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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감정과 기억력, 무의식의 관계: 왜 어떤 기억은 오래 남고 감정은 되살아날까

by 심리 탐험가 2026. 6. 30.

 

감정이 기억력을 강화하는 원리부터 기억이 다시 감정을 만드는 과정, 무의식적 기억이 선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까지 뇌과학과 심리학 연구로 쉽게 설명합니다.

비 오는 날 우연히 오래된 노래를 들었는데, 갑자기 몇 년 전의 장면이 떠오른 적이 있는가. 당시 만났던 사람의 얼굴뿐 아니라 공기의 냄새, 거리의 분위기, 그때 느꼈던 쓸쓸함까지 한꺼번에 되살아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사건은 분명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세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회의에서 들었던 설명은 금세 잊어버리면서도, 그 자리에서 느꼈던 불쾌함이나 긴장감은 오래 남는다.

이런 경험은 감정과 기억이 서로 분리된 기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정은 기억을 더 강하게 만들고, 저장된 기억은 다시 감정을 불러낸다. 여기에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암묵적 기억, 흔히 무의식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과정까지 더해지면 인간의 선택과 행동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이 글에서는 감정이 기억력을 강화하는 원리, 기억이 감정을 만드는 과정, 무의식적 기억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기억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을 살펴본다.

감정과 기억력은 어떤 관계일까

감정은 기억에 ‘중요 표시’를 붙인다

우리 뇌는 하루 동안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똑같은 비중으로 저장하지 않는다. 오늘 지나친 자동차의 수,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음악, 점심을 먹을 때 옆자리 사람이 입었던 옷까지 모두 기억한다면 뇌는 금세 지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뇌는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분한다. 이때 감정은 일종의 형광펜 역할을 한다.

두려움, 기쁨, 놀람, 수치심처럼 강한 감정이 동반된 사건에는 뇌가 “이 경험은 앞으로도 중요할 수 있다”라는 표시를 붙인다. 신경과학 연구에서는 감정적 각성이 기억의 부호화와 공고화에 영향을 주며, 특히 편도체와 해마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편도체는 사건의 정서적 중요도를 평가하고, 해마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맥락을 묶어 기억하는 데 관여한다.

쉽게 비유하면 편도체는 뉴스 편집장에 가깝다.

“이 사건은 중요하다. 크게 다뤄야 한다.”

편도체가 이런 신호를 보내면 해마와 다른 뇌 영역은 해당 경험을 더 우선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편도체와 해마를 직접 기록한 연구에서도 감정적 자극을 학습한 뒤 두 영역의 신경 활동과 기억 형성 사이의 관련성이 관찰됐다.

감정이 강하면 모든 것이 정확히 기억될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감정이 강하다고 해서 사건 전체가 사진처럼 정확하게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사건의 중심 내용을 선명하게 만들 수 있지만, 주변 정보는 오히려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충돌 순간이나 큰 소리를 강하게 기억하면서도, 주변에 몇 명이 있었는지 또는 차량의 세부 색상이 무엇이었는지는 틀리게 기억할 수 있다.

감정적인 사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중심 의미가 강해지는 반면,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가’라는 맥락 정보는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대규모 분석과 정서적 거짓 기억 연구 역시 감정이 기억을 항상 정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며, 회상 방식과 기억 검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강하게 기억난다”와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같은 뜻이 아니다.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감정이 생기는 것일까

현재의 감정에는 과거의 기억이 섞여 있다

감정은 단순히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만 반응하지 않는다. 뇌는 현재 상황을 해석할 때 과거 경험을 참고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과거에 발표 중 실수한 뒤 큰 창피를 당했다고 해보자. 몇 달 후 다시 발표를 앞두면 실제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뛰고 손에 땀이 날 수 있다. 현재 상황이 과거 기억과 연결되면서 당시의 감정 반응이 다시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감정은 기억을 강화하지만, 기억 역시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이 감정을 느끼려면 반드시 구체적인 사건을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해도 몸은 특정 상황을 위험하거나 편안한 것으로 학습할 수 있다.

즉, 기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기억의 종류특징예시

명시적 기억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 지난 생일에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함
일화 기억 개인이 경험한 사건과 맥락 첫 출근 날의 장소와 분위기
의미 기억 사실이나 지식에 관한 기억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지식
절차 기억 몸으로 익힌 기술 자전거 타기, 타자 치기
암묵 기억 의식하지 못해도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주는 기억 특정 냄새를 맡으면 이유 없이 긴장함
정서 기억 감정 반응과 연결된 기억 사고가 난 도로에서 불안해짐

미국심리학회는 암묵 기억을 의식적으로 회상하지 않아도 수행과 반응에 영향을 주는 기억으로 설명한다. 명시적인 기억 능력이 손상된 상황에서도 암묵 기억이 남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을 수 있다

어떤 장소가 싫은데 왜 싫은지 설명하지 못하거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유 없이 경계심이 생길 때가 있다. 이런 반응을 모두 과거의 상처나 무의식 탓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피로, 현재의 표정, 주변 분위기처럼 다른 이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학습 경험이 의식 아래에서 감정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실제로 존재한다.

어릴 때 큰 개에게 놀란 사람이 당시 사건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성인이 된 뒤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몸이 먼저 긴장할 수 있다. 머리로는 “지금 이 개는 안전하다”라고 생각해도 심장 박동은 빨라질 수 있다.

이는 기억이 단순한 이야기 형태로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각, 신체 반응, 주의 습관, 접근과 회피 행동도 학습의 흔적으로 남는다.

무의식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무의식은 마음속에 숨어 있는 비밀 창고만은 아니다

일상에서 무의식이라는 말은 보통 억압된 욕망이나 숨겨진 상처를 뜻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과 인지과학에서 무의식적 처리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진행되는 정보 처리 전체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얼굴 표정을 빠르게 읽는 일, 익숙한 길에서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는 일, 위험한 소리에 즉시 고개를 돌리는 일은 대부분 의식적인 분석보다 먼저 일어난다.

시각 정보가 매우 짧게 제시되어 사람이 무엇을 봤는지 분명히 보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정서적 자극이 주의와 신경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다만 무의식적 처리가 어디까지 복잡한 판단을 수행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연구와 논쟁이 이어지는 영역이다.

따라서 무의식을 모든 행동의 숨은 원인으로 과장해서는 안 된다. 무의식은 초능력이나 신비한 존재가 아니라, 뇌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무의식적 기억은 어떻게 행동을 바꿀까

무의식적 기억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주의의 방향을 바꾼다. 과거에 위협을 경험한 사람은 비슷한 표정이나 목소리를 더 빠르게 감지할 수 있다.

둘째, 몸의 반응을 만든다. 특별한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심장이 뛰거나 어깨가 굳을 수 있다.

셋째, 선택에 영향을 준다.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나 장소를 반복해서 선택할 수 있다.

넷째, 해석의 틀을 만든다.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조언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은 비난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이 부분은 다시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과거에 실수할 때마다 심하게 혼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순한 피드백도 거절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현재의 말 자체보다 과거 기억이 해석 과정에 개입한 것이다.

감정은 기억을 어떻게 저장하는가

1단계: 주의를 끈다

감정적인 자극은 평범한 자극보다 주의를 쉽게 끈다. 거리에서 들리는 일반적인 대화보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먼저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은 뇌에 “이것을 먼저 처리하라”라고 알린다. 주의가 집중되면 해당 정보가 기억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주의가 한곳에 지나치게 몰리면 주변 정보를 놓칠 수 있다. 시험 중 한 문제에서 당황한 나머지 뒤의 쉬운 문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2단계: 기억을 공고하게 만든다

처음 경험한 정보는 아직 불안정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경 연결이 변화하고 기억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형태로 바뀌는데, 이를 기억 공고화라고 한다.

감정적 각성은 편도체를 중심으로 해마와 대뇌피질의 기억 공고화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 조절 물질도 이 과정에 관여한다. 다만 스트레스의 강도와 지속 시간, 개인의 상태에 따라 기억이 강화되기도 하고 오히려 저하되기도 한다.

적당한 긴장은 중요한 내용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는 사고를 좁게 만들고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3단계: 기억을 다시 꺼낼 때 감정을 재현한다

기억은 창고 속 파일처럼 그대로 보관됐다가 꺼내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뇌는 여러 단서를 조합해 과거 경험을 재구성한다.

이때 당시와 비슷한 장소, 냄새, 표정, 음악이 기억을 불러오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사건의 내용뿐 아니라 당시 느꼈던 감정도 부분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우울한 기분일 때 과거의 실패가 더 잘 떠오르고, 행복할 때 즐거운 경험이 쉽게 생각나는 현상도 현재의 감정 상태와 기억 인출이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4단계: 떠올린 기억이 다시 변한다

기억을 꺼내면 잠시 불안정해지고, 이후 다시 저장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이를 기억 재고착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생각, 새롭게 알게 된 정보, 주변 사람의 설명이 기존 기억에 섞일 수 있다. 기억은 고정된 영상이라기보다 수정 가능한 문서에 가깝다.

재고착은 기억이 왜 왜곡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기억 재고착 연구는 공포 기억, 중독 행동, 외상 기억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분야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감정이 기억력에 주는 장점과 단점

장점: 생존과 학습을 빠르게 돕는다

감정적 기억은 위험을 반복하지 않게 만든다. 뜨거운 냄비를 만져 화상을 입은 경험은 다음 행동을 빠르게 바꾼다.

즐거운 감정도 학습을 돕는다. 칭찬받거나 성취감을 느낀 경험은 같은 행동을 다시 시도하게 만든다. 호기심, 기대감, 적절한 긴장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이유도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정보는 머리에 잠시 들어왔다가 사라지기 쉽다. 반면 개인의 경험, 목표, 흥미와 연결된 정보는 오래 남을 가능성이 높다.

단점: 기억을 편향되게 만들 수 있다

감정은 기억을 강화하지만 객관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부정적인 말만 크게 기억할 수 있다. 불안할 때는 위험한 장면을 과장해 떠올릴 수 있고, 수치심이 강한 사람은 실제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고 기억할 수 있다.

또한 감정적 기억은 사건의 핵심 느낌을 강하게 남기면서 세부 정보는 부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목격자 진술이나 갈등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확신만으로 사실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라는 말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는 뜻도 아니고, 기억이 완전히 정확하다는 뜻도 아니다. 인간의 기억은 본래 재구성되는 특성을 가진다.

감정과 기억의 관계를 일상에서 활용하는 방법

공부할 때 감정을 이용하는 법

무작정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배울 내용을 개인적인 의미와 연결하면 기억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경제 개념을 공부한다면 정의만 외우지 말고 자신의 소비 습관과 연결해본다. 역사적 사건은 등장인물의 선택과 갈등을 이야기처럼 구성해본다. 영어 단어는 자신의 경험이 들어간 문장으로 만든다.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활용하면 좋다.

  • 이 내용은 내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 실제로 언제 사용할 수 있는가?
  • 이 개념을 하나의 이야기나 장면으로 바꾸면 어떤 모습인가?

단, 지나친 불안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렵다. 적당한 긴장은 집중을 돕지만, 강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복잡한 기억과 사고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

감정적인 사건을 기록하는 법

강한 감정이 든 날에는 사건과 해석을 분리해서 적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팀장이 나를 무시했다”라고만 기록하면 사실과 해석이 섞인다. 다음처럼 나눠 적어보자.

사실: 회의 중 내 제안에 대해 팀장이 “지금은 검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감정: 서운함 70점, 당황함 50점.
자동적으로 든 생각: 내 의견은 가치가 없는 것 같다.
다른 가능성: 시간이 부족했거나 우선순위가 달랐을 수 있다.
확인할 행동: 다음 회의 전에 별도로 검토를 요청한다.

이 방식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인정하되, 감정이 만든 해석을 사실과 동일시하지 않는 연습이다.

반복해서 떠오르는 기억을 다루는 법

원하지 않는 기억을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자주 떠오를 수 있다. 생각을 억제하는 과정에서는 “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생각을 단순히 밀어내는 전략은 상황에 따라 반동 효과를 만들 수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도 기억 억제의 조건과 개인차를 세심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억이 떠올랐을 때는 다음과 같이 대응할 수 있다.

먼저 “또 생각하면 안 돼”라고 싸우기보다 “지금 그 기억이 떠올랐구나”라고 알아차린다.

그다음 현재의 감각을 확인한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느낌, 눈앞에 보이는 물건,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천천히 살핀다.

마지막으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한다.

“그 일은 과거에 일어났고, 지금 나는 이 방에 있다.”

이 방법은 기억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이 현재를 완전히 지배하지 않도록 거리를 만드는 연습이다.

트라우마 기억은 왜 특별히 강하게 느껴질까

외상적 사건은 극심한 공포, 무력감, 충격을 동반할 수 있다. 이때 기억은 일반적인 이야기처럼 순서대로 정리되기보다 특정 장면, 소리, 냄새, 신체 감각을 중심으로 반복해서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회복 자원, 사건 이후의 지지, 이전 경험, 수면, 지속되는 위험 여부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준다.

편도체는 공포 학습과 위협 탐지에 관여하며, 해마와 전전두엽을 포함한 여러 뇌 영역의 연결 변화가 외상후스트레스 증상과 관련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다만 사람의 고통을 특정 뇌 부위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악몽, 과도한 경계, 회피, 반복되는 침투 기억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면 혼자 기억을 억지로 파고들기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임상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감정적인 기억을 무리하게 반복해서 떠올리는 과정은 오히려 부담을 키울 수 있다.

감정과 기억, 무의식은 서로 어떻게 연결될까

세 요소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감정은 경험의 중요도를 표시하고, 기억은 그 경험을 현재의 판단에 다시 사용하며, 무의식적 처리는 이 과정을 의식보다 빠르게 진행한다.

하지만 이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감정은 무엇을 기억할지 결정한다.
기억은 현재 무엇을 느낄지 결정한다.
무의식적 기억은 무엇에 주목하고 피할지를 결정한다.
새로운 경험은 과거 기억과 감정의 의미를 다시 바꾼다.

2023년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연속적인 경험을 기억할 때 감정 상태의 변화가 사건을 구분하는 경계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감정이 달라지는 순간을 기준으로 경험이 서로 다른 장면처럼 조직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감정은 기억에 덧붙는 장식이 아니다. 기억의 형성과 정리, 인출 과정에 관여하는 핵심 요소다. 동시에 기억은 감정의 재료가 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가운데 일부는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이고, 일부는 과거에 배운 방식이 현재를 해석한 결과다.

 

 

감정과 기억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강한 감정은 편도체와 해마를 포함한 뇌의 기억 체계에 영향을 주어 중요한 경험을 오래 남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감정적 기억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 사건의 중심 내용은 또렷해지는 반면, 주변 맥락이나 세부 정보는 왜곡될 수 있다.

기억 역시 감정을 만든다. 과거와 비슷한 장소, 냄새, 표정, 목소리를 접하면 당시의 감정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 이때 사건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해도 암묵 기억이 신체 반응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의식은 신비한 힘이라기보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정보 처리 과정에 가깝다. 따라서 이유 없이 느껴지는 감정도 무조건 억누르기보다 어떤 경험, 해석, 신체 상태와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FAQ

1. 감정이 강할수록 기억력이 무조건 좋아지나요?

그렇지 않다. 적당한 감정적 각성은 중요한 정보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감정이 너무 강하면 주의가 좁아져 주변 정보를 놓칠 수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복잡한 사고와 명시적 기억을 방해하기도 한다.

2. 기억이 없으면 감정도 느낄 수 없나요?

느낄 수 있다. 구체적인 사건을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해도 암묵적 학습이나 신체 상태를 통해 감정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과거의 기억은 현재 상황을 해석하고 감정을 구성하는 중요한 재료 가운데 하나다.

3.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은 무의식적 기억 때문인가요?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상대의 표정, 말투, 현재의 피로, 선입견, 과거 경험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느낌을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느낌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4. 감정적인 기억은 왜 자꾸 왜곡되나요?

기억은 녹화 영상이 아니라 매번 다시 구성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떠올릴 때 현재의 감정, 이후에 들은 이야기, 주변 사람의 반응이 기존 기억과 섞일 수 있다.

5. 나쁜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 있나요?

일반적으로 원하는 기억만 골라 완전히 삭제하는 방법은 없다. 대신 기억이 떠올랐을 때 생기는 감정 반응을 줄이고, 기억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치료와 훈련은 가능하다.

6. 무의식에 저장된 기억을 모두 찾아내야 하나요?

그럴 필요는 없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과거 기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하다. 지금 반복되는 행동과 감정을 관찰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과거 경험을 살펴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7. 좋은 감정을 이용하면 공부가 더 잘되나요?

흥미, 호기심, 성취감처럼 적절한 감정은 주의와 반복 학습을 돕는다. 다만 기분만 좋게 만드는 것보다 배울 내용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고, 회상 연습과 간격 반복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8. 어린 시절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은 문제가 있나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적다는 사실만으로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유아기의 뇌 발달, 언어 능력, 기억을 반복해서 이야기한 정도 등에 따라 개인차가 크다. 특정 시기의 기억 공백이 심한 불안이나 일상 기능 저하와 연결될 때는 전문가와 상담해볼 수 있다.

9. 트라우마 기억은 반드시 정확한가요?

고통과 감정 반응은 실제일 수 있지만, 모든 세부 정보가 완벽하게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외상 기억 역시 인간 기억의 재구성 과정과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기억의 진위를 확인해야 하는 법적 상황에서는 객관적인 자료가 함께 필요하다.

10. 감정을 억누르면 기억도 사라지나요?

대체로 그렇지 않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과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해당 기억을 더 자주 확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외부 참고 자료 추천

  • 미국심리학회 심리학 사전의 암묵 기억 및 정서 기억 설명
  • 감정 기억의 편도체·해마 상호작용에 관한 신경과학 리뷰
  • 기억 흔적의 형성, 공고화, 인출과 망각에 관한 엔그램 연구 리뷰
  • 감정 변화가 일화 기억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
  • 감정적 거짓 기억과 기억 검사 방식의 관계를 검토한 연구
  • 인간 뇌의 정서 기억 신경세포 활동을 조사한 연구