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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료실/인간 심리 관찰

남기석, 62세, 남성, 아파트 경비원

by 마음 탐구소 2026. 8. 25.

남기석은 전북 전주의 900세대 규모 아파트에서 4년째 경비원으로 일한다. 24시간 격일제 근무다. 젊은 시절부터 한 직장에서 일한 사람도, 오래 자영업을 한 사람도 아니다. 인쇄공장 기사, 건축자재 영업, 물류센터 관리 등 몇 차례 직업을 바꾸며 살아왔다.

아내와 둘이 오래된 24평 아파트에 산다. 두 딸은 모두 독립했다. 큰딸은 결혼했고 작은딸은 다른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큰 재산은 없지만 현재 사는 집의 대출은 끝났고, 부부가 모아둔 예금과 국민연금이 있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돈보다 조금 다른 곳에 있다.

사람에게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가.

젊었을 때 그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순간과 모른 척해야 하는 순간을 구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누적 기록에서 이미 다룬 장기실업·성공 이후 공허함·자율성과 노화·소속감·직업적 지위 하락 등의 축과 겹침을 줄이고, 아직 충분히 탐색되지 않은 익명성, 무관심과 배려의 경계, 일상 속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중심에 두었다.

1. 현재의 하루

오전 5시 36분

경비실 전기포트가 끓는다.

기석은 종이컵에 믹스커피 하나를 뜯어 넣는다.

야간 근무를 마치기까지 아직 세 시간 정도 남았다.

새벽 3시에서 5시까지 졸음이 가장 심했고, 지금은 오히려 정신이 맑다.

CCTV 모니터에는 비슷한 화면 열두 개가 떠 있다.

지하주차장.

놀이터.

아파트 입구.

분리수거장.

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습관적으로 입구 화면을 본다.

운동복을 입은 50대 남자가 나온다.

'저 양반은 오늘도 나가네.'

어느 동 몇 호인지는 안다.

이름은 모른다.

경비 일을 하면서 사람을 이상한 방식으로 알게 됐다.

이름은 모르지만 몇 시에 출근하는지는 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택배를 얼마나 자주 시키는지는 안다.

부부 사이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느 집에서 심야에 언성이 높아지는지는 안다.

그렇다고 기석은 자신이 주민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많이 보지만 거의 모른다.

오전 6시 12분

한 여성이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경비실 앞을 지나간다.

아이가 먼저 말한다.

“안녕하세요.”

기석이 바로 대답한다.

“어, 학교 가냐?”

아이가 웃는다.

“아직 학교 안 가요. 할머니 집 가요.”

“그래? 잘 갔다 와.”

아이 엄마도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두 사람이 지나간 뒤 기석은 생각한다.

'내가 왜 학교 간다고 했지. 방학인데.'

자기 혼자 피식 웃는다.

조금 뒤 다른 주민이 지나간다.

이번에는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

상대도 하지 않는다.

기석은 별로 서운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누가 인사하고 싶겠어.'

그런데 상대가 완전히 지나간 뒤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따라온다.

'그래도 사람 있는데 고개라도 한번 하지.'

자신도 먼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순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전 6시 48분

인터폰이 울린다.

“경비실이죠?”

여자 목소리다.

“네.”

“104동 앞에 차 하나가 이중주차해놨는데 전화 좀 해주세요. 제가 지금 나가야 돼서.”

기석은 차량번호를 받아 적는다.

차주에게 전화한다.

세 번 울린 뒤 받는다.

잠긴 목소리다.

“여보세요.”

“경비실인데요. 차량 좀 이동해주셔야겠습니다.”

잠시 침묵.

“아, 그거 밀면 되는데요.”

기석이 목소리를 낮춘다.

“주민분이 급하게 나가신다고 해서요.”

“중립 해놨어요.”

“그래도 차주분이 내려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상대의 말투가 조금 달라진다.

“아저씨, 그거 그냥 밀면 된다니까요.”

기석의 얼굴이 굳는다.

경비실에 혼자 있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세운다.

“제가 차량을 임의로 밀 수는 없습니다.”

“참나.”

전화가 끊긴다.

기석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린다.

“나도 참나다.”

화가 난다.

차를 빼기 싫다는 것보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방식이 더 거슬린다.

곧바로 스스로를 말린다.

'뭘 그런 걸 가지고.'

하지만 10분 뒤 차주가 내려오는 모습을 CCTV로 보면서 얼굴을 한번 더 확인한다.

오전 7시 23분

교대할 동료가 온다.

66세의 최씨다.

“별일 없었어요?”

“별일은 무슨.”

기석이 차량 이야기를 해준다.

최씨가 웃는다.

“그런 거 신경 쓰면 여기 못 있어.”

기석도 웃는다.

“그러니까.”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영감이라고 해도 대답해.”

“그건 형님이 진짜 영감이라 그렇지.”

둘이 웃는다.

최씨가 의자를 당겨 앉는다.

기석은 웃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한다.

'저 형도 막상 들으면 기분 나쁠 텐데.'

자기가 유난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말하지 않는다.

오전 8시 04분

퇴근하기 전에 단지 한 바퀴를 돈다.

분리수거장 옆에 커다란 종이상자가 그대로 놓여 있다.

송장이 붙어 있다.

기석은 송장 부분을 뜯어 안쪽으로 접는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박스를 펴서 지정 장소에 넣는다.

그러면서 짜증도 난다.

'이걸 왜 내가 하고 있나.'

바로 다음 생각.

'내버려두면 또 지저분해 보이잖아.'

이런 일이 자주 있다.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

그리고 한 뒤에는 왜 자신만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다음번에 그냥 지나치지도 못한다.

오전 8시 47분

퇴근길 버스에 탄다.

자리는 꽤 비어 있다.

기석은 창가에 앉아 휴대전화로 뉴스를 훑는다.

한 기사 제목을 읽고 댓글을 열었다가 금방 닫는다.

“다들 화가 나 있어.”

혼잣말한다.

앞자리의 젊은 남자가 고개를 조금 돌린다.

기석은 괜히 창밖을 본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서로에게 막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기석 자신도 뉴스를 보면서

'저런 인간은…'

까지 생각할 때가 있다.

다만 댓글로 쓰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기와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은 꽤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전 9시 31분

집에 도착한다.

아내 정숙이 아침을 먹고 있다.

“왔어?”

“응.”

“밥 먹을래?”

“근무지에서 먹었어.”

실제로 먹은 것은 컵라면 반 개와 삶은 달걀 하나다.

아내가 물어본다.

“또 라면 먹었지?”

“아니.”

대답이 너무 빨랐다.

정숙이 쳐다본다.

“컵라면?”

“조금.”

“당신 혈압 있다니까 짠 거 좀 그만 먹으라고.”

기석이 신발을 벗으며 말한다.

“매일 먹는 것도 아니야.”

어제 근무 때도 먹었다.

그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정숙이 잔소리하는 것이 싫으면서도 아무 관심이 없으면 그것대로 섭섭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석도 어렴풋이 안다.

오전 10시 16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휴대전화에 큰딸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다.

아빠 이번 주 일요일 시간 돼?
서우 데리고 갈까?

서우는 여섯 살 외손녀다.

기석은 바로 답하려다가 일정을 확인한다.

일요일은 비번이다.

그래 와. 할머니 좋아하겠다.

보내고 나서 메시지를 다시 본다.

‘나는?’

딸이 자기를 보러 오는 것도 분명 반갑다.

그런데 표현은 “할머니 좋아하겠다”라고 했다.

자기가 보고 싶었다고 직접 쓰는 것은 어색하다.

조금 뒤 딸이 답한다.

아빠는 안 좋아해? ㅋㅋ

기석이 웃는다.

시끄러워서 싫지

보내놓고 또 웃는다.

일요일이 갑자기 기다려진다.

오전 10시 42분

커튼을 친다.

잠이 와야 하는데 아까 차량 차주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아저씨, 밀면 된다니까요.”

기석은 다시 생각한다.

'아저씨가 뭐 틀린 말은 아니지.'

62세니까 누가 봐도 아저씨를 넘어선 나이다.

그런데도 말투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가 다 다른데.'

10분 정도 뒤에는 스스로가 우스워진다.

'다 큰 인간이 그런 거 하나 갖고.'

잠든다.

오후 2시 38분

눈을 뜬다.

세 시간 반쯤 잤다.

몸은 깨어났지만 머리는 아직 무겁다.

거실로 나오자 아내는 없다.

식탁에 메모가 있다.

마트 갔다 옴. 국 데워 먹어.

기석은 냉장고에서 국을 꺼낸다.

전자레인지에 넣으려다가 냄비에 붓는다.

'전자레인지는 맛이 없어.'

그러면서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혼자 밥을 먹는다.

TV에서는 재방송 예능이 나온다.

기석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지만 한편으로는 집이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두 딸이 같이 살았다.

누군가는 욕실을 쓰고,

누군가는 냉장고를 열고,

누군가는 “아빠 리모컨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그때는 조용히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집이 조용해지자 TV를 켜놓는다.

그 사실을 외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집이 너무 조용하면 이상하니까.'

라고 생각한다.

오후 3시 27분

아내가 장을 보고 돌아온다.

기석이 장바구니를 받아 든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일요일에 애들 온다며.”

“벌써 준비해?”

“과일은 있어야지.”

기석이 장바구니에서 복숭아를 꺼낸다.

가격표를 본다.

“이게 만팔천 원이야?”

“요즘 다 그래.”

“너무 비싸다.”

“손녀 먹일 건데 뭘.”

기석은 더 말하지 않는다.

잠시 뒤 복숭아 하나를 들어 상태를 확인한다.

“이건 좀 물렁한데.”

정숙이 말한다.

“당신이 먹어.”

“왜 나는 물렁한 것만 먹어?”

“당신이 아깝다고 버리지도 못하잖아.”

기석이 웃는다.

맞는 말이다.

오후 4시 11분

친구 박동일에게 전화가 온다.

고등학교 동창이다.

“뭐 하냐?”

“놀지.”

“일요일에 등산 갈래?”

기석이 잠시 생각한다.

“애들 온대.”

“딸?”

“응.”

동일이 말한다.

“요즘 자식들이 부모 보러 오는 게 어디냐. 산은 다음에 가자.”

기석은 이상하게 그 말이 조금 거슬린다.

마치 자식이 찾아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하는 노인이 된 것 같다.

“우리 애들은 자주 와.”

실제로 큰딸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온다.

충분히 자주 오는 편이다.

“그래, 좋겠다.”

통화를 끊는다.

기석은 잠시 생각한다.

'쟤는 아들이 부산 있어서 잘 못 보니까.'

조금 전 자신이 괜히 자랑하듯 말한 것 같아 마음이 찜찜하다.

하지만 다시 전화해서 설명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후 5시 03분

기석은 운동 삼아 동네를 걷는다.

횡단보도 앞에서 중학생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신호를 기다린다.

한 명이 빨간불에 건너려 한다.

기석의 입에서 거의 자동으로 말이 나온다.

“야, 차 온다.”

아이가 멈춘다.

기석을 한번 본다.

친구가 웃는다.

“아저씨한테 혼났네.”

두 사람이 신호가 바뀌자 건너간다.

기석은 조금 민망하다.

'내가 왜 남의 애한테 야라고 했지.'

그러면서도 자신이 말을 안 했다가 사고가 났으면 더 찜찜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이 요즘 기석에게 어렵다.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는 것과, 눈앞에서 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같은 것인가.

오후 5시 41분

동네 편의점 앞에서 한 노인이 바닥에 앉아 있다.

술에 취한 것 같다.

기석은 지나친다.

다섯 걸음쯤 걷는다.

멈춘다.

뒤를 돌아본다.

노인은 그대로 있다.

'술 취했겠지.'

다시 걷는다.

이번에는 열 걸음쯤 간다.

결국 돌아온다.

“어르신.”

대답이 없다.

“괜찮으세요?”

노인이 고개를 든다.

“응?”

술 냄새가 난다.

“집 어디세요?”

“저기.”

손가락으로 애매한 방향을 가리킨다.

편의점 직원이 나온다.

“저분 자주 저러세요. 좀 있으면 가세요.”

기석은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약간 허탈하다.

“아, 그래요?”

“네.”

“그러면 뭐…”

기석은 다시 걷는다.

속으로 생각한다.

'괜히 오지랖 부렸네.'

그런데 조금 뒤에는 반대로 생각한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 여부를 굳이 결론 내리지 않는다.

오후 6시 19분

집에 돌아오니 작은딸 소연에게 전화가 온다.

“아빠.”

“왜.”

“그냥 했지.”

“회사 안 갔어?”

“퇴근했어.”

기석은 벽시계를 본다.

“벌써?”

“6시 넘었잖아.”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소연이 최근 팀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맨날 퇴근 직전에 뭐 시켜.”

기석이 말한다.

“회사라는 데가 원래 그렇지.”

소연의 목소리가 조금 식는다.

“아빠는 맨날 원래 그렇대.”

기석은 순간 말을 멈춘다.

“아니, 뭐… 그 사람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됐어.”

“회사 다니면 별 인간 다 있으니까 너무 하나하나 신경 쓰지 말라는 거지.”

“알았어.”

잠시 후 통화를 끝낸다.

기석은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뭐라고 해야 되는데.'

딸이 해결책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그냥 같이 욕해주면 되지.”

“내가 어떻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 욕을 해.”

“그럼 애가 왜 전화했겠어.”

기석은 대답하지 않는다.

오후 7시 08분

저녁을 먹는다.

아내가 묻는다.

“아까 소연이 뭐래?”

“직장 상사가 싫대.”

“왜?”

기석이 설명한다.

정숙은 바로 말한다.

“그런 인간이 제일 싫어. 낮에는 놀다가 퇴근할 때 일시키는 인간.”

기석이 웃는다.

“얼굴도 모르면서 인간이래.”

“내 딸 괴롭히면 인간이지 뭐.”

기석은 웃지만 조금 부럽다.

정숙에게는 이런 판단이 쉽다.

내 편이면 일단 내 편이다.

기석은 그게 때로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딸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오후 8시 32분

기석은 현관문 경첩이 조금 삐걱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공구함을 가져와 윤활제를 뿌린다.

아내가 말한다.

“그냥 놔둬. 뭐 그렇게 거슬린다고.”

“시끄럽잖아.”

“나는 하나도 안 시끄럽던데.”

기석은 문을 세 번 열고 닫는다.

소리가 사라졌다.

만족스럽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고 해결 방법이 분명할 때는 마음이 편하다.

사람 문제는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 기석은 사람보다 고장 난 물건을 다루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쓸 때가 있다.

오후 9시 17분

텔레비전에서 한 다큐멘터리가 나온다.

혼자 사는 노인의 고독사 문제를 다룬다.

아내가 말한다.

“저런 거 보면 무서워.”

기석이 대답한다.

“뭐가.”

“사람이 죽은 지 며칠 지나도록 아무도 모르는 거.”

“우리는 둘이 있잖아.”

“둘 중 하나 먼저 죽으면?”

기석은 리모컨으로 소리를 조금 키운다.

“별소리를 다 하네.”

아내가 더 말하지 않는다.

기석은 방송 화면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자신이 먼저 죽으면 정숙은 어떨까.

정숙이 먼저 죽으면 자신은 어떨까.

딸들이 매일 전화해줄까.

그런 생각이 불편하다.

그래서 화면 속 집의 구조를 본다.

'저 집은 복도가 좁네.'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

오후 10시 36분

잠자리에 든다.

아내는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있다.

기석은 내일이 비번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다.

갑자기 경비실에서 있었던 차량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아침에는 화가 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니다.

그런데 다른 장면 하나도 따라온다.

아침에 인사 없이 지나간 주민.

편의점 앞 노인.

자전거를 타던 학생.

딸의 직장 이야기.

오늘 하루 자신이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에게 계속 무언가를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석은 의식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남의 일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눈을 감기 전에 아내에게 말한다.

“일요일에 서우 오면 근처 공원 갈까?”

“더운데?”

“저녁에.”

“애한테 물어봐.”

“애가 뭘 알아. 가면 좋아하지.”

정숙이 웃는다.

“당신이 가고 싶은 거 아니고?”

기석은 대답한다.

“내가 거길 뭐 하러 가.”

하지만 이미 공원에서 외손녀가 킥보드를 타는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

2.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 서로 크게 간섭하지 않는 가족

기석은 1964년 전북 완주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와 막일을 병행했고, 어머니는 집과 밭을 돌봤다.

가족은 가난했지만 굶을 정도는 아니었다.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다거나 냉정하다는 말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가족끼리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필요한 것을 서로 챙겼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자세히 물어보기보다 일을 대신해주는 방식이었다.

기석이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유를 오래 묻지 않았다.

“많이 맞았냐?”

“아니.”

“그럼 됐다.”

그게 끝이었다.

어머니도

“내일 가서 또 싸우지는 마.”

정도였다.

기석은 그것을 무관심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고 인정받는 것처럼 느꼈다.

이 집에서 사랑은 관심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서로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학교생활

기석은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 않았다.

중간 정도였다.

수학보다 기술 과목을 좋아했다.

라디오나 자전거를 뜯어보는 것도 좋아했다.

친구 관계는 무난했다.

앞장서지도 않았고 크게 따돌림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싸우면 이상하게 구경하다 중간에 끼어드는 경우가 있었다.

“그만해.”

그러다 양쪽에서

“넌 빠져.”

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럴 때면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괜히 끼어들었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다시 개입했다.

이 성향을 자신은 정의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보고 있으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10대 후반과 군 생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가족 중에서는 형이 먼저 취업했고 누나도 공장에 다녔다.

기석 역시 돈을 버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군 복무를 하면서 조직의 위계에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다만 후임을 과도하게 괴롭히는 선임은 싫어했다.

한 번은 선임이 후임병에게 개인 심부름을 계속 시키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 정도면 됐잖습니까.”

선임에게 욕을 먹었다.

그날 이후 며칠간 자신도 같이 불편해졌다.

기석은 후회했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기억 속에서는 그 일이 약간 자랑스럽게 남았다.

사람은 자신이 한 일을 나중에 다른 의미로 기억하기도 한다.

20대 — 인쇄공장

제대 후 전주의 인쇄공장에 취직했다.

기계를 다루는 일이 잘 맞았다.

급여는 높지 않았지만 일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기석은 고장 원인을 찾는 것을 좋아했다.

소리가 이상하면 어디에서 나는지 귀를 기울였다.

선배들은 말했다.

“남 기사, 기계 귀신이네.”

그 말을 좋아했다.

기계는 적어도 원인이 있었다.

베어링이면 베어링,

벨트면 벨트,

전원이면 전원.

사람처럼 이유를 묻는데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내 정숙을 만나다

27세 때 친구 소개로 정숙을 만났다.

정숙은 당시 은행 계약직 직원이었다.

기석보다 말을 훨씬 많이 했다.

처음에는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만남이 끝난 뒤에는 정숙이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았다.

정숙은 기석에게 자주 말했다.

“당신은 말을 안 하는 게 착한 건 줄 아는 것 같아.”

기석은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는 상대를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했다.

정숙에게는 달랐다.

관심이 있으면 물어보는 것이었다.

둘은 연애하면서 이것 때문에 자주 싸웠다.

정숙:

“오늘 내가 병원 갔다 왔다고 했잖아.”

기석:

“그래서 괜찮다며.”

“그래도 왜 갔는지 안 궁금해?”

“괜찮다는데 뭘.”

정숙에게는 무관심처럼 느껴졌다.

기석에게는 상대의 말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둘은 이 차이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결혼했다.

그리고 35년 넘게 같은 문제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반복해왔다.

30대 — 두 딸의 아버지

첫딸과 둘째 딸이 태어났다.

기석은 아이들과 아주 많이 놀아주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장 난 장난감은 거의 모두 고쳤다.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하면 뒤에서 잡아줬다.

학교 준비물이 필요하면 늦은 밤에도 문구점에 갔다.

딸들이 울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왜 울어?”

라고 물은 뒤 이유를 들으면 해결책부터 찾았다.

정숙은 자주 말했다.

“그냥 안아주면 돼.”

기석은

“안아준다고 뭐가 해결돼?”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딸이 아주 심하게 울 때는 말없이 옆에 앉아 있었다.

그에게도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문제 해결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40대 — 첫 번째 직장을 떠나다

인쇄업 경기가 나빠지면서 공장이 축소됐다.

기석은 18년 가까이 일한 직장을 떠났다.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 어려우면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했다.

퇴직금을 받고 두 달을 쉬었다.

그런데 정해진 출근 시간이 사라지자 하루가 이상하게 길었다.

아침을 먹은 뒤 할 일이 없었다.

정숙이

“좀 쉬어.”

라고 하면 오히려 짜증이 났다.

“내가 놀고 싶어서 노냐?”

아무도 그를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런 평가를 듣고 있는 것처럼 반응했다.

기석은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직업을 단순히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됐다.

하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곧 건축자재 영업 일을 시작했다.

영업사원이 되다

기계와 달리 영업은 사람을 상대해야 했다.

처음에는 매우 어려웠다.

물건이 좋은데 왜 사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가격,

인간관계,

기존 거래처,

접대,

기분.

수많은 변수가 있었다.

기석은 좋은 영업사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약속을 잘 지키고 과장해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거래하는 고객은 생겼다.

한 거래처 사장이 말했다.

“남 과장은 재미는 없는데 거짓말은 안 해.”

기석은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50대 — 다시 직업을 바꾸다

건설경기 악화로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물류센터 관리직으로 옮겼다.

야간근무도 있었다.

몸은 예전보다 힘들었지만 자신이 여전히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 무렵 큰딸이 독립했다.

몇 년 뒤 작은딸도 집을 나갔다.

정숙은 말했다.

“집이 허전하다.”

기석은 말했다.

“애들이 언제까지 집에 있냐.”

합리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딸들 방의 문을 한동안 닫지 못했다.

정숙이 방을 창고처럼 쓰려고 하자 말했다.

“그냥 놔둬.”

“애들 다 나갔는데?”

“와서 잘 수도 있잖아.”

딸이 독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집 안에 돌아올 자리는 남겨두고 싶었다.

58세 — 경비원이 되다

물류센터 계약이 끝났다.

완전히 은퇴할 수도 있었다.

연금 개시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정숙도 말했다.

“이제 좀 쉬어.”

기석은 두 달 정도 쉬었다.

산에도 가고 친구도 만났다.

처음 한 달은 좋았다.

두 번째 달부터 오전 시간이 싫어졌다.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출근하고 있는데 자신만 집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경비원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자신은 단순히

“집에 있으면 심심해서.”

라고 설명했다.

그 말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었다.

그에게 일은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경비 일을 하며 알게 된 것

처음에는 업무 자체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출입 관리,

민원 전달,

순찰,

택배 관련 안내,

시설 확인.

하지만 실제 어려움은 사람 사이에서 생겼다.

어떤 주민은 매우 공손했다.

어떤 주민은 경비원을 마치 공동주택의 개인 심부름 담당처럼 대했다.

아이들은 먼저 인사했지만 부모는 눈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주민이 음료수를 건네면 그것도 조금 불편했다.

고맙지만,

'내가 불쌍해 보이나?'

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또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날에는

'사람들이 너무 각박해.'

라고 생각했다.

기석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자존심만 강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사람 대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지만, 특별한 배려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싫다.

그 모순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60대의 현재

기석은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신을 ‘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직 어색하다.

버스에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

'고맙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가끔은 일부러 서서 간다.

몸은 앉고 싶어도 마음이 먼저 거절한다.

젊은 사람들을 두고

“요즘 애들은 남 일에 관심이 없어.”

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이 젊었을 때도 남의 사정에 크게 관심을 두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달라진 것은 세대만이 아니다.

기석 자신이 이제 세상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위치에 동시에 서게 되었다는 점도 크다.

그는 아직 그것을 명확하게 언어화하지 못한다.

3.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왜 먼저 인사하지 않은 주민이 조금 거슬렸을까?

기석은 경비원에게 특별한 존중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서로 마주쳤는데 상대가 자신을 없는 사람처럼 통과하는 순간에는 작은 불쾌감이 생긴다.

그에게 인사는 예절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는 최소한의 확인에 가깝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문제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자신이 생산직 기사이든 영업사원이든 상대방이 자신을 업무상 반드시 인식해야 했다.

경비 일을 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쉽게 배경이 되는 직업을 경험했다.

그래서 인사 하나가 전보다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거절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가능성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왜 차량 차주의 “아저씨”라는 말에 화가 났을까?

단어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선생님, 죄송한데 중립이라 밀어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말했다면 같은 부탁도 다르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기석은 직업의 위계에 매우 민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직업을 거치며 사람들의 말투가 직업에 따라 바뀌는 것을 보았다.

경비원이 된 뒤 그 차이는 더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문제는 명령을 받는 것보다 자신이 결정권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본인도 젊은 시절 경비원에게 얼마나 공손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의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세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왜 하지 않아도 되는 분리수거를 하면서 불평할까?

기석에게는 반복되는 행동이다.

문제가 눈에 보이면 고친다.

경첩이 삐걱거리면 윤활제를 뿌리고,

박스가 흩어져 있으면 정리하고,

학생이 위험하게 길을 건너면 말을 건다.

그는 이것을 친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눈에 보이니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주 피곤해진다.

자기가 하지 않으면 될 일을 스스로 맡고,

끝낸 뒤에는 왜 자신만 이런 것을 신경 쓰느냐고 불평한다.

여기에는 책임감과 통제 욕구가 조금씩 함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남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기도 하지만, 그대로 존재하는 문제를 보고 있기 불편해서 하는 부분도 있다.

왜 편의점 앞 취객에게 돌아갔을까?

기석은 처음 두 번 지나치려고 했다.

“남의 일이다.”

라는 생각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이라는 생각이 충돌했다.

결국 돌아갔다.

그리고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괜히 오지랖 부렸다.”

고 생각했다.

이 장면에는 기석이 평생 가지고 살아온 특징이 잘 나타난다.

그는 적극적인 이타주의자가 아니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도 없다.

오히려 남의 문제에 얽히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시한 결과로 문제가 생겼다는 가능성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행동한다.

이것은 순수한 선의와 자기 마음의 불편함을 줄이려는 동기가 섞인 행동이다.

둘 중 하나만 진짜라고 볼 필요는 없다.

왜 딸이 상사 이야기를 했을 때 “회사는 원래 그렇다”고 했을까?

기석은 딸의 편이 아니다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딸이 직장생활에서 상처를 덜 받기를 원한다.

자신은 여러 직장을 거치면서 불합리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때마다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면 자신만 힘들다고 배웠다.

그래서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식,

“별 인간 다 있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를 딸에게도 건넨다.

하지만 딸이 원하는 것은 생존전략이 아니라 잠시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

기석에게는 이 차이가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없이 감정만 함께 나누는 것을 아직도 조금 비생산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딸의 상사를 즉시 욕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렴풋이 깨닫는다.

때로는 사실관계보다 ‘나는 네 편이다’라는 메시지 자체가 기능을 할 수 있다.

왜 딸들에게 보고 싶다고 직접 말하지 못할까?

그가 자란 가족에서는 사랑을 자주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랑이 부족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일을 대신해주고,

필요할 때 돈을 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관계였다.

그래서 기석은

“보고 싶다.”

“사랑한다.”

같은 말에 거짓말 같은 어색함을 느낀다.

대신

“언제 오냐?”

“차 조심해라.”

“밥은 먹었냐?”

라고 말한다.

문제는 딸들이 언제나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석은 자기가 표현하지 않았을 뿐 상대가 당연히 알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것은 오래된 가족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통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통하는 방식은 아니다.

왜 외로운 것을 인정하지 않을까?

기석에게 ‘외로운 사람’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무능력 이미지가 붙어 있다.

혼자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

자기 생활이 없는 사람.

그래서 딸들이 나간 뒤 TV를 계속 켜두면서도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손녀가 오는 날을 기다리면서도

“시끄러워서 싫다.”

고 말한다.

그것은 감정을 숨기기 위한 의식적인 연기라기보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표현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외로움은 ‘집이 조용한 것’이 되고,

그리움은 ‘언제 오냐’가 되고,

걱정은 ‘조심해라’가 된다.

본인에게는 그것도 충분히 명확하다.

왜 고독사 이야기를 피했을까?

죽음 자체를 처음 생각해본 것은 아니다.

62세가 되면 주변에서 부모 세대의 죽음과 동년배의 병을 자주 듣게 된다.

그런데 기석에게 두려운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자기가 사라졌는데도 며칠 동안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불편하다.

경비실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오간다.

기석이 쉬는 날에는 다른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는다.

아파트도 돌아간다.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지를 그 일은 매일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것을 허무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석은 거창한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연결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먼저 인사하는 아이,

전화하는 딸,

잔소리하는 아내,

등산 가자고 연락하는 친구.

젊었을 때는 이런 것들이 그냥 일상이었다.

지금은 아주 조금씩 자기가 세상에 아직 걸려 있는 고리처럼 느껴진다.

그 자신도 그 변화를 완전히 의식하지는 못한다.

4.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기석이 당신에게 사소한 일까지 참견하는 아파트 경비원이라면, 당신은 그를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실제로 그의 개입에는 상대를 돕고 싶은 마음뿐 아니라 문제를 보고 그냥 지나쳤을 때 자신이 느끼게 될 불편함도 섞여 있다. 그렇다면 선의와 자기만족이 함께 있는 친절은 덜 가치 있는 행동일까?

2. 당신은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존중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때로는 무관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길가에 누군가 쓰러져 있거나, 낯선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이웃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릴 때 어느 지점부터 그것은 더 이상 완전히 ‘남의 일’이 아니게 될까?

3. 당신이 기석과 같은 62세가 되었을 때도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인사, 말투, 연락을 해석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젊을 때에는 사소했던 인사 하나가 자신이 사회에서 점점 배경이 되어간다고 느끼는 시기에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의 예민함이라고 보였던 행동 중 일부는 어쩌면 그 사람이 서 있는 삶의 위치를 알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파트 경비실에서 근무하는 62세 경비원 남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