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은은 광주광역시의 중형 장례식장에서 5년째 장례지도사로 일한다.
월 실수령액은 당직과 추가근무에 따라 280만~330만 원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전문대 장례지도 관련 학과를 중퇴한 뒤 자격교육을 거쳐 취업했다.
현재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8만 원짜리 원룸에서 혼자 산다. 부모는 전남 나주에 살고 있으며 두 살 어린 남동생은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한다.
소은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말하면 자주 이런 질문을 듣는다.
“안 무서워요?”
그럴 때마다 대답한다.
“산 사람이 더 어려워요.”
처음에는 농담으로 배운 문장이었다.
요즘은 절반쯤 진심이다.
1. 현재의 하루
오전 6시 47분
알람이 울린다.
소은은 눈을 뜨자마자 천장을 본다.
오늘은 오전 근무다.
전날 밤 12시가 넘어서 잤기 때문에 몸이 무겁다.
알람을 끄고 다시 누운다.
두 번째 알람은 6시 52분.
세 번째는 6시 57분이다.
두 번째 알람에서 일어난다.
침대 옆에 벗어둔 검은 바지가 보인다.
어제 입은 근무복이다.
냄새를 한번 맡는다.
'괜찮네.'
세탁 바구니에 넣지 않고 다시 입기로 한다.
직업 때문에 항상 깔끔한 사람일 것 같다는 말을 가끔 듣지만 집에서의 소은은 꽤 대충 산다.
양치를 하면서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남동생에게 새벽 1시 14분에 메시지가 와 있다.
누나 자냐
그 아래에는 아무 말도 없다.
소은은 답한다.
왜
1분쯤 기다린다.
답이 없다.
'술 먹었겠지.'
별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수하면서 두 번이나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오전 7시 19분
냉장고를 연다.
두유 하나와 반쯤 남은 김치, 계란 네 개, 배달음식 용기 두 개.
두유를 꺼낸다.
컵에 따르지 않고 그대로 마신다.
어머니가 이것을 보면 분명 말할 것이다.
“밥 좀 먹고 살아.”
소은은 부모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거의 같은 대답을 한다.
“잘 먹어.”
실제로는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장례식장에서 남은 식사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다.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굶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전 7시 52분
버스를 탄다.
빈자리가 하나 있다.
소은은 앉아 휴대전화 쇼츠를 본다.
강아지가 목욕을 싫어하는 영상.
유명 연예인의 인터뷰.
여행 브이로그.
화면을 넘기던 중 장례 관련 영상이 하나 뜬다.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5가지.’
바로 넘긴다.
이런 콘텐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 죽는 걸 왜 이렇게 교훈으로 만들지.'
장례식장에서 일한다고 해서 죽음에 대해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싫다.
소은에게 죽음은 철학이기 전에 업무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차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전 8시 24분
직원 휴게실에서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흰 셔츠.
검은 재킷.
머리는 낮게 묶는다.
거울을 보다가 입술 색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립밤을 바른다.
동료 민정이 들어온다.
“어제 몇 시에 갔어?”
“열한 시 반.”
“미쳤다.”
“언니는?”
“한 시.”
소은이 웃는다.
“언니가 더 미쳤네.”
민정이 종이컵으로 커피를 뽑는다.
“302호 오늘 발인이지?”
“응.”
“아들들이 또 싸웠대.”
소은이 잠깐 멈춘다.
“또?”
“비용 때문에.”
민정이 목소리를 낮춘다.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장례비 가지고 형제끼리 싸우는 것도 참…”
소은은 대답한다.
“그럴 수도 있지.”
민정이 본다.
“너는 진짜 그런 거에 관대하다?”
“돈 많이 들어가잖아.”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그러냐.”
소은은 더 말하지 않는다.
속으로 생각한다.
'장례식장이니까 더 그러지.'
사람이 슬프다고 해서 돈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 미뤄둔 문제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오전 8시 51분
빈소에 들어간다.
오늘 발인 예정인 고인은 81세 여성이다.
상주인 큰아들이 소은을 보자 바로 다가온다.
“저기, 차량 시간이 10시 맞죠?”
“네. 9시 40분부터 준비하시면 됩니다.”
“화장장 도착하면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이미 전날 설명했다.
소은은 다시 똑같이 설명한다.
“도착하시면 제가 먼저 접수 안내드릴 거고요. 유족분들은 대기실로 가시면 됩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몇 초 뒤 다시 묻는다.
“우리가 따로 서류 같은 거 가져갈 건 없죠?”
“제가 챙겨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소은은 불편하지 않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설명을 여러 번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처음 일할 때는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도 업무라고 생각한다.
오전 9시 14분
상주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소은에게 묻는다.
“선생님.”
“네.”
“우리 엄마… 저 상태로 그냥 가는 거예요?”
소은은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부분 말씀하실까요?”
여자가 관 쪽을 바라본다.
“뭐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더 볼 수는 없어요?”
목소리가 흔들린다.
소은은 시간을 계산한다.
현재 일정상 가능하다.
“잠시 확인해보겠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죄송해요.”
소은이 바로 말한다.
“죄송하실 건 아니에요.”
그 말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잠시 뒤 절차를 마련한다.
여자가 고인의 얼굴을 보자 울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용히 울다가 결국
“엄마, 미안해.”
라는 말이 나온다.
소은은 조금 떨어져 서 있다.
시선을 완전히 피하지도 않고, 계속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 거리를 익히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방해하는 것 같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방치하는 것 같다.
정답은 없다.
오전 9시 28분
여자가 나온다.
눈이 빨갛다.
소은에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소은이 고개를 숙인다.
“아닙니다.”
여자가 갑자기 소은의 손을 잡는다.
소은의 몸이 아주 약간 굳는다.
“정말 고마워요.”
“네.”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잡아줘야 할까.
가만히 있어야 할까.
결국 상대 손 위에 자신의 다른 손을 잠깐 올렸다가 뺀다.
여자가 떠난다.
소은은 손을 내려다본다.
'내가 너무 어색했나.'
시신을 다루는 것보다 우는 사람에게 손을 잡히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오전 10시 37분
영구차가 출발한다.
소은은 차량에 동행한다.
차 안은 조용하다.
뒤쪽에서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소은은 창밖을 본다.
신호등.
편의점.
공사장.
학교 앞을 지나간다.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아무 일도 없는 오전이다.
소은은 장례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가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차 안에서는 한 가족의 매우 중요한 하루가 진행되고 있는데, 창밖 사람들은 커피를 사고 택배를 받고 출근한다.
처음에는 그 차이가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멈추면 더 이상하지.'
오전 11시 13분
화장장 대기실.
상주 가족들이 앉아 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구석에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한다.
소은에게도 들린다.
“그러니까 병원비는 형이…”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
“나중에 언제?”
소은은 듣지 않는 척한다.
이런 순간이 제일 어렵다.
직업상 남의 가족사를 너무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들었다는 사실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
작은아들의 목소리가 조금 커진다.
“나만 돈 안 낸 사람처럼 얘기하지 마.”
큰아들이 주변을 본다.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문다.
소은은 서류만 내려다본다.
속으로 생각한다.
'집에서 싸우지.'
곧바로 다른 생각도 든다.
'집에서는 못 했겠지.'
사람들은 중요한 날에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평소 중요했지만 미뤄둔 문제들이 중요한 날에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오후 12시 06분
화장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소은은 직원 휴게 공간에서 삼각김밥을 먹는다.
민정에게 메시지가 온다.
201호 입실 들어옴
보호자 엄청 예민함
소은:
몇 분?
5명
고인?
54 남자. 갑자기 돌아가셨대
소은의 손이 멈춘다.
54세.
자기 아버지는 58세다.
잠깐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그 생각을 바로 밀어낸다.
삼각김밥 포장을 더 뜯는다.
'나이 비슷하다고 다 연결하면 이 일 못 해.'
오후 1시 18분
장례식장으로 돌아온다.
새로 입실한 가족의 상담을 보조한다.
고인의 아내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들이 대부분 질문한다.
“빈소는 이 크기가 제일 작은 거예요?”
“네. 현재 가능한 곳 중에는 그렇습니다.”
“식사는 최소 주문이 있어요?”
“초기 주문량은 있지만 이후 사용량에 따라 조정 가능합니다.”
아들은 계속 비용을 확인한다.
표정을 보면 초조해 보인다.
옆에 있던 친척 남자가 말한다.
“야, 이런 날 돈부터 따지냐.”
아들의 얼굴이 굳는다.
“삼촌이 낼 거 아니잖아요.”
순간 정적이 생긴다.
친척의 얼굴도 굳는다.
소은은 눈을 내린다.
처음 일하던 시절이었다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른 생각이 먼저 든다.
'저 사람 지금 통장에 얼마 있지.'
오후 1시 43분
상담이 끝난 뒤 아들이 혼자 소은에게 다가온다.
“저기요.”
“네.”
“나중에 음식 남으면 그건 어떻게 돼요?”
“사용한 만큼 정산합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많이 주문 안 해도 되죠?”
“네. 다만 조문객이 몰릴 시간대를 예상해서 조금 여유 있게 준비하시는 게 좋습니다.”
아들이 한숨을 쉰다.
“제가 이런 걸 몰라서.”
소은이 말한다.
“대부분 처음 해보시는 일이니까요.”
아들이 잠시 웃는다.
“그러네요.”
그 순간 소은은 이상하게 그 사람에게 마음이 조금 간다.
슬퍼서 울고 있는 사람보다 이런 식으로 정신없이 계산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할 때가 있다.
소은 자신도 힘들 때 감정보다 해야 할 일을 찾는 편이기 때문이다.
오후 2시 31분
휴게실.
민정이 과자를 먹으며 말한다.
“아까 201호 아들 봤어?”
“응.”
“난 좀 그렇더라.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음식값부터.”
소은이 물을 마신다.
“돈 없을 수도 있잖아.”
“그래도 그렇지.”
“그럼 돈 없는데 어떻게 해?”
민정이 소은을 본다.
“너는 가끔 너무 현실적이야.”
소은은 웃는다.
“누군가는 현실적이어야지.”
말하고 나니 자신도 조금 불편하다.
마치 자신만 성숙한 사람처럼 말한 것 같다.
사실 소은도 비슷한 장면을 보고 집에 가서
'그래도 너무했나.'
라고 생각하는 날이 있다.
오후 3시 07분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응, 엄마.”
“밥 먹었어?”
“먹었지.”
“뭐 먹었는데?”
소은은 잠시 멈춘다.
“김밥.”
삼각김밥이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고, 제대로 좀 먹어라.”
“응.”
“이번 주에 올 거야?”
“모르겠어. 근무표 봐야 돼.”
“아빠가 감자 캤다고 가져가래.”
소은이 웃는다.
“내가 감자 얼마나 먹는다고.”
“그래도 가져가.”
“알았어.”
전화가 끝나려는데 소은이 묻는다.
“아빠는?”
“밭 갔지.”
“더운데?”
“말을 듣니.”
소은이 순간 말한다.
“엄마, 아빠 건강검진 올해 했지?”
“했지. 왜?”
“그냥.”
“뭐 있어?”
“아니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긴장한다.
소은은 짜증이 난다.
“아니라고. 그냥 물어본 거야.”
“네가 그런 걸 갑자기 물으니까 그렇지.”
“알았어. 끊어.”
전화를 끊는다.
조금 미안하지만 다시 전화하지 않는다.
54세 고인을 본 것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어머니가 더 걱정할 것이다.
오후 4시 26분
조문객이 몰리는 시간이다.
소은은 빈소와 사무실을 계속 오간다.
한 중년 남자가 술에 약간 취해 큰소리로 말한다.
“내가 이 형님하고 얼마나 친했는지 알아?”
주변 사람이 말린다.
“형, 좀 앉아.”
“아니, 내가 말 좀 할게.”
소은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본다.
조금 지나자 남자가 영정사진 앞에서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형, 내가 그때 전화했어야 했는데.”
큰 목소리다.
소은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다.
'술 때문에 더 저러나.'
그런데 곧 이 판단이 마음에 걸린다.
저 사람의 슬픔이 진짜인지 아닌지 자신이 알 방법은 없다.
누군가는 조용히 울고,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비용을 계산하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5년 동안 봐도 슬픔에는 통일된 모양이 없었다.
오후 5시 52분
잠깐 쉴 시간이 생긴다.
휴대전화를 보니 남동생에게 답장이 와 있다.
어제 술먹고 그냥 전화할라했음
소은:
뭔 일 있음?
아니
그냥 회사 개빡침
소은은
힘내라
라고 쓰다가 지운다.
다시 쓴다.
뭐 때문에
동생이 바로 답한다.
팀장이 내 작업 자기가 한 것처럼 말함
소은은 잠시 생각한다.
개짜증났겠네
보낸다.
그리고 조금 어색하다.
평소라면
그런 인간 어디든 있음
이라고 썼을 것이다.
며칠 전 동료가 그런 말을 했다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동생에게서 답장이 온다.
ㅇㅇ 진짜 개짜증
그 뒤로 10분 정도 회사 욕을 들어준다.
해결책은 하나도 제시하지 않는다.
소은은 대화가 끝난 뒤 생각한다.
'이게 도움이 되나.'
그런데 동생이 마지막에 보낸다.
말하고 나니까 좀 낫네 ㅋㅋ
소은은 조금 신기하다.
오후 7시 04분
퇴근한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며 근처 빵집에 들어간다.
크림빵 두 개와 소금빵 하나를 고른다.
결제를 하다가 생각한다.
'밥 먹어야 되는데.'
그대로 산다.
밖으로 나오자 빵 봉지를 열어 크림빵 하나를 먹는다.
오늘 어머니에게
“제대로 먹는다.”
고 말했던 게 떠오른다.
'빵도 음식이지.'
스스로 웃는다.
오후 7시 48분
원룸으로 돌아온다.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친다.
옷장을 열어 걸면 되는데 귀찮다.
샤워를 한다.
물을 맞고 서 있다가 오늘 고인의 딸이 손을 잡았던 순간이 갑자기 떠오른다.
자기 손을 상대 손 위에 얹었던 방식.
'너무 직원처럼 했나.'
그리고 바로 생각한다.
'직원 맞잖아.'
그런데도 조금 마음에 남는다.
상대는 평생 기억할 수도 있는 순간인데 자신에게는 오늘 있었던 여러 장면 중 하나였다.
그 차이가 때때로 죄책감처럼 느껴진다.
모든 고인을 특별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모든 유족의 슬픔을 같이 느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익숙해지는 것도 두렵다.
오후 8시 32분
유튜브에서 여행 영상을 본다.
홋카이도 영상이다.
눈이 가득 쌓인 길.
온천.
작은 식당.
소은은 항공권을 검색한다.
12월 항공권 가격을 확인한다.
생각보다 비싸다.
창을 닫는다.
잠시 뒤 다시 연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이런 말을 생각하고 스스로 싫어진다.
장례지도사가 된 뒤 주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너는 죽는 사람 많이 봐서 인생관이 다르겠다.”
실제로 소은은 오히려 큰 결정을 더 쉽게 하지 못한다.
죽음을 많이 본다고 해서 인생의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면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나?’
라는 질문이 생기면 그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그런데 내가 뭘 원하는데?’
답은 없다.
항공권 사이트를 닫는다.
오후 9시 21분
친구 은채에게 전화가 온다.
“야.”
“왜.”
“나 헤어졌어.”
소은이 몸을 세운다.
“진짜?”
“응.”
은채가 설명하기 시작한다.
남자친구와 세 시간 동안 싸웠고 결국 헤어졌다고 한다.
소은은 처음에는 조용히 듣는다.
그러다 말한다.
“근데 너 지난번에도 걔가 연락 안 된다고 했잖아.”
“응.”
“그러면 잘 헤어진 거 아니야?”
침묵.
은채가 말한다.
“나 지금 분석해달라고 전화한 거 아니거든.”
소은이 바로 후회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좀 슬프다고.”
소은은 몇 초 동안 말이 없다.
“응.”
다시 침묵.
소은이 말한다.
“많이 슬퍼?”
은채가 웃으면서 운다.
“그걸 이제 물어보냐.”
소은도 웃는다.
“미안.”
그 뒤에는 되도록 조언하지 않는다.
오후 10시 13분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워 있다.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분석해달라고 전화한 거 아니거든.”
소은은 이런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어머니에게도,
전 남자친구에게도,
동생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바로 그 능력을 인정받는다.
사람이 울고 있을 때도
서류를 확인하고,
시간을 맞추고,
차량을 준비하고,
음식을 계산하고,
다음 절차를 설명한다.
누군가는 침착해야 한다.
소은은 그 역할을 잘한다.
문제는 가끔 업무 밖에서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오후 10시 47분
어머니에게 메시지가 온다.
아빠 들어왔다
걱정하지 마라
소은은 휴대전화를 본다.
자신은 걱정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답한다.
내가 뭘 걱정했다고 ㅋㅋ
어머니:
다 안다
소은은 웃는다.
답장을 쓰지 않는다.
조금 뒤 아버지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낸다.
더운데 낮에 밭 좀 그만가
아버지가 5분 뒤 답한다.
네가 감자 안먹으면 안간다
소은:
안먹음
아버지:
그럼 다 버려야겠네
소은:
한박스만 줘
혼자 웃는다.
오후 11시 29분
불을 끈다.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 동안 울었던 사람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고인의 딸.
술 취한 조문객.
전화로 울던 친구.
그러다 이상하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울지 않았던 20대 아들이다.
음식값을 물어보던 얼굴.
'돈이 정말 없었나.'
알 수 없다.
어쩌면 단순히 돈을 아끼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비용 계산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소은은 그 이유를 모른다.
5년 동안 장례식장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슬픈지를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여전히 사람들을 판단한다.
큰소리로 우는 사람을 보고 과하다고 생각하고,
비용을 계산하는 사람을 보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담담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야
'내가 뭘 안다고.'
생각한다.
오후 11시 46분.
남동생에게 메시지가 하나 온다.
낼 전화함
소은은 답하지 않고 화면을 끈다.
눈을 감는다.
2. 이 사람의 일생
유년기 — 울고 나면 해결해야 했다
김소은은 1998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협 계열 농자재 판매점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작은 식당과 학교 급식 보조 일을 오갔다.
집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크게 불안정하지도 않았다.
소은에게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었고 어머니는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울면 어머니는 안아주기는 했지만 곧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돼?”
친구와 싸웠으면 내일 어떻게 할 것인지,
물건을 잃어버렸으면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성적이 떨어졌으면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감정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정 다음에는 늘 행동이 있었다.
소은에게도 그 방식은 꽤 잘 맞았다.
남동생이 울면 어머니보다 먼저
“누가 그랬는데?”
라고 물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따지러 가기도 했다.
소은은 자신을 감정이 없는 아이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쉽게 속상해했다.
다만 속상함이 오래 지속되는 상태를 견디기 어려워했다.
무엇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다.
초등학생 시절
소은은 반에서 아주 인기 있는 아이도, 외톨이도 아니었다.
친구가 몇 명 있었다.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다음 날 다시 놀았다.
친구들이 비밀 이야기를 하면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상담을 받은 친구들이 가끔 말했다.
“너는 누구 편이야?”
소은은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는 문제를 정확하게 보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쟤가 나한테 먼저 화냈어.”
라고 하면
“근데 너도 어제 걔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라고 했다.
소은에게는 공정한 대답이었다.
친구에게는 배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 — 할머니의 죽음
중학교 2학년 때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소은이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할머니와 특별히 깊은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명절에 만나고 여름방학 때 며칠 지내는 정도였다.
장례식장에서 소은은 어른들의 행동을 유심히 봤다.
평소 무뚝뚝했던 큰아버지가 영정 앞에서 울었다.
아버지는 거의 울지 않았다.
대신 계속 사람들을 맞았다.
어머니는 음식과 친척들을 챙겼다.
소은은 이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다들 밥 얘기를 하지?'
그런데 밤이 되면서 조금 이해하게 됐다.
사람들은 슬프면서도 밥을 먹었고,
주차 문제를 이야기했고,
누가 어디에서 잘지 정했다.
다음 날에는 친척 둘이 비용 문제로 작은 언쟁을 벌였다.
당시 소은은 상당히 실망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저런 얘기를 해?'
지금의 소은이 매일 보는 장면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그 경험 하나가 그녀를 장례지도사로 만든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오히려 그런 장소에서 일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성적은 중간 정도였다.
암기과목은 괜찮았지만 수학을 싫어했다.
진로가 명확하지 않았다.
간호사도 잠깐 생각했다.
공무원도 생각했다.
호텔서비스 관련 학과도 알아봤다.
선생님이 물었다.
“뭐 하는 게 제일 좋니?”
소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조금 낯설었다.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부모도 특별한 진로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는 말했다.
“먹고살 수 있는 거 해.”
소은에게 상당히 익숙한 조언이었다.
20세 — 장례 관련 학과에 들어가다
전문대학 진학을 알아보다 우연히 장례지도 관련 학과를 알았다.
취업률을 먼저 봤다.
자격증과 취업 경로가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너 시체 볼 수 있어?”
“무섭지 않아?”
어머니도 처음에는 반대했다.
“굳이 그런 일을 해야 하니?”
소은은 반대로 생각했다.
누군가는 하는 일이고, 직업으로 존재한다면 왜 자신은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진학했다.
대학 중퇴
막상 학교에 들어가 보니 예상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전공 자체보다 대학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수업에 빠지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돈을 쓰는 것도 아깝게 느껴졌다.
1년 반 정도 다니다 휴학했다.
부모는 크게 화냈다.
아버지가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앞으로 뭘 할 건데?”
소은도 화가 나서 말했다.
“학교 졸업한다고 뭐가 보장돼?”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논리가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학교생활에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소은은 당시 자신이 합리적으로 중퇴를 결정했다고 오래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지루해진 것을 견디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고 인정한다.
22세 — 장례지도사 교육을 다시 받다
편의점과 카페에서 1년 가까이 아르바이트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려고 학교 그만뒀어?”
소은은 그 말을 가장 듣기 싫어했다.
그러다 예전에 공부했던 장례 관련 분야를 다시 알아봤다.
자격 취득 경로를 찾아 교육을 받고 현장실습을 했다.
이번에는 오히려 잘 맞았다.
교실보다 실제 현장이 좋았다.
해야 할 일이 명확했다.
시간표가 있었고,
절차가 있었고,
실수하면 결과가 바로 보였다.
현장에서 선배가 말했다.
“너 침착하네.”
소은은 그 말을 좋아했다.
자신에게도 쓸모 있는 특징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첫 장례
첫 발인 날 소은은 거의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실수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침착했다.
문제는 끝난 뒤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갑자기 고인의 아들이 울던 얼굴이 떠올랐다.
소은은 눈물이 났다.
본인도 놀랐다.
'왜 지금 울지?'
집에 도착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며칠 뒤 다른 장례를 맡았다.
그 후 또 다른 장례가 이어졌다.
조금씩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무서웠다.
'내가 사람 죽는 데 무감각해지는 건가.'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가 말했다.
“매번 같이 울면 네가 먼저 죽어.”
소은은 그 말을 기억했다.
23~25세 — 감정과 일을 분리하는 법
몇 년 동안 여러 가족을 보았다.
부모를 잃은 사람.
배우자를 잃은 사람.
오래 아팠던 가족의 죽음에 슬퍼하면서 동시에 안도하는 사람.
형제끼리 싸우는 가족.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가족.
계속 농담을 하는 가족.
장례 마지막까지 휴대전화로 회사 업무를 보는 사람.
소은은 처음에는 각각을 판단했다.
'저 사람은 너무 차갑다.'
'저 사람은 너무 과하다.'
'저 집은 사이가 안 좋나.'
그러다가 자신의 추측이 틀리는 경험이 반복됐다.
한 번은 장례 내내 거의 울지 않던 아들이 마지막에 혼자 계단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을 봤다.
또 어떤 사람은 장례 내내 크게 울었는데 며칠 후 비용 환불 문제로 직원에게 욕설을 했다.
소은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쉽게 정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다.
첫 연애와 이별
24세 때 지인의 소개로 첫 장기연애를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소은이 침착한 것을 처음에는 좋아했다.
“너랑 있으면 편해.”
2년쯤 지나면서 같은 특징이 갈등의 원인이 됐다.
남자친구가 회사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소은은 해결책을 말했다.
“그러면 팀장한테 얘기해.”
“이직 준비하면 되잖아.”
“계속 다닐 거면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느 날 남자친구가 말했다.
“너한테 이야기하면 내가 바보 된 것 같아.”
소은은 억울했다.
자기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뭐라고 해야 하는데?”
그 질문 자체가 남자친구에게는 또 답답하게 들렸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
소은은 한동안
'그냥 성격이 안 맞았던 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감정을 함께 견뎌주는 것보다 빨리 처리하려는 습관이 있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됐다.
26세 — 아버지의 건강검진
아버지의 건강검진에서 작은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
정밀검사를 했고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동안 소은은 부모에게 거의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검사해보면 알겠지.”
라고 말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계속 검색했다.
아버지 나이.
검사 수치.
가능한 질환.
생존율.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장례 절차까지 상상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생각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 생각하지?'
소은에게는 불안을 느끼면 가능한 결과를 미리 계산하는 습관이 있었다.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면 준비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검사 결과가 괜찮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소은은 어머니에게
“봐, 내가 괜찮다 했잖아.”
라고 말했다.
자신이 밤마다 검색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현재의 소은
장례지도사 경력 5년.
직장에서 평가도 괜찮다.
후배가 생기면 절차를 차분히 설명한다.
유족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거의 없다.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가족을 상대할 때 실무적으로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인은 자신의 일이 꽤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생 하고 싶은지는 모른다.
30대가 되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이곳을 떠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소은의 가장 큰 고민은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과 감정을 어떻게 주고받아야 하는가에 가깝다.
3. 현재 심리와 일생의 연결
왜 소은은 우는 유족보다 장례비용을 계산하는 아들에게 더 쉽게 공감했을까?
그 사람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다.
소은에게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소은은 불안하거나 슬플 때 무엇인가를 한다.
검색한다.
계산한다.
확인한다.
절차를 정한다.
행동 가능한 문제로 바꾸는 순간 감정이 조금 다루기 쉬워진다.
따라서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상황에서 음식비와 빈소 비용을 확인하는 아들의 행동이 소은에게는 반드시 냉정함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슬픔을 견디는 한 가지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들의 실제 동기를 아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일 수도 있고,
원래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소은이 이전보다 달라진 점은 모르는 부분을 모른 채 남겨두는 능력이 조금 생겼다는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의 슬픔을 자꾸 판단하면서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까?
5년간의 경험 때문이다.
소은은 처음에는 슬픔에도 적절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죽으면 울어야 하고,
돈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 하고,
장례식장에서는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울면서 배가 고프다고 했고,
영정사진 앞에서 가족과 싸웠고,
오래 투병한 부모가 돌아가신 뒤
“이제 안 아프셔서 다행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안도했다.
그 경험들은 사람의 감정이 하나씩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줬다.
슬픔과 안도,
사랑과 원망,
죄책감과 짜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은 자신도 여전히 순간적으로 타인을 평가한다.
경험이 편견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는다.
첫 판단 뒤에 두 번째 생각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왜 저래?”
다음에
“내가 사정을 아나?”
가 따라온다.
이 두 문장이 지금의 소은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
왜 유족이 손을 잡았을 때 불편했을까?
소은은 그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워하는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손을 잡는 순간 업무의 경계가 갑자기 개인적인 관계처럼 변했다.
소은은 업무적으로는 매우 침착하다.
해야 할 행동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슬픔 앞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안아줘야 하는지,
손을 잡아줘야 하는지,
말을 해야 하는지,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소은에게는 이런 모호한 상황이 어렵다.
그래서 그녀의 감정적 거리두기를 단순히 무정함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경계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잘 다루지 못하는 친밀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왜 동생에게 해결책 대신 “개짜증났겠네”라고 말해본 것이 의미 있었을까?
소은은 평소 상대가 문제를 이야기하면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반드시 문제 해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남동생과의 대화에서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대로였다.
팀장은 그대로이고,
회사 상황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 동생은
“말하고 나니까 좀 낫다.”
고 했다.
소은에게는 의외의 경험이다.
감정을 해결하지 않고 함께 머무는 것도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작게 경험한 것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갑자기 공감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또
“그러면 팀장한테 말해.”
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오랜 반응방식은 한 번의 깨달음으로 바뀌지 않는다.
왜 부모에게 걱정하지 않는 척하면서 건강 상태를 계속 확인할까?
소은에게 걱정을 직접 표현하면 걱정이 더 커지는 느낌이 있다.
특히 어머니는 작은 말을 크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래서
“아빠 괜찮아?”
라고 묻기보다는
“건강검진 했지?”
라고 묻는다.
감정을 정보 확인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아빠 오래 건강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낮에 밭 좀 그만 가.”
라고 한다.
본인에게는 두 말의 의미가 꽤 비슷하다.
상대에게는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왜 장례지도사인데 죽음을 소재로 한 인생 교훈 콘텐츠를 싫어할까?
소은은 죽음이 삶을 소중하게 만든다는 말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봤다고 해서 다음 날부터 자기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은 자신도 매주 죽음을 보면서 여행 항공권 하나 쉽게 결제하지 못한다.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을 걱정하고,
실패를 걱정하고,
남의 시선을 걱정하고,
내일 출근을 걱정한다.
소은에게는 그것이 인간의 모순이라기보다 오히려 평범한 인간의 상태에 가깝다.
죽음을 안다고 해서 삶의 정답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택의 책임만 더 또렷해질 수도 있다.
소은의 가장 큰 자기모순
소은은 스스로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고인을 보면 아버지 건강검진이 생각난다.
유족이 손을 잡으면 퇴근 후에도 그 장면을 곱씹는다.
친구에게 잘못 말했다는 생각 때문에 잠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단지 그녀는 이런 경험을
“슬프다.”
“불안하다.”
“미안하다.”
라고 바로 이름 붙이기보다
생각할 문제로 바꾸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감정이 적어 보일 수 있다.
실제로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 가능한 형태로 바꾼 뒤에야 다룰 수 있는 사람에 가깝다.
그 방식은 그녀를 좋은 장례지도사로 만들어준 부분이 있다.
동시에 가까운 관계에서는 상대를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쪽도 가짜 소은은 아니다.
둘 다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4. 이 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해보기
1. 가족이 죽은 직후 장례비와 음식값부터 확인하는 사람을 본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쉽게 냉정하다고 판단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 사람에게 돈이 없을 수도 있고,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실무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으며, 실제로 고인에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슬픔을 판단할 때 얼마나 많은 정보를 실제로 알고 있을까?
2. 누군가가 힘들다고 말할 때 해결책을 주는 것은 정말 공감이 부족한 행동일까?
소은에게 해결책은 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네 감정은 빨리 처리해야 할 문제”라는 메시지로 느껴질 수 있다. 당신은 상대가 원하는 도움과 자신이 주고 싶은 도움을 얼마나 구분하고 있을까?
3. 당신도 감정을 직접 느끼기보다 다른 형태로 바꾸어 다루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불안을 계획으로 바꾸고, 슬픔을 일로 바꾸며, 걱정을 잔소리로 바꾸고, 외로움을 바쁜 일정으로 바꾼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이 적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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