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하루
오전 9시 47분
민규는 눈을 뜨자마자 시계를 보고 다시 눈을 감는다.
9시 47분.
잠든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었다.
알람은 오전 8시에 세 번 울렸다.
다 끈 기억은 있다.
침대 옆 휴대전화에는 어머니 메시지가 와 있다.
밥 냉장고에 있다. 나간다.
민규는 침대에서 20분 정도 더 누워 있다.
잠이 오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를 본다.
영상 하나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계속 넘긴다.
게임 리뷰.
경제 뉴스.
운동 영상.
취업 관련 쇼츠가 뜨자 바로 넘긴다.
흥미가 없어서라기보다 아침부터 보기 싫다.
오전 10시 23분
방문을 연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버지는 물류회사 관리직으로 출근했고 어머니는 오전에 동네 식당에서 일한다.
민규는 냉장고에서 밥을 꺼낸다.
국을 데우면서 식탁 위 우편물을 본다.
동생 앞으로 온 카드 명세서.
민규의 두 살 어린 여동생은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독립한 지 4년 됐다.
민규는 동생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
가끔 동생이 부모에게 용돈을 보내는 것도 안다.
부럽다기보다 민망하다.
나는 아직 받는데 쟤는 보내네.
곧 스스로 말한다.
직장 다니면 당연한 거지.
국을 먹는다.
오전 11시 08분
노트북을 켠다.
채용 사이트에 접속한다.
오늘 새 공고는 여섯 개다.
민규는 조건을 본다.
전공 무관.
경력 무관.
엑셀 활용 우대.
한 공고를 클릭한다.
직원 수 23명.
연봉 3,100만 원.
집에서 지하철로 50분.
지원하기 버튼 위에 마우스를 올린다.
곧 기업 리뷰 사이트를 연다.
“야근 많음.”
“대표 기분 따라 분위기 달라짐.”
“성장 가능성 없음.”
리뷰가 세 개뿐이다.
민규는 지원하지 않는다.
괜히 들어갔다가 또 나오느니.
자신이 신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원하지 않는 회사의 단점을 찾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오후 12시 36분
대학 친구 재형에게 메시지가 온다.
이번 주 토요일에 애들 부산 내려오는데 볼래?
민규는 메시지를 읽는다.
단체 모임이다.
대학 졸업 후 꾸준히 만났던 친구들이다.
한 명은 결혼했다.
한 명은 공기업에 다닌다.
한 명은 창원에서 자동차 부품회사에 다닌다.
민규는 답장을 쓰지 않는다.
10분 뒤 재형이 다시 보낸다.
너 시간 되잖아ㅋㅋ
민규는 웃는다.
기분 나쁜 말은 아니다.
자신도 예전에는 비슷한 농담을 했다.
그런데 ‘시간 되잖아’라는 말이 걸린다.
답한다.
봐서. 집에 일 있을 수도
집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
오후 1시 17분
샤워를 한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는다.
집에서 공부할 계획이었지만 카페에 가기로 한다.
방에 계속 있으면 부모가 돌아왔을 때 하루 종일 방에 있었던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실제로 거의 그렇지만,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싫다.
가방에 노트북과 문제집을 넣는다.
거울을 본다.
수염을 밀지 않은 것이 신경 쓰인다.
다시 욕실에 가서 면도한다.
누구를 만날 것도 아닌데 옷도 한 번 바꾼다.
밖에 나가면 최소한 하루를 시작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후 2시 02분
카페.
민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다.
5천 원.
결제하면서 잠깐 아깝다고 생각한다.
부모 카드가 아니라 자신의 체크카드다.
통장에는 약 370만 원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1년 반 일하며 모았던 돈과 최근 단기 아르바이트 수입이 남아 있다.
민규는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지만 개인적인 소비는 가능하면 자기 돈을 쓴다.
그것이 마지막 선처럼 느껴진다.
노트북을 켜고 자기소개서를 연다.
저는 맡은 업무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첫 문장을 본다.
지운다.
다시 쓴다.
저는 다양한 상황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또 지운다.
내가 무슨 문제를 분석했지.
예전 회사에서 했던 일을 생각한다.
거래처 관리.
엑셀 정리.
발주.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사실 많은 직장인의 업무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쓰려고 하면 자신의 경험만 유난히 빈약하게 느껴진다.
오후 3시 26분
옆 테이블에 대학생 두 명이 취업 이야기를 한다.
“나는 졸업하자마자 취업 안 할 건데.”
“그럼 뭐 하게?”
“일단 여행.”
민규는 듣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낀다.
몇 년 전 자신도 비슷한 말을 했다.
처음 회사를 그만뒀을 때는
“몇 달 쉬면서 제대로 알아보겠다.”
고 말했다.
그때는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첫 6개월은 여행도 가고 자격증도 준비했다.
그다음부터 시간이 이상해졌다.
한 달 쉬는 사람과 1년 쉬는 사람에게 같은 하루가 주어지는데, 하루의 의미는 점점 달라졌다.
오늘 하루 공부를 조금 못 했다고 해서 내일 달라질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시작하기 어려워졌다.
오후 4시 11분
민규는 지원할 회사 하나를 다시 찾아본다.
이번에는 중견 제조기업의 구매관리직이다.
조건도 나쁘지 않다.
자기 경력과도 어느 정도 맞는다.
지원서 마감은 오늘 밤 11시 59분.
자기소개서 문항은 세 개.
민규가 중얼거린다.
“이건 넣자.”
한 시간 정도 집중해서 쓴다.
글이 생각보다 잘 나온다.
첫 번째 문항을 끝내자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두 번째 문항은 ‘입사 후 목표’다.
커서가 깜빡인다.
갑자기 피곤해진다.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10분만 쉬려다 35분이 지난다.
오후 5시 34분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어디야?”
“카페.”
“공부하나?”
민규는 잠깐 대답을 늦춘다.
“응.”
거짓말은 아니다.
“저녁 먹고 올 거야?”
“집에서 먹지.”
어머니가 말한다.
“오늘 아빠 좀 늦는다.”
민규는 안도한다.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조금 불편해진다.
아버지가 싫은 것은 아니다.
둘이 함께 야구도 보고 대화도 한다.
하지만 저녁에 아버지가
“요즘 어디 지원했냐?”
라고 물을 가능성이 있다.
평범한 질문인데 하루에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은 날에는 심문처럼 들린다.
오후 6시 46분
집에 돌아온다.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다.
“오늘 많이 했어?”
민규가 가방을 내려놓는다.
“뭐 좀 했어.”
“어디 넣었는데?”
“아직 마감 안 됐어.”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더 묻지 않는다.
몇 달 전만 해도
“이번에는 될 것 같아?”
“몇 명 뽑아?”
같은 질문을 많이 했다.
민규가 짜증을 몇 번 낸 뒤 질문이 줄었다.
민규는 그게 편하다.
동시에 부모가 이제 별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부모가 관심을 보이면 부담스럽고, 관심을 줄이면 포기당한 느낌이 든다.
그 모순을 부모에게 설명해본 적은 없다.
오후 7시 29분
어머니와 둘이 저녁을 먹는다.
어머니가 말한다.
“네 동생 다음 달에 휴가 온대.”
“어.”
“제주도 갔다가 여기 온다더라.”
“좋겠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너도 나중에 취직하면 여행 좀 다니고 그래.”
민규가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나 여행 다녀봤어.”
“그런 뜻 아니야.”
“알아.”
대화가 잠깐 끊긴다.
민규는 어머니가 응원하려고 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화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미래의 문장 앞에 ‘취직하면’이 붙는 것이 싫다.
취직하기 전의 현재 자신은 임시 상태처럼 느껴진다.
오후 8시 13분
방으로 들어와 다시 지원서를 연다.
아버지가 퇴근한다.
거실에서 부모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민규는 무의식적으로 이어폰을 낀다.
잠시 뒤 방문을 두드린다.
“민규야.”
“어.”
아버지가 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다.
“밥 먹었나?”
“먹었지.”
“그래.”
그게 끝이다.
아버지는 취업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문이 닫힌 뒤 민규는 오히려 조금 허탈하다.
물어봐도 짜증 날 거면서.
지원서로 돌아간다.
오후 9시 54분
친구 단체방에 토요일 식당이 정해졌다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민규는 참석자 이름을 본다.
다섯 명.
재형이 다시 묻는다.
민규 너 오는 거지?
민규는 이번에는 바로 답한다.
간다
보내고 나서 조금 긴장된다.
친구들이 특별히 자신을 무시한 적은 없다.
오히려 취업 이야기를 피하려고 다른 주제로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그 배려를 알아차리면 더 민망할 때가 있다.
차라리 대놓고 물어보는 것이 낫다고 느끼기도 한다.
오후 10시 47분
지원서 세 번째 문항까지 끝냈다.
민규는 전체를 다시 읽는다.
나쁘지 않다.
제출 버튼을 누른다.
팝업창이 뜬다.
최종 제출하시겠습니까?
갑자기 한 문장이 마음에 걸린다.
창을 닫는다.
수정한다.
다시 제출.
이번에는 경력기술서 파일명이 이상해 보인다.
다시 닫는다.
파일명을 바꾼다.
오후 11시 23분.
민규는 마우스를 잡고 한동안 화면을 본다.
넣는다고 손해 보는 것도 없는데.
자신도 안다.
그런데 제출하는 순간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지원서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가능성이 살아 있다.
제출하면 탈락이라는 구체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오후 11시 31분
민규는 제출 버튼을 누른다.
완료 화면이 뜬다.
아주 작은 안도감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화면을 캡처한다.
누구에게 보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지원 완료 기록을 폴더에 저장한다.
오늘 한 일이 눈에 보이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밤 12시 18분
침대에 눕는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잘 생각이다.
유튜브를 켠다.
추천 영상 사이에
‘31살 무경력도 늦지 않았습니다’
라는 영상이 뜬다.
민규는 제목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무경력은 아닌데.
누르지는 않는다.
10분 뒤 채용사이트를 다시 연다.
자기가 지원한 공고의 지원자 수가 보인다.
238명.
순간 기분이 가라앉는다.
“괜히 봤네.”
휴대전화를 끈다.
잠들기 직전 생각한다.
토요일에 뭐 입지.
몇 달 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오늘 지원한 회사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아 조금 우습다.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민규는 1995년 부산에서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견 물류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어머니는 자녀가 중학생이 된 뒤부터 식당과 마트 일을 번갈아 했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부모는 교육에 관심이 있었지만 성적을 극단적으로 압박하는 편은 아니었다.
민규는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였다.
숙제도 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동생보다 공부를 조금 더 잘했다.
가족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민규는 알아서 한다.”
는 평가를 받았다.
중·고등학교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다.
아주 높은 목표를 가진 학생은 아니었다.
대학에 가고 취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라고 생각했다.
부모도 비슷했다.
민규는 실패 경험이 특별히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큰 성공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해야 할 일을 적당히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이후 중요한 차이를 만들었다.
긴 시간 결과 없이 노력하는 경험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
대학생활
부산의 4년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학점은 평균보다 조금 높았다.
동아리와 아르바이트도 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취업준비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자신보다 훨씬 화려한 이력의 사람들을 많이 봤다.
대기업 몇 곳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그다지 충격은 아니었다.
중소·중견기업에도 지원했고 졸업 후 5개월 만에 전자부품 업체에 취업했다.
첫 직장
구매관리 업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취업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월급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서 업무가 반복적으로 느껴졌다.
상사와 크게 갈등한 것은 아니다.
회사가 심각하게 나쁜 곳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퇴사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민규는
“여기서 5년 뒤에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는 생각을 자주 했다.
1년 7개월 만에 퇴사했다.
부모는 걱정했지만 민규는 자신 있었다.
경력도 있으니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취업 준비
처음 6개월은 적극적이었다.
자격증도 따고 여러 회사에 지원했다.
몇 번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기준이 조금씩 바뀌었다.
너무 작은 회사는 가기 싫었다.
연봉이 이전보다 낮으면 경력 후퇴처럼 느껴졌다.
통근시간이 너무 길어도 싫었다.
모두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조건을 모두 합치면 지원할 회사가 크게 줄었다.
두 번째 해
취업 공백이 1년을 넘기면서 면접에서 퇴사 이후 기간을 묻기 시작했다.
민규는 자격증 준비와 가족 일, 단기 아르바이트를 설명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도 그 시간이 전부 계획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점차 사람 만나는 일이 줄었다.
친구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해야 할 가능성이 싫었다.
처음에는
“요즘 준비 중.”
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었다.
2년이 지나자 같은 말을 반복하기 어려워졌다.
현재
민규는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는 아니다.
몇 달씩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원할 때는 지원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도 한다.
가끔 운동도 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본인도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 날이 있다.
조금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 시간이 3년이 되었다.
부모는 아직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집에서도 나가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안전망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동시에 절박한 변화가 계속 미뤄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민규를 겉에서 보면 쉽게
“눈이 높아서 취업 못 하는 사람”
혹은
“게을러진 취준생”
이라고 볼 수 있다.
둘 다 일부 장면에서는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3년에 걸친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오전 채용공고를 보고 회사의 단점을 빠르게 찾아낸 행동부터 보자.
그 회사 리뷰에는 실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좋지 않은 직장을 피하고 싶은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민규에게 ‘지원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은 한 가지 추가적인 기능을 한다.
지원하지 않으면 탈락하지 않는다.
지원하지 않은 회사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선택하지 않은 곳”
으로 남는다.
반면 지원해서 떨어지면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정보가 생긴다.
처음 몇 번의 탈락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 번의 탈락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피가 생긴다.
그렇다고 민규가 의식적으로
“상처받기 싫으니 지원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회사를 제대로 골라야 한다.”
고 생각한다.
그 생각에는 진짜 신중함과 자기보호가 섞여 있다.
카페에 나간 행동도 그렇다.
집보다 집중이 잘되는 실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부모가 돌아왔을 때 자신이 하루 종일 방에 있었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효과도 있다.
민규는 지금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에게 ‘나는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를 자주 요구한다.
카페.
문제집.
지원완료 캡처.
이것들이 작은 증거가 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는 더 복잡한 모순이 나타난다.
취업 이야기를 물으면 짜증이 난다.
안 물으면 관심이 사라진 것 같아 서운하다.
이것은 변덕이라기보다 질문에 두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디 지원했어?”
라는 질문은
‘우리가 너에게 관심 있다’
라는 뜻이면서,
‘너는 아직 취업하지 못했다’
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말이기도 하다.
민규는 첫 번째는 원하고 두 번째는 피하고 싶다.
친구 관계도 비슷하다.
친구들은 민규를 대놓고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심한다.
그런데 그 조심스러움 자체가 민규에게 자신의 상태가 특별한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친구가 취업 이야기를 물어도 불편하고, 일부러 피하는 것도 불편하다.
장기 실업은 민규의 시간 감각도 바꾸었다.
직장을 다닐 때 월요일과 금요일은 완전히 달랐다.
지금은 하루를 미뤄도 당장 큰 결과가 없다.
오히려 미래의 큰 결과만 존재한다.
취업.
독립.
경력 회복.
목표가 너무 커지면 오늘 자기소개서 한 문장을 쓰는 일이 목표와 잘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 생긴다.
그래서 작은 행동을 시작하기 어려워진다.
밤 11시 31분에 결국 지원서를 제출한 것은 작은 장면이지만 중요하다.
민규는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 아니다.
불안해도 제출했다.
친구 모임에도 간다고 답했다.
이런 행동들이 계속될지 다시 줄어들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민규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가 반드시 더 강한 의지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취업 전의 임시생활과 취업 후의 진짜 생활
로 나누는 사고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지금도 그의 인생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민규 자신은 아직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날이 많다.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민규가 좋은 직장을 골라 지원하려는 것은 합리적인 신중함일까, 실패를 피하기 위한 회피일까?
실제 사람의 행동에서는 두 동기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얼마나 잘 구분할 수 있을까?
2. 장기 실업 상태의 사람에게 “시간 많잖아”라는 말은 왜 예상보다 불편하게 들릴 수 있을까?
시간이 많다는 것과 그 시간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상태일까?
3. 당신이라면 3년 동안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첫해와 똑같은 자신감과 생활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민규의 현재 행동을 그의 첫날부터 존재했던 성격 탓으로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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