수가 커피를 마시며 묻는다.

“토요일에 애들 온다던데?”

선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동수에게는 전혼에서 낳은 스물셋 아들과 스무 살 딸이 있다.

선영에게 친자녀는 없다.

두 아이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선영은 묻는다.

“뭐 먹고 싶대?”

“아무거나.”

선영이 웃는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아무거나야.”

동수도 웃는다.

선영은 냉장고 안을 한번 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갈비찜을 할까 생각한다.

곧 스스로에게 말한다.

맨날 내가 잘해줄 필요는 없지.

5분 뒤 메모장에 갈비찜용 고기라고 적는다.

오전 8시 03분

차에 탄다.

선영은 고객 명단을 확인한다.

첫 번째 고객은 7년째 거래하는 60대 여성이다.

두 번째는 지인이 소개해준 신규 고객.

전화를 몇 통 돌린다.

“언니, 잘 지내셨어요?”

“대표님, 지난번 건강검진 하셨어요?”

“아이고, 제가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말투가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선영은 이것을 가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 맞게 말하는 것은 예의라고 생각한다.

한 고객과 전화를 끊고 곧바로 표정이 사라진다.

“말 진짜 길다.”

혼잣말한다.

3분 뒤 그 고객에게 건강검진 예약 링크를 보내준다.

귀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챙길 것은 챙긴다.

오전 9시 27분

고객의 집.

선영은 보장 내용을 설명한다.

고객이 묻는다.

“이거 꼭 바꿔야 돼?”

선영이 말한다.

“꼭은 아니에요. 지금 것도 나쁘지 않아요.”

고객의 딸이 옆에서 묻는다.

“그럼 왜 바꾸라고 하시는 거예요?”

선영은 미소를 유지한다.

“바꾸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설명드리는 거예요.”

대화가 조금 날카로워진다.

선영은 서두르지 않는다.

결국 고객은 기존 보험을 유지하고 특약 하나만 추가하기로 한다.

집을 나오며 선영은 생각한다.

딸이 나를 완전 보험 팔러 온 사람으로 보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보험을 판매하러 왔다.

그런데 자신이 고객에게 불필요한 상품을 억지로 권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싫다.

선영은 스스로를 ‘보험을 파는 사람’보다 ‘사람이 놓친 위험을 정리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둘 사이에는 실제 차이도 있고 자기 이미지를 지키는 설명도 섞여 있다.

오전 11시 14분

두 번째 고객과 카페에서 만난다.

30대 남성이다.

상담이 끝난 뒤 고객이 말한다.

“보험설계사분들은 인맥 진짜 넓으시죠?”

선영이 웃는다.

“먹고살려면 넓어야죠.”

“친한 사람도 많으시겠어요.”

선영은 잠깐 멈춘다.

“뭐, 아는 사람은 많죠.”

‘친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휴대전화 연락처에는 2,800명이 넘게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밤 11시에 아무 이유 없이 전화할 사람을 생각하면 네 명 정도다.

그중 한 명과는 최근 6개월 동안 만나지 못했다.

선영은 이 사실을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나이에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한다.

오후 12시 38분

옛 직장 동료 세 명과 점심을 먹는다.

선영은 20대에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했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미정이 말한다.

“너는 진짜 안 늙는다.”

선영이 바로 웃는다.

“돈을 얼마나 쓰는데.”

셋이 웃는다.

다른 친구가 말한다.

“나는 요즘 그냥 다 귀찮아. 사람 만나는 것도.”

선영이 말한다.

“그러면 더 늙어. 일부러라도 나가야 해.”

미정이 묻는다.

“너는 원래 사람 좋아하잖아.”

선영은

“맞아.”

라고 대답한다.

잠시 후 친구 둘이 자기 자녀 이야기를 한다.

군대.

취업.

연애.

선영은 자연스럽게 질문한다.

“민수 벌써 제대해?”

“수진이는 아직 그 남자 만나?”

대화에 소외된 느낌은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이 말할 가족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최근 남편 딸이 교환학생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딸도 내년에 일본 갈 수도 있대.”

말을 하고 자기 귀에 ‘우리 딸’이라는 표현이 조금 크게 들린다.

친구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후 2시 06분

점심을 마치고 계산대에서 선영이 카드를 꺼낸다.

“내가 할게.”

친구가 막는다.

“맨날 네가 해.”

“됐어. 다음에 해.”

선영이 먼저 결제한다.

13만4천 원.

차에 타자마자 금액이 조금 아깝다.

왜 또 내가 냈지.

그러면서도 누군가 먼저 결제했으면 또 조금 불편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영은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여러 사람 가운데 자신이 계산하는 순간 생기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도 좋고, 다음 약속을 잡을 이유가 생기는 것도 좋다.

그런 마음을 ‘인정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형편이 제일 낫잖아.”

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 사실이다.

오후 3시 48분

사무실에 잠깐 들른다.

동료 설계사 두 명이 신규 고객 이야기를 한다.

후배가 묻는다.

“선배님은 소개 어떻게 그렇게 많이 받아요?”

선영이 말한다.

“계약하고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사람을 계속 봐야지.”

“연락할 말 없을 때는요?”

“없어도 해. 생일 있으면 연락하고 뉴스 있으면 보내고.”

후배가 웃는다.

“저는 그게 너무 어색해요.”

선영은 말한다.

“처음만 그래.”

조언은 정확하다.

선영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한다.

다만 자신이 얼마나 계획적으로 관계를 관리하는지는 친한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사람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오후 5시 23분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너 이번 주 일요일 시간 있니?”

“왜?”

“이모들이 밥 먹는다는데.”

선영의 얼굴이 잠깐 굳는다.

“나 일요일은 좀 쉬고 싶은데.”

“한두 시간인데 뭐.”

“엄마는 한두 시간이지.”

어머니가 말한다.

“사람 좋아하는 애가 뭘 그래.”

선영이 순간 말이 없다.

곧 웃으며

“봐서.”

라고 한다.

통화를 끊는다.

선영은 자신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사람을 좋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혼자 있는 일요일을 보내면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면서도, 약속이 잡히면 또 피곤하다.

오후 6시 47분

마트에 들른다.

갈비찜용 고기를 담는다.

남편의 딸 유나가 좋아하는 과자도 산다.

카트에 넣었다가 다시 생각한다.

스무 살인데 무슨 과자야.

그래도 그대로 둔다.

선영은 두 아이에게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선영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모”라고도 하지 않고 이름 뒤에 ‘아줌마’를 붙이지도 않는다.

그냥

“선영 씨.”

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다.

지금은 편하다.

그런데 가끔 주변 사람이

“그래도 엄마 역할 해야지.”

라고 말하면 반감이 생긴다.

반대로 아이들이 자신을 너무 손님처럼 대하면 서운하다.

원하는 위치가 정확히 무엇인지 자신도 잘 모른다.

오후 8시 12분

집에 돌아오니 동수가 먼저 와 있다.

“고기 샀네?”

“토요일에 애들 온다며.”

“그냥 시켜 먹자.”

선영이 말한다.

“됐어. 내가 할게.”

동수가 웃는다.

“당신 힘들잖아.”

“갈비찜이 뭐가 힘들어.”

말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

사실 갈비찜은 꽤 귀찮다.

하지만 아이들이 와서

“맛있다.”

라고 하는 장면을 이미 조금 상상했다.

그 기대를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좋은 계모가 되고 싶은 욕구라고 생각하면 조금 민망하다.

오후 9시 31분

샤워 후 침대에서 휴대전화를 본다.

메신저 알림이 계속 온다.

고객.

친구.

보험사 단체방.

교회 지인.

한 고객이 보낸

감사합니다 선영님 덕분에 든든해요

라는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곧 답한다.

제가 할 일이죠^^ 편한 밤 보내세요.

그다음 친구 미정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 좋았다 다음엔 니가 사 ㅋㅋ

미정이 바로

당연하지 ㅋㅋ 또 보자

라고 답한다.

선영은 잠깐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집이 조용하다.

동수는 거실에서 TV를 본다.

선영은 오늘 하루 수십 명과 말했는데 지금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딱히 없다.

그 사실이 편한 날도 있고 조금 허전한 날도 있다.

오늘은 어느 쪽인지 애매하다.

밤 11시 02분

동수가 침대에 들어온다.

“자?”

“아니.”

“토요일 애들 오면 영화 볼까?”

“애들한테 물어봐.”

“당신은 뭐 보고 싶은데?”

선영은 잠깐 생각한다.

“나는 아무거나.”

말하고 스스로 웃는다.

아침에 자신이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동수가 묻는다.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니야.”

불을 끈다.

선영은 내일 연락할 고객 다섯 명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그다음 일요일 이모 모임에 갈지 생각한다.

안 가고 싶다.

하지만 아마 갈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선영은 1977년 대전에서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철물점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가게 일을 함께 했다.

집에는 사람이 자주 드나들었다.

동네 손님이 밥을 먹고 가기도 했고 친척 방문도 많았다.

어머니는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누가 오면 과일을 내놓고 식사를 물었다.

선영은 그런 환경에서 대화를 빨리 배웠다.

어른 앞에서도 말을 잘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인사했다.

“선영이는 붙임성이 좋다.”

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칭찬은 선영의 중요한 자기 이미지가 됐다.

학창 시절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한 명의 가장 친한 친구와 깊게 붙어 다니는 유형은 아니었다.

여러 그룹을 오갔다.

친구들끼리 싸우면 양쪽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어떤 친구는

“너는 누구 편인지 모르겠다.”

고 말한 적이 있다.

선영은 자신이 편을 안 드는 것이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돌아보면 갈등에서 명확하게 한쪽을 선택하는 것을 싫어한 면도 있다.

누군가와 관계가 끊어지는 상황을 특히 불편해했다.

20대

대학 진학 대신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취업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잘 맞았다.

고객 얼굴과 구매 제품을 기억하는 능력이 좋았다.

판매실적도 높았다.

20대 후반에 결혼했다.

남편은 회사원이었다.

두 사람은 아이를 원했지만 몇 년 동안 임신이 되지 않았다.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선영은 이 시기를 다른 사람에게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치료 자체보다 주변에서

“아직 애 없어?”

라고 묻는 상황이 더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첫 번째 결혼과 이혼

30대 중반에 부부는 난임치료를 중단했다.

그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부부관계도 점차 멀어졌다.

서로 싸우기보다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

결국 36세에 이혼했다.

선영은 이혼 직후 오히려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주말마다 약속을 만들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우울해.”

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람들과 있을 때 편해졌다.

동시에 혼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라 사람을 찾는 부분도 조금 있었다.

보험설계사로의 전환

백화점 근무를 그만둔 뒤 지인의 권유로 보험설계사가 되었다.

초기에는 거절당하는 것이 힘들었다.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 상품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창피했다.

그러나 기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큰 강점이 됐다.

몇 년 뒤부터 수입도 크게 늘었다.

현재 소득은 월별 편차가 있지만 일반적인 직장인 평균보다 상당히 높다.

자신의 집도 마련했다.

선영은 경제적 독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 결혼이 끝난 뒤 특히 더 그렇다.

재혼

42세에 현재 남편 동수를 만났다.

동수는 이혼 후 두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

선영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에는 재혼을 고민했다.

자신이 엄마 역할을 해야 할까 봐 두려웠다.

동수는

“당신은 당신이면 된다.”

고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과도 시간이 지나며 관계가 만들어졌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럽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을 알고 있다.

선영은 그 애매한 관계를 없애기보다 그대로 두는 편을 택했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선영은 사람을 좋아한다.

이 사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고객의 사소한 정보를 기억하고 친구 생일을 챙기며 약속을 자주 만든다.

그런 행동 상당 부분은 진짜 관심에서 나온다.

그러나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동시에 존재한다.

점심 계산을 자신이 해놓고 나중에 돈이 아까웠던 장면이 그렇다.

선영은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동시에

‘나는 넉넉하고 사람을 챙기는 사람’

이라는 위치도 좋아한다.

누군가 먼저 계산했다면 돈은 아꼈겠지만 자신이 익숙한 역할 하나가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아까우면서도 다시 같은 행동을 한다.

보험설계사라는 직업 역시 선영의 성향과 잘 맞지만 긴장을 만든다.

그녀가 정말 고객을 돕고 싶은 마음과 상품을 판매해 수수료를 얻는 경제적 동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한다.

고객의 딸이 자신을 단순한 판매원으로 보는 것 같을 때 불쾌했던 이유다.

그 평가가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어서 더욱 불편하다.

선영은 자신의 일을 좀 더 좋은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고 실제로 고객을 속이는 사람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뢰가 자신의 장기적인 생계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하다.

연락처는 수천 명이지만 정말 깊은 이야기를 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선영의 인간관계가 가짜인 것은 아니다.

‘넓지만 얕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많고 서로 실제 도움을 주고받는다.

다만 선영은 관계가 깨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불만이나 약한 모습을 깊게 보여주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면서도 소수에게만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재혼가정에서도 선영은 비슷한 전략을 사용한다.

동수의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겠다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좋은 선택이다.

그러나 완전히 거리 두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갈비찜과 좋아하는 과자를 준비하면서

“내가 잘해줄 필요는 없지.”

라고 스스로 말한다.

이미 잘해주고 있으면서 굳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기대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해주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면, 그 사랑이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함께 인정해야 한다.

선영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더 어렵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능력은 선영의 장점이다.

동시에 사람과 관계없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할 기회를 줄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사람 좋아하는 애가 뭘 그래.”

라고 했을 때 짜증이 났다.

자신이 만든 이미지가 이제 다른 사람의 기대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선영이 가끔 정말 원하는 것은 사람을 끊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즐거운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 하루에 조금 더 가깝다.

하지만 막상 그런 하루가 오면 아마 심심하다고 느낄 가능성도 높다.

그 모순까지 포함해서 선영이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사교적인 사람이 항상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정확할까?

어떤 사람이 관계를 잘한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노동까지 기대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2.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는 행동에는 순수한 호의만 있어야 할까?

고마움을 받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섞이면 그 친절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일까?

3. 가족 관계는 반드시 명확한 이름을 가져야 할까?

선영과 남편의 자녀들처럼 ‘엄마도 아니고 남도 아닌 관계’를 억지로 규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대전의 카페에서 고객에게 보험 서류를 설명하는 49세 한국인 보험설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