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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소개

로버트 발레랑|좋은 열정과 위험한 집착은 무엇이 다를까? 열정의 이중모형

by 마음 탐구소 2026. 8. 14.
로버트 발레랑은 열정을 조화열정과 집착열정으로 구분한 심리학자입니다. 좋아하는 일이 성장과 행복이 되기도, 번아웃과 집착이 되기도 하는 이유를 심리학 연구로 알아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좋은 것 아닐까요?”

우리는 흔히 열정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에 열정적인 학생, 일에 열정적인 직장인, 운동에 빠진 사람, 자신의 사업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창업가를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똑같이 어떤 일을 사랑하고 오랫동안 몰입하는데도 어떤 사람은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일 때문에 인간관계와 건강을 잃고 심지어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불안해합니다.

캐나다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J. 발레랑(Robert J. Vallerand)은 바로 이 차이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열정의 이중모형(Dualistic Model of Passion)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열정적인가”가 아닙니다.

그 열정을 내가 통제하고 있는가, 아니면 열정이 나를 통제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로버트 발레랑이 누구인지부터 조화열정과 집착열정의 차이, 자기결정성이론과의 관계, 일·운동·공부·취미에서 나타나는 모습, 그리고 최근 연구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로버트 발레랑은 누구인가

로버트 J. 발레랑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동기 및 사회심리학 연구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현재 캐나다 퀘벡대학교 몬트리올캠퍼스(UQAM) 심리학과 교수이며, 동기 과정과 최적 기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UQAM의 사회행동연구소(Research Laboratory on Social Behavior)도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동기, 열정, 스포츠심리학, 사회심리학입니다.

발레랑은 몬트리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워털루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를 했으며, 이후 인간이 어떤 활동에 몰입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연구했습니다.

특히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연구가 바로 열정의 심리학입니다.

2003년 발레랑과 동료들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Les Passions de l'Âme: On Obsessive and Harmonious Passion」을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열정이 하나의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널리 연구되는 열정의 이중모형입니다.

열정이란 무엇인가

발레랑이 말하는 열정은 단순히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뜻과 조금 다릅니다.

어떤 활동을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나아가 그 활동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가끔 기타를 치는 사람과

“나는 기타리스트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에게 기타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헬스장에 간다.”와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다.”는 심리적으로 다릅니다.

일, 공부, 음악, 게임, 스포츠, 창작, 사업처럼 다양한 활동이 이런 열정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활동이 정체성에 들어오는 방식에 따라 열정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정에는 두 종류가 있다

발레랑은 열정을 크게 조화열정(Harmonious Passion)집착열정 또는 강박열정(Obsessive Passion)으로 구분했습니다.

구분 조화열정 집착열정
영어 Harmonious Passion Obsessive Passion
활동하는 이유 내가 원해서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활동 통제 내가 활동을 통제함 활동이 나를 통제함
정체성 삶의 여러 부분 중 하나 정체성을 지나치게 차지함
중단 가능성 필요하면 멈출 수 있음 멈추기 어려움
실패 반응 배우고 다시 시도 자기 가치까지 위협받음
다른 삶의 영역 비교적 균형 유지 관계·건강·휴식과 충돌 가능
대표 결과 몰입, 만족, 성장 갈등, 불안, 경직된 지속 가능

두 사람 모두 매우 열정적일 수 있습니다.

차이는 열정의 크기가 아니라 관계 방식에 있습니다.

조화열정은 내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조화열정은 어떤 활동을 좋아하지만 그 활동이 자신의 삶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운동하고 운동 관련 공부도 꾸준히 합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하루쯤 운동을 쉬기도 하고, 몸을 다쳤을 때는 회복을 위해 훈련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운동하지 않는 날에도

“오늘 운동을 못 했으니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동은 이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삶의 유일한 가치가 아닙니다.

발레랑의 이론에서는 이것을 활동이 자기 정체성에 자율적으로 내면화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내가 정말 좋아해서 하는 일이다.”

라는 감각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집착열정은 열정이 나를 가지고 있는 상태다

집착열정도 출발점은 비슷합니다.

활동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합니다.

하지만 활동을 해야 한다는 내적 압박이 강해집니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하루 쉬었을 뿐인데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거나, 게임에서 순위가 떨어지면 하루 종일 기분이 무너지거나, 자신의 사업 성과가 좋지 않을 때

“사업이 실패하면 나는 실패한 인간이다.”

라고 느끼는 경우입니다.

이때 활동은 더 이상 삶의 일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자존감과 정체성을 지나치게 많이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발레랑은 이러한 상태를 활동이 정체성에 통제된 방식으로 내면화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런 압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조화열정
“나는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다.”

집착열정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다.”

둘 사이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왜 같은 열정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까

여기에는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의 영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결정성이론에서는 인간의 동기를 단순히

“동기가 있다 / 없다”

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왜 그 행동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는 행동은 자율적인 동기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 자존감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죄책감이나 타인의 기대 때문에 움직이는 행동은 통제된 동기가 강합니다.

발레랑의 열정 이론도 이러한 동기 연구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습니다.

좋아하는 활동이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

가 되면 조화열정으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이것을 잘해야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라는 방식으로 정체성과 결합하면 집착열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공하려면 집착적인 열정도 필요한 것 아닐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세계적인 운동선수나 기업가, 예술가를 보면 자신의 분야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합니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집착열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발레랑의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집착열정을 단순히 무능력이나 낮은 성취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집착열정이 강한 사람도 상당히 오래 노력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속 방식이 지나치게 경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3년 발레랑과 동료들은 Motivation Science에서 조화열정과 집착열정이 목표 추구와 지속성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연구하면서 유연한 지속성과 경직된 지속성의 차이를 강조했습니다. 

유연한 지속은 이렇습니다.

“목표는 중요하지만 지금 방법이 잘못됐으면 방법을 바꾸자.”

반대로 경직된 지속은 이렇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무조건 계속해야 한다.”

따라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틀린 전략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끈기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는 이렇게 나타난다

두 열정의 차이를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결과보다 활동을 하지 못했을 때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 운동을 하루 쉬어도 괜찮은가, 아니면 심한 죄책감을 느끼는가?
  • 일이 잘되지 않아도 나의 가치까지 떨어졌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 취미를 즐기는가, 아니면 기록과 평가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고 느끼는가?
  • 공부 계획을 상황에 따라 수정할 수 있는가?
  • 게임을 하고 싶어서 하는가, 랭킹이 떨어질까 불안해서 하는가?
  • 다른 인간관계와 휴식을 위해 활동을 잠시 멈출 수 있는가?
  • 실패했을 때 전략을 수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더 많은 시간을 무조건 투입하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이 중요합니다.

열정이 건강한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얼마나 오래 하는지가 아니라 필요할 때 멈추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입니다.

열정과 중독은 같은 것일까

집착열정이라는 표현 때문에 중독과 혼동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 개념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열정의 이중모형에서 집착열정은 활동과 정체성이 통제된 방식으로 연결되어 행동을 멈추기 어려워지는 동기적 상태를 설명합니다.

반면 행동중독은 통제력 상실, 지속적인 문제 발생, 기능 손상 등 보다 구체적인 임상적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로 발레랑 연구팀은 게임과 도박 등에서 기본심리욕구 만족, 열정 형태, 행동중독 증상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 왔습니다. 즉 집착열정은 중독과 관련될 수 있는 심리적 경로 가운데 하나로 연구될 수 있지만, 집착열정이 있다고 곧바로 중독이라고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구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열정적인 사람을 병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반대로 심각한 통제력 상실을 단순히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미화해서도 안 됩니다.

좋은 열정을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조화열정의 핵심은 열정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강하게 몰입하면서도 선택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열정과 정체성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사업가다.”

라고만 자신을 정의하면 사업 실패가 자기 존재 전체의 실패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업도 하고, 가족과 관계를 맺고, 운동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여러 영역으로 구성하면 하나의 활동이 흔들려도 자아 전체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성장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2026년 발레랑 연구팀은 Motivation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열정과 숙달목표(mastery goals)가 특정 영역에서의 자기성장뿐 아니라 보다 전반적인 자기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최근 발레랑의 연구는 열정을 단순히 “무언가를 오래 하는 힘”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최적 기능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즉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성공했는가?”

만이 아닙니다.

“이 활동을 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번아웃을 예방하려면 열정을 줄여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열정 자체보다 열정의 형태일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 직장인, 학생,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조화열정은 비교적 긍정적인 정서와 웰빙, 적응적인 활동 참여와 연결되는 반면 집착열정은 갈등이나 부정적 결과와 더 자주 연결되는 패턴을 보여왔습니다. 

2024~2026년에도 이 구분을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레랑 연구진은 최근 자기성장, 회복탄력성, 스포츠, 직장, 음악, 노년기 삶 등으로 열정 연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2026년에는 운동선수의 집착적 열정과 부정적 감정, 신체 건강 증상의 관계를 다루는 연구도 연구실의 공식 출판 목록에 포함됐습니다. 

따라서

“번아웃을 피하려면 열정을 버려야 한다.”

보다는

“내 열정이 자율적인지 강박적인지 점검해야 한다.”

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스스로 확인해보는 열정 점검법

어떤 활동에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다음 질문을 스스로 해볼 수 있습니다.

열정 체크

이 활동을 내가 선택해서 하고 있는가?

필요할 때 멈출 수 있는가?

실패해도 내 존재 전체가 실패했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가족, 친구, 건강, 휴식 등 다른 영역이 유지되고 있는가?

목표가 바뀌면 전략도 바꿀 수 있는가?

활동 자체를 즐기는가, 아니면 인정과 결과가 없으면 불안한가?

이 일을 오래 할수록 내 삶이 넓어지고 있는가, 좁아지고 있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은 발레랑의 이론을 상당히 잘 요약합니다.

건강한 열정은 삶을 풍부하게 만들지만, 집착적인 열정은 삶을 하나의 활동으로 좁힐 수 있습니다.

최신 연구가 말하는 열정의 방향

발레랑의 열정 이론은 2003년에 처음 발표됐지만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실이 공개한 최근 연구들을 보면 관심사가 상당히 넓어졌습니다.

2024년에는 열정과 자기조절이 심리적 웰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열정이 회복탄력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열정이 자기성장과 최적 기능에 어떤 힘과 위험을 갖는지가 연구됐습니다. 2025년에는 직업, 교육, 스포츠 등에서 열정의 형태와 결과가 연구됐으며, 2026년에는 열정과 숙달목표를 통한 자기성장 과정까지 연구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즉 현대의 열정 연구는 단순히

“열정이 좋은가, 나쁜가?”

를 묻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열정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성장시키는가

를 연구합니다.

 

로버트 발레랑의 연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열정이 많다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가 아니라 그 활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몇 시간씩 하더라도 필요할 때 멈출 수 있고, 실패했을 때 방향을 바꿀 수 있으며, 다른 삶의 영역과 함께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조화열정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성과가 곧 나의 가치가 되고, 쉬는 것이 불안하며, 관계와 건강을 희생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면 집착열정이 강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발레랑의 이론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이 일을 사랑해서 계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멈추면 불안하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일까?”

열정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내가 열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