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하루
오전 7시 26분
진석은 휴대전화 알람을 끄고도 한동안 일어나지 않는다.
원룸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천장 가까이에 빨래 두 장이 걸려 있다.
침대 옆 의자에는 검은 배달용 바지가 놓여 있다.
휴대전화를 켠다.
배달 앱.
은행 앱.
문자메시지.
순서대로 확인한다.
통장 잔액은 84만 3천 원.
이번 주 금요일에 채무조정 상환금 46만 원이 빠져나간다.
그 숫자를 알고 있었는데도 다시 확인한다.
진석은 은행 앱을 닫으며 생각한다.
이번 달도 되긴 되겠네.
‘된다’는 것이 기쁜 건지 겨우 버틴다는 뜻인지는 애매하다.
오전 8시 11분
편의점에서 김밥과 컵라면을 산다.
점원이 묻는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니요.”
배달 가방 안에 넣으면 된다.
계산을 기다리는데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진석을 알아본다.
“어? 오 사장 아니야?”
진석이 돌아본다.
예전에 식당을 할 때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이다.
“형님.”
상대가 진석의 옷과 헬멧을 한번 본다.
그 시선은 1초도 안 된다.
그래도 진석은 알아차린다.
“요즘 이거 해?”
“예. 그냥 잠깐.”
진석은 자동으로 ‘잠깐’이라는 말을 붙인다.
실제로 배달 일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이다.
남자가 말한다.
“그래도 요새 배달도 돈 된다던데.”
진석이 웃는다.
“먹고살 만합니다.”
둘은 간단히 인사하고 헤어진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진석은 기분이 조금 나쁘다.
상대가 무례하게 말한 것은 없다.
오히려 친절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화를 내기도 어렵다.
오전 9시 03분
첫 배달을 잡는다.
아파트 18층.
엘리베이터에서 양복 입은 남자와 둘이 선다.
남자가 휴대전화를 보다가 진석의 가방을 한번 쳐다본다.
별 의미 없는 시선이다.
진석은 괜히 가방 끈을 바로 잡는다.
18층에 도착해 음식을 건넨다.
손님이 문을 조금만 열고 말한다.
“문 앞에 놔주세요.”
“네.”
배달 완료 버튼을 누른다.
진석은 이런 비대면 배달이 편하다.
사람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가끔은 자기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두 감정 중 어느 쪽이 더 큰지는 날마다 다르다.
오전 11시 32분
한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온다.
진석은 카운터 앞에서 12분째 기다리고 있다.
사장이 주방을 향해 소리친다.
“배달 하나 빨리!”
진석이 말한다.
“사장님, 예상시간 지났는데 얼마나 더 걸려요?”
사장이 조금 짜증 난 얼굴로 대답한다.
“아, 지금 하고 있잖아요. 조금만 기다려요.”
순간 진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조금이 몇 분인지 말씀을 해주셔야죠. 기사도 시간으로 돈 버는데.”
사장이 쳐다본다.
“그럼 취소하시든가.”
두 사람 사이가 싸늘해진다.
진석은 말없이 앱을 확인한다.
5분 뒤 음식이 나온다.
가져가면서도 화가 남아 있다.
오토바이에 앉는 순간 다른 생각이 든다.
나도 가게 할 때 기사들 기다리게 한 적 있는데.
곧이어 스스로 반박한다.
그래도 저렇게 말하진 않았지.
정말 그랬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오후 1시 17분
점심시간 피크가 끝난다.
진석은 공원 옆 벤치에서 아침에 산 김밥을 먹는다.
전처에게 메시지가 온다.
소연이 교정 다음 달 시작하기로 했어.
예상 380 정도래.
중학교 3학년인 딸의 치아교정이다.
진석은 한참 화면을 본다.
전처와는 양육비를 월 70만 원씩 보내기로 했다.
교정비는 별도다.
그가 답한다.
반씩 하면 되나?
잠시 뒤 답이 온다.
형편 되는 만큼 해. 내가 좀 더 낼게.
진석의 표정이 굳는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싫다.
자신이 돈 없는 사람으로 배려받는 느낌 때문이다.
답장을 쓴다.
반 할게.
전송한다.
그 직후 계산한다.
190만 원.
당장 낼 돈은 없다.
카드로 하면 되지.
그러나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카드 한도도 넉넉하지 않다.
김밥이 갑자기 맛이 없다.
오후 2시 48분
잠시 주문이 뜸하다.
진석은 오토바이 정비소에 들른다.
사장이 브레이크 패드를 보더니 말한다.
“이번 달 안에는 갈아야 돼.”
“얼마예요?”
“앞뒤 하면 16만.”
진석이 말한다.
“조금 더 타면 안 돼요?”
“탈 수는 있는데 비 오면 위험하지.”
진석은 한동안 패드를 본다.
“그럼 해주세요.”
돈이 아깝다.
그러나 브레이크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비를 기다리는 동안 새 오토바이를 구경한다.
예전에 식당을 운영할 때는 4천만 원짜리 SUV를 탔다.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팔았다.
지금은 그 차가 특별히 그립지 않다.
다만 가끔 누군가
“차 뭐 타세요?”
라고 물으면 대답하기 싫다.
오후 4시 12분
딸에게 전화가 온다.
“아빠.”
“어.”
“엄마가 교정 얘기했어?”
“했지.”
“비싸면 나 안 해도 돼.”
진석은 즉시 말한다.
“돈 걱정을 네가 왜 해.”
“엄마가 비싸다 해서.”
“아빠가 해줄게. 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말하고 나니 가슴이 조금 뻐근하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아직 모른다.
딸이 묻는다.
“아빠 요즘 일 많아?”
“엄청 많지.”
“안 힘들어?”
“뭐가 힘들어.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게 일인데.”
딸이 웃는다.
“나도 오토바이 태워줘.”
“절대 안 돼.”
통화를 끊고 나서 진석은 30초 정도 가만히 앉아 있다.
딸에게 거짓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돈을 마련할 생각이다.
다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6시 23분
저녁 배달이 몰린다.
진석은 세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한 아파트 경비원이 출입구를 잘못 들어왔다며 오토바이를 빼라고 한다.
“여기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진석이 말한다.
“배달인데 잠깐만 세울게요.”
“그래도 규정이 있어요.”
진석은 짜증을 낸다.
“아저씨, 진짜 3분이면 돼요.”
말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전에 자기 말투를 떠올린다.
아저씨도 일하는 건데.
그러면서도
배달기사만 보면 왜 다들 이래.
라는 생각도 든다.
둘 다 진짜다.
오후 9시 17분
하루 정산을 확인한다.
21만 8천 원.
기름값과 수수료를 빼면 실제 수입은 더 적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날이다.
진석은 혼자 돼지국밥집에 들어간다.
8천5백 원짜리 국밥을 주문한다.
옆 테이블에는 양복 입은 남자 네 명이 회식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크게 말한다.
“내가 그때 장사한다고 회사 때려친 게 인생 최대 실수였다니까.”
다른 사람들이 웃는다.
진석도 우연히 웃을 뻔한다.
그 이야기가 자기 이야기 같아서가 아니라, 너무 쉽게 결론 내리는 말처럼 들려서다.
장사가 잘됐으면 저런 말 안 했겠지.
그러면서 자신도 사업 실패 이후
“내가 그때 가게만 안 늘렸으면.”
이라는 말을 수십 번 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후 10시 36분
원룸에 돌아온다.
배달복을 벗고 샤워한다.
냉장고 위에는 작은 액자가 하나 있다.
딸이 초등학생 때 함께 찍은 사진이다.
전처와는 5년 전에 이혼했다.
두 사람은 가끔 딸 문제로 연락하지만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진석은 전처가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자신이 결혼생활에서 사실상 먼저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가게가 어려워지던 몇 년 동안 그는 집에서도 거의 매출 이야기만 했다.
지금은 그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혼의 모든 책임이 사업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너무 간단한 설명이다.
밤 11시 28분
진석은 침대에 누워 중고차 앱을 본다.
구매할 생각은 없다.
예전에 탔던 SUV 모델을 검색한다.
몇 대를 넘겨보다 앱을 끈다.
그다음 배달 앱의 이번 달 누적 수입을 확인한다.
또 은행 앱을 연다.
아침에 봤던 잔액이다.
변한 것은 오늘 수입뿐이다.
잠들기 직전 생각한다.
교정비는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곧 다른 생각이 이어진다.
예전에는 190만 원 가지고 이런 고민 안 했는데.
그 문장은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잠시 후 고쳐 생각한다.
예전에는 빚이 더 많았지.
그 사실에는 묘하게 위로받는다.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오진석은 1979년 대구에서 두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택시기사였고 어머니는 시장에서 작은 반찬가게를 운영했다.
집은 부유하지 않았지만 먹고사는 문제로 큰 위기를 겪는 정도도 아니었다.
진석의 기억 속에서 부모는 늘 일했다.
아버지는 쉬는 날에도 자동차를 손봤고 어머니는 명절 전이면 새벽부터 장사를 했다.
가족 안에서 돈 이야기는 자주 나왔다.
“이번 달 보험료가 많이 나왔다.”
“이번 주 장사가 별로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남한테 손 벌리지 말고 살면 된다.”
는 말을 자주 했다.
진석은 그 말을 꽤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학창 시절과 20대
공부는 평균 정도였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2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 후 복학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학교가 재미없었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여러 일을 거친 뒤 식자재 납품회사에서 영업을 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데 능숙했다.
손님 이름과 주문습관을 잘 기억했다.
20대 후반에는
“나는 월급쟁이보다 장사가 맞는다.”
고 생각했다.
그 판단에는 실제 적성도 있었고, 사장을 상대하면서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30대와 자영업
32세에 작은 고깃집을 열었다.
첫 가게는 잘됐다.
진석은 하루 열두 시간을 일했지만 힘든 것보다 재미있는 것이 컸다.
직원을 뽑고 매출을 계산하고 손님이 줄 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몇 년 뒤 두 번째 가게를 열었다.
이때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임차료, 인건비, 대출, 직원 문제까지 관리해야 할 것이 늘었다.
매출은 있었지만 돈이 남지 않았다.
진석은 문제가 생길수록 더 크게 움직였다.
광고비를 늘렸고 메뉴를 바꿨고 추가 대출도 받았다.
당시에는 물러나면 진짜 실패라고 생각했다.
결혼생활과 사업 악화
결혼생활 초반에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딸이 태어났고 진석은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생활을 제공하고 싶어 했다.
사업이 잘되던 시기에는 가족여행도 자주 갔다.
하지만 가게가 어려워지자 집에서도 계속 전화받고 매출을 확인했다.
전처가
“당신은 집에 와도 가게에 있어.”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석은 당시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억울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했지만, 가족이 원한 것이 오직 더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 사실은 훨씬 나중에 생각하게 됐다.
40대 초반, 폐업
두 번째 가게부터 정리했고 이후 첫 가게도 닫았다.
남은 것은 상당한 부채였다.
사업을 접은 뒤 몇 달은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가게 잘돼?”
라고 물었다.
이제는 같은 질문을 받을까 봐 먼저 피했다.
진석은 자신이 실패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업하다 보면 망할 수도 있지.”
라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혼과 현재
사업 악화와 비슷한 시기에 부부관계도 나빠졌다.
두 사람은 몇 년 동안 버티다가 이혼했다.
딸은 어머니와 살고 있다.
진석은 양육비를 지급하고 한 달에 몇 번 딸을 만난다.
개인채무조정을 시작하면서 부채는 조금씩 줄고 있다.
배달 일을 시작한 것은 당장 현금흐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 조절이 가능하고 일한 만큼 바로 수입이 보인다는 점이 자신과 잘 맞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1년 8개월째 하고 있다.
진석은 앞으로 다시 사업할지 묻는 사람에게
“두 번 다시 안 해.”
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음식점 매물을 지나갈 때 임대료를 계산하는 습관은 아직 남아 있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진석의 하루에는 돈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핵심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 빈곤이라고 보면 충분하지 않다.
그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순간은 돈이 없을 때보다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다른 사람이 인식하는 순간이다.
편의점에서 옛 지인을 만났을 때 진석은 배달 일을
“잠깐”
한다고 말했다.
이 일 자체를 혐오해서는 아니다.
실제로 혼자 움직일 수 있고 일한 만큼 결과가 보이는 점은 좋아한다.
그런데 예전에 자신을 ‘오 사장’이라고 알던 사람에게 지금의 직업을 설명하면 두 시기의 자신이 나란히 놓인다.
진석은 그 비교를 피하고 싶다.
딸의 교정비 문제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나타난다.
전처는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편 되는 만큼 해.”
라고 배려했다.
그런데 그 말이 진석을 불편하게 했다.
왜냐하면 도움의 제안 안에서 현재 자신의 경제상태가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즉시
“반 할게.”
라고 한다.
여기에는 아버지로서 딸에게 해주고 싶은 진짜 마음이 있다.
동시에 예전의 능력을 잃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전처에게 자신이 아직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마음도 조금은 섞여 있을 수 있다.
본인은 주로 첫 번째 이유만 떠올릴 것이다.
낮에 식당 주인에게 화를 낸 장면도 중요하다.
진석은 지금 배달기사의 입장에서 기다림의 비용을 매우 선명하게 느낀다.
그러나 예전 자신도 음식점을 운영하며 비슷한 상황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위선적이라기보다 사람은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불공정을 가장 잘 본다.
과거 가게 주인이던 자신과 지금 기사인 자신은 같은 상황을 다르게 경험한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아저씨, 3분이면 돼요.”
라고 짜증을 낸 뒤 미안함을 느끼는 것도 같은 구조다.
자신이 무시당하는 데 민감하면서 때로는 다른 노동자의 규칙을 귀찮은 장애물처럼 취급한다.
진석은 자신을 ‘바닥에서 다시 시작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 표현에는 자신이 바닥에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정리 중이다.”
라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그 말은 꽤 정확하다.
그의 삶은 실패로 끝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다.
부채를 갚고 있고 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일 일한다.
동시에 과거 자신의 지위를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하는 습관도 남아 있다.
밤에 예전 SUV를 검색하는 것은 단순히 비싼 차가 그리워서라고 보기 어렵다.
그 차를 타던 시절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가 쉬웠다.
가게 사장.
가정을 책임지는 남편.
자동차를 소유할 만큼 버는 사람.
지금은 설명이 조금 더 복잡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진석은
예전에는 빚이 더 많았지.
라고 생각한다.
그 문장은 중요하다.
과거의 성공한 자신만 현재의 기준점으로 삼던 사람이, 아주 조금씩 과거의 실패한 자신과도 현재를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현재는 몰락 이후가 아니라 회복 과정이 된다.
진석도 아직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경제적으로 실패한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실제 돈의 부족일까, 아니면 주변 사람이 자신을 이전과 다르게 볼 것이라는 예상일까?
당신이라면 자신의 생활수준이 크게 떨어졌을 때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2. 진석이 딸의 교정비 절반을 고집하는 것을 책임감이라고 볼까, 자존심이라고 볼까?
혹시 사랑, 책임감, 수치심, 과거의 자기상을 지키려는 마음이 동시에 행동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사업에 실패한 뒤 배달 일을 하는 진석을 ‘내려온 사람’이라고 보는 순간, 우리는 어떤 직업과 어떤 삶에 암묵적인 서열을 매기고 있는 것일까?
그 서열은 누구의 관점에서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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